“이극로를 키운 주인공은
남저 이우식 선생이었다”
남저 선생 학술발표회
박용규 박사 내용 소개
1916년부터 1928년까지
모두 8,890원이나 지원
이극로를 독립운동가, 민족 지도자로 키운 주인공이 이우식이었다.
지난 9월 29일 오후 2시 의령군민문화회관 공연장에서 열린 남저 이우식 선생 학술발표회에서 박용규 박사(고려대 한국사연구소)는 ‘남저 이우식 선생의 생애와 조선어학회 후원활동’이라는 주제의 논문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이날 박용규 박사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박용규 박사는 “젊은 시절 고향 후배인 이극로의 항일 의지를 간파하여 그를 독립투사, 민족 지도자로 양성하였다”라며 “이극로의 상하이 동제대학과 베를린대학 학비와 생활비, 활동비 전액을 지원해 주었다. 선진학문을 습득하고서 식민지 조선에 귀국한 이극로는 이우식과 함께 언어독립투쟁을 전개하여 나갔다”라고 했다.
“이극로는 빈농 출신이었다. 그는 고학생으로 마산 창신학교, 상하이 동제대학, 독일 베를린대학을 다니며 학업을 이수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독립운동전선에 참여하였다”라며 “현실은 고학생 신분만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없었다. 막대한 학비와 생활비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극로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우식의 지원에 대해 이극로는 1936년 “한 달의 생활비가 오육원에 불과하였고, 위체가 고정된 뒤에도 수업료까지 합하여 생활비가 매월 평균 오십원에 불과하였다. 이것은 곧 당시의 일반 외국유학생학비의 보통 표준으로 3분의 1의 액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학비는 누가 대어 주었느냐 하면, 이우식 씨의 도움이 있었던 것이다”, “나의 학비와 구미 및 조선의 시찰비를 부담하여 주신 이우식 씨의 후의는 영원히 잊지 못하여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우식은 고향 출신인 독립운동가 이극로에게 1916년부터 1928년까지 상해 동제대학과 베를린대학의 학비와 생활비, 활동비 명목으로 총 8,890원을 지원하였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극로에게 이우식은 영원히 잊지 못할 은인이었다. 이우식은 이극로의 항일 의지를 간파하여 그를 독립투사, 민족 지도자로 양성하였다. 참으로 빛나는 이우식의 업적이었다”라고 박용규 박사는 주장했다.
한편, 이날 학술발표회에서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위원인 배석만 교수가 ‘남저 이우식 선생의 경제생활사와 민생규휼’,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이준환 교수가 ‘남저 이우식 선생 소유시기에 발행한 중외일보의 항일관련기사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각각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국가와 독립을 위하여 혁혁한 헌신활동이 있었음에도 그간 여러 사정으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남저 이우식 선생을 재조명하기 위해 오영호 의령군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성사되었다. 유종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