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와 책임’을 읽고
허영일(의령신문 편집위원)
‘한국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부제가 붙은 ‘특혜와 책임’이라는 책을 인터넷에서 주문하여 읽었다. 지은이 송복 교수는 1937년생이고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머리말에서 지은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지금 우리 시대, 다른 나라 아닌 바로 이 나라의 ‘역사의 동력’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동력은 우리보다 앞서 민주화된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험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200년 이상 선진의 지위를 변함없이 유지하게 했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있고 없음이다. 그들은 그것이 있는데 우리는 없다. 그들도 우리도 다 같이 저성장 양극화에 신음하고 있다. 그들 국민도 우리 국민도 심한 갈등에 날카로워져 있고, 들끓는 분노로 다 같이 가슴을 앓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는 ‘계속’ 존경심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있고 ‘계속’ 도덕심을 높여주는 집단이 있다. 사고와 행동, 일상생활에서 지표(指標)가 되는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계속’ 수범(垂範)을 보이는 계층이 있다. 그들이 있어 그들 나라는 ‘계속’ 선진국이고, 선진국의 지위를 그 오랜 세월 ‘계속’ 지켜나가게 하는 힘이 나온다. 그 동력이 지금 우리에게는 없다.(10쪽)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한 마디로 ‘특혜’ 받는 사람들의 책임이다. 옥스퍼드 사전은 ‘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는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정의하고 있다. 특혜 받는 사람들의 책임은 ‘희생(犧牲)“이라는 말 하나로 축약되고, 그 희생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대략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로 목숨을 바치는 희생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혹은 심각한 안보의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앞장서 ‘내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논어에서 말하는 견위수명(見危授命)이 그것이다. 둘째로 기득권을 내려놓은 희생이다. 누구나 앞서 차지하면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전철 간의 자리도 먼저 앉으면 장애인이 와도 일어서지 않는다. 하물며 높은 자리며 소득이며 권력이랴. 그런데도 그 기득권을 미련 없이 내려놓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특혜 받은, 받는 자의 곧은 마음이다. 셋째로 배려와 양보, 헌신의 희생이다. 이는 평상시 일상생활에서 남을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며 이해관계를 떠나 진심전력으로 남을 돕고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모든 일반 국민이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특혜 받은 사람, 특혜 받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갑질’이라는 말은 유독 지금 우리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야만적 행태’다. 고위직 층의 위세 위압적 태도를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자기수양, 자기관리가 전혀 안돼 있음은 물론, 가정교육과 학교교육까지 제대로 받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천민행위다. 우리 고위층은 나라로부터 국민으로부터 ‘특혜’받고 있다는 특혜의식이 없다. 지금 받고 있는 것은 국가 국민으로부터 받는 ‘특혜’가 아니라, 내 피땀과 눈물의 대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준에서 보면 철면피나 다름없다. 지금 우리는 상층은 있는데, 상류사회가 없고, 고위직 층은 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 이 책은 2000년 이후 우리 상층의 문제점을 이들 정치고위직 층을 비롯한 여타 고위직 층에서 찾아, 그들이 지금 갖지 못한 다섯 가지를 5무로 해석해서 분석하고 있다.(250쪽)
총론에서 보면 우리 지도층은 첫째로 너무 이기적이다. 둘째로 너무 비인격적이다. 셋째로 표현력 결핍이다.(255쪽) 지금 우리의 리더들( 고위직 층들)에게는 꼭 있어야 할 5개가 아직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 5개는 역사성, 도덕성, 희생성, 단합성, 후계성이다. 우리 상층의 시작이 1950년대 이후이기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는 분야에서든 언필칭 지도층은 모두 지난 세기 50년대 전후해서 시작된다. 그 절대다수는 모두 지난 60∼70년 사이의 아버지와 아들의 두 세대, 바로 당대에 일어선 것이다. 그래서 ‘당대 상층’이다.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상층은 그야말로 무역사성(無歷史性), 그들 말로 ‘no history’다. 당대에 맨주먹으로 빈손으로 상층에 오르는 것이니 만큼 이기적이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애시 당초 내 스스로 가진 것이 없어 베풀 것이 없고, 아직 아무것도 쌓아 놓은 것이 없어 지킬 것도 없다. 우리의 상층은 그래서 무도덕성(無道德性)이다.
우리의 상위직, 특히 고위 정치인, 고위관료, 고위 법조인, 고위 교육자층 중 병역 면제자가 일반인 면제자보다 적게는 4배, 많게는 6배나 더 많다. 우리의 상층은 좋은 일, 득 보는 일은 내가 하고 궂은일, 힘든 일은 국민에게 떠넘기는 무희생성(無犧牲性)이다. 당대 상층의 묵은 병통의 하나가 분열이고 갈등이다. 그들의 절대로 치유되지 않는 고질병은 바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다.’ 그들 간의 단합이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단합성(無團合性)이다.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후계자 기피증이 있다. 이는 아마도 물러남의 의식이 우리의 당대 상층에게 아예 없거나 크게 박약한 데서 온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무후계성(無後繼性)이다. 정말 우리 상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천민 상층으로 내내 지속해 갈 것인가, 아니면 언제부터인가 ‘역사의 동력’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질 것인가? 이 책은 신라의 상층을 본보기로 역사적으로 우리에게도 있었던 그 엄연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예시했다. 우리나라, 서울은 그렇다 치고 ‘인물의 고장’ 의령은 어떤가? 청렴성과 전문성과 이타심으로 감동을 전파한 사람들이 있었는가? 아니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도래(到來)를 기대하게 하는 저력과 전통 있는 의병정신의 고장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물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