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저 이우식 선생
의령교회 부지 1908년 17살 때 기부
규모 1천여 평으로 “놀랍기만”
국권회복 운동 차원의
행위로 해석될 여지 남겨 주목
남저 이우식 선생이 의령교회의 현 부지를 기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령교회의 2016 교회요람 5쪽 교회연혁은 ‘1908년 10월 동동의 이우식 씨가 현 부지(서동 317번지)를 교회에 기증함으로 구 교회당(현 식당 27평)을 건립하다’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의령교회 김용대 장로는 21일 “이 같은 사실을 적은 다른 기록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그 전후 사정을 아는 사람도 없는 실정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장로는 의령교회 부지가 현재 1천여평이라고 덧붙였다.
그 동안 이 같은 사실은 교회 관계자 몇몇만 알았을 뿐 의령군민 대다수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학계에서도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교회 부지를 기부한 연도가 1908년이고 남저가 1891년 생인 점 등을 고려하면 남저가 17살일 때 이 같은 통 큰 기부결단을 내린 것으로 계산돼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그 통 큰 기부가 이뤄진 1908년 바로 다음해인 1909년 남저의 행적에 대해 박용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오는 29일 열리는 학술대회에 발표하는 논문 ‘이우식 선생의 생애와 조선어학회 후원 활동’에서 “(남저는) 1909년 국권회복을 내세운 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하였다. 의령 출신 대동청년단 단원에 안희제, 이극로가 있는데, 이들과 독립운동을 함께 하였다“라고 했다.
이에 따라 남저의 그 통 큰 의령교회 부지 기부가 국권회복 운동 차원의 행위로도 해석될 여지를 남겨 주목된다.
남저는 그동안 일제강점기에 소작농에게 소작료를 인하하여 주었고, 고향의 인재 양성에 돈을 지불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독립자금을 지출하였으며, 민족어대사전 편찬 사업에도 거금을 희사한 것으로만 알려져 왔다.
한편, 의령교회는 1907년 갑을교회, 마장교회와 함께 세워졌다. 이에 앞서 1905년에는 서암교회가 교회로서는 이 지역에 처음으로 세워졌다. 이들 교회는 모두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이다. 의령교회는 지난 2008년 의령교회 설립 100주년 기념교회를 완공하는 등 현재 지역에서 대표적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