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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하는 계곡

문남선(수필가)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2년 08월 03일











▲ 문남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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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셋째 토요일, 남편 친구들과 부부 동반으로 집 근방의 관악산을 찾았을 때 일이다. 오전 10시경 일행과 함께 산행을 시작하자 콧속으로 상큼한 숲 냄새가 스며들었다. 그 냄새에 󰡐자연이야말로 최상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일상의 찌든 심신까지 치료하는 대단한 치료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발목 부상을 당한 후 자주 산을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계절마다 한번 이상은 관악산을 찾는 편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서울대 근방에서 출발할 경우, 제일 큰 계곡을 따라 깔딱 고개로 이어지는 완만한 코스였다.


요즈음 각 지역의 산마다 등산로를 멋지게 만들어놨다고 하더니 과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숲속 곳곳에서 멋진 나무 계단과 쉼터 등을 발견 할 수가 있었고, 예전엔 상당히 가파르단 느낌이 들었던 길도 약간씩 다듬어 놓은 탓인지 쉽게 오르내릴 수가 있었다.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산행 중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들과 마주치자 몹시 당황스러웠다. 물 한 방울 없는 계곡이 이상한 형상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심한 올해의 가뭄 탓도 있겠지만 완전히 그 탓만은 아닐 것이다.


큰 산의 계곡이라면 바위 밑에 약간의 물이라도 고여 있는 것이 일반적인 이치일 것이다. 주의 깊게 살펴보니 계곡 중간 중간 크고 작은 바위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던 모습, 물속을 헤엄치던 작은 생명체, 계곡 주변을 날아다니던 나비와 벌 같은 곤충의 모습, 크고 멋진 바위 주변의 계곡에 손발을 담그고 즐거워하던 사람들의 모습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반면 물이 흐르던 계곡의 양 가장자리는 비슷한 높이의 일직선에 가까운 돌담을 쌓아놓았다. 계곡에 자리했던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은 모두 어디다 치웠는지 보이지 않고, 승용차도 달릴 수 있을 정도의 평평한 바닥엔 비슷한 크기의 비슷한 돌들이 깔려있었다. 게다가 바닥의 돌 틈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 돌 틈은 시멘트를 발라 아예 땅의 숨통을 틀어막아 놓았다.


요즘은 특정한 인물 사진을 모델로 성형을 많이 하기에 비슷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은 다르지 않은가. 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무시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평평하게 만든 계곡에 일정한 높이의 계단을 만들어, 꼭 틀에서 찍어낸 조형물처럼 비슷한 형상의 인위적인 계곡을 만드는가? 노란 꽃 파란 꽃온갖 꽃이 있어 꽃이 아름답고, 동글동글 삐죽빼죽 울퉁불퉁여러 형태의 바위와 돌이 있어 산과 계곡은 아름다운 것이다.


물 관리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도심의 하천이야 시민의 휴식공간을 위한다는 특수한 용도가 있다. 허나 자연속의 계곡을 왜 굳이 바닥을 밀고, 다지고, 비슷한 형상의 바닥 돌을 깔고, 돌 틈 사이마저 시멘트로 막아 작은 물구멍마저 막아놓았을까?


어쩌면 홍수방제의 목적일 수도 있겠다. 허나 다져지고 막혀버린 땅 속엔 사람의 동맥과 정맥에 해당되는 굵은 물줄기도 있을 것이고, 시멘트로 틀어막은 바닥 어딘가에는 옹달샘 같은 지하수 분출지도 있었을 것이다. 사시사철 산과 나무가 있기에 비록 심한 가뭄이 와도 조금의 물이라도 머금고 있어야 할 계곡이, 이제 비만 기다리는 천수답이 된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자연이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만의 소유물인가? 아니다. 자연은 우리 당대의 자산이 결코 아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도 주인이며 소중히 쓰다가 우리들의 후손에게 길이 물려줘야 할, 귀중한 후손들의 자산이다.


홍수방지와 계곡 정화라는 미명아래 행한 일이 잘못 된 것인 줄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 같다. 산행하던 사람 중에도 그 모습에 속상해 하는 분들이 더러 보였다. 남편 친구 한분도 포클레인으로 계곡을 파던 때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당시 공사현장을 목격한 어느 외국인이 󰡒Crazy!󰡓라고 외치더라고 했다. 그 외국인의 눈에도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미쳤다는 표현을 썼겠는가?


편편한 계곡 바닥에 물이 고일 리는 없을 터, 비가 오면 계곡 물이야 흐르겠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동안일 것 같다. 그리고 많은 비가 내릴 경우 거센 물살에 완충작용을 해 주던 그 크고 멋진 모습의 바위가 사라진 계곡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계곡 주변에 둥지를 튼 산짐승과 곤충들, 돌 틈 사이를 헤엄치던 작은 물고기나 개구리들도 계단식으로 평평하게 만든 그 계곡 주변에서는 살아내기 힘들 것 같다.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룰을 깨트려 버린 이 큰 인간의 실수에 계곡이 신음을 하고 주변은 심한 생태계 변화를 겪는 셈이다.


사람도 수 만개의 혈관 중 몇 개만 막혀도 병이 난다. 자연도 같은 이치다. 파헤치고 다져져 숨통마저 막힌 과정에서 많은 수맥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을 것이다. 몇몇 공무원의 탁상행정 식으로 처리해 버린 일로 인해 이제 산의 일부는 몇 천만년 이어져온 아름다움에 상처를 입었다.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일에 아까운 혈세까지 쏟아 부은 꼴이니 참으로 안타깝고 화까지 났다.


이런 형태의 사업은 적어도 지질학자와 생태학자 그리고 보다 많은 여론 수렴의 과정을 거친 뒤, 정말 신중하게 접근하고 처리해야 될 일일 것이다.


관악산을 다녀 온 후 내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더 이상 금수강산 우리의 수많은 계곡이 이와 같은󰡐신음하는 계곡󰡑으로 바뀌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2년 08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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