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을 살아보니’를 읽고
허영일(의령신문 편집위원)
한 해가 저무는 12월에 가슴에 와 닿는 글이라 생각되어 짬짬이 두 번 읽은 김형석 명예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를 소개한다.
김형석은 이 책에서 100세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결혼과 가정, 우정과 종교, 돈과 성공, 명예, 노년을 주제로, 자신이 경험하고 주변을 관찰하여 정리한 삶의 지혜(행복론)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돈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낮은 차원의 인생을 살게 되어 있으나 일이 귀하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그 일의 가치만큼 보람과 행복을 더하게 되어 있다. 일은 왜 하는가. 일의 목표는 무엇인가. ‘일은 이웃과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만 하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삶이 귀한 것이다.(33쪽)
애욕은 사랑의 나무가 자라면서 애정으로 승화된다. 결혼 생활을 쌓아가다 보면 사랑의 정이 얼마나 강한지 깨닫게 된다. 애정이 애욕을 포용해서 더 넓고 높은 사랑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가정의 구성원이 부부에서 자녀에게까지 확대되면 사랑의 내용도 바뀌게 된다. 남녀 중심의 가정이 부모와 자녀 중심의 가정으로 확대 성장한다.(67쪽)
지금 생각하니 결혼하기 전에 사전교육을 받았더라면 부부중심 가정생활을 더 잘 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한다. 다만, 몇 번의 위기를 잘 넘긴 것은 순전히 상대방의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늦게라도 이를 인정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언제나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며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동안에 국가와 민족의 지도자로 자랄 수 있다.” 이는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는 못한 김형석 부친이 어린 시절 김형석에게 들려주곤 한 얘기다. 그런 열린 마음과 섬기려는 뜻이 있는 사람은 가정의 더 큰 의무와 책임을 깨닫기 때문에 가정적 불행과 고통을 극복할 수도 있는 법이다. 자녀들을 진심으로 위해주는 부부는 그 자녀들에 대한 의무와 책임 때문에도 남편과 아내의 도리를 저버릴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다.(85쪽)
“진인사 대천명”은 -내 어릴 적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가 늘 들려주신 얘기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할 뿐, 성공과 실패는 연연하지 않는다.”로 나름 풀어보았다. 내 안에 있는 본성을 발현하여 나의 일을 찾는 것은 독서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은 순전히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이것이야말로 소중한 선물이었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성숙은 한계가 없다. 노력만 한다면 75세까지는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60이 되기 전에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나와 가까운 친구들은 오래 전부터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사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이 많다. 아무리 40대라고 해도 공부하지 않고 일을 포기하면 녹스는 기계와 같아서 노쇠하게 된다. 60대가 되어서도 진지하게 공부하며 일하는 사람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과 도전을 포기한다면 그는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된다.(뒷 표지)”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김형석 교수의 황금기’론에 동의하였다. “인생 선배들의 삶을 보면 그렇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된 셈이다.
‘사람은 모순된 존재’임을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보아 분명히 깨달았다. 겨우 “신독과 충서”와 “제대로 사람됨의 매우 어려움”을 알 듯하다.
나의 적은 바로 나였다. 때에 맞는 언행이 곧 사람됨이며 스스로 정직하고 남을 배려하는 태도는 일관성이 있어야 비로소 신뢰가 쌓인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가 제대로 된 공동체다.
본능과 본성이 다름을 분명하게 알고 오로지 하는 일에 몰입하여 본성을 회복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됨의 수준(인격)’이란 본성을 회복하는 데 달렸다고 생각한다.
선하고 건설적인 인간관계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진 특전이다. 닫힌 마음, 즉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정신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다. 그것은 후진사회와 선진사회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며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는 사회원칙이기도 하다.
김형석 교수는 “죽음이 내 삶 속에 둥지를 틀고 있을 뿐 아니라 손님이 나를 찾아 마중 나오듯이 다가오고 있다. 그 시간의 공간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그 죽음의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175쪽)
많은 선각자들은 50이나 60대 이후부터 인생의 마라톤 경기의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완주할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결정을 내릴 수 있었기에 역사 건설의 주춧돌을 놓았다. 인생의 나이는 길이보다 의미와 내용에서 평가되는 것이다. 누가 오래 살았는가를 묻기보다는 무엇을 남겨주었는가를 묻는 것이 역사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그리운 이웃들과 오손도손 사는 이야기 나누는 것이야말로 소소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도 그런 소소한 행복의 하나이고, 지난 번 ‘우리고장 독서경영운동을 제안’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제대로 사람답게 살려고 애씀은 곧 공동체의 회복을 위함이고 이는 ‘독서’와 ‘하는 일의 몰입’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김형석 교수가 93세 되는 가을 자다가 깨어나 남긴 메모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소개한다.
“나에게는 두 별이 있었다.
진리를 향한 그리움과
겨레를 위하는 마음이었다.
그 짐은 무거웠으나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다.”(4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