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태 전 궁류면장 송덕비 제막식
아들 잃은 슬픔보다는
지역민 먼저 생각해
출향인에게 8700만원 모아
봉황대운동장 법적다툼 해결
일붕사 건립 건의 성사
봉황대 주변도로 벚나무 식재
전병태 전 궁류면장 송덕비 제막식(추진위원장 오수환)이 지난 10월 30일 오전 11시 궁류면 압곡리에서 김채용 전군수, 이종섭 도의원, 손태영 군의원, 박호문 궁류면향묵회장을 비롯해 지역민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오수환 송덕비 추진위원장은 “뜻을 함께해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라며 “전병태 전면장은 면장부임시절에 많은 공적을 남겼고 퇴직 후에도 지역민을 위해 일해 온 업적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 그 뜻을 기리고자 오늘 이렇게 송덕비를 건립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채용 전 군수는 축사에서 “유서 깊은 궁류에서 오늘 공덕비 제막식을 가져 기쁩니다”라며 “전병태 씨는 공무원으로서 귀감이 되는 공직의 선배로 존경합니다. 우리 후대에 큰 귀감이 되고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이종섭 도의원은 “송덕비가 청소년들의 귀감이 되고 앞으로도 공덕비가 많이 건립이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전병태 전 면장은 ▶1962년 매약상 허가를 받아 개업을 한 후 면민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였고 ▶1978년 통일주체국민회의 제2대 대의원 당선 ▶1981년 궁류면 새마을청소년(4H)후원회장 ▶의령군사회정화위원회 위원 ▶의령군정책자문위원에 위촉되어 명예직으로 지역사회에 봉사를 했다. 특히 ‘1982년 4월 26일 한 경찰관에 의해 총기난동 사건으로 양민 50여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을 낸 사건 당시 18세 꽃다운 나이에 아들을 잃고도 본인의 슬픔을 가슴에 묻고 유가족대표로 선임되어 유족의 요구사항을 건의하는 등 고향지킴이로서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회복’을 위해 동분서주 하였다. 1982년 12월 궁류면장으로 임명되어 봉황대운동장 법적다툼을 해결하였고, 성덕암이 소실되어 그 자리에 일붕사를 건립하는 건의를 해 성사를 시켰으며, 봉황대 주변으로 벚꽃나무를 식재하는 등 지역민을 위해 헌신해 온 뜻을 널리 후세에 기리고자 송덕비를 제막하게 됐다. 하현봉 기자
송덕비 비문(전문)
모진 추운 겨울 눈으로 뒤덮인 광야를 걷노라면 발자국이 남듯 모든 사람들에게는 똑 같이 주어진 시공에 어떤 사람은 뚜렷하게 크게 또는 작게도 나타난다.
오늘 여기서 우리들이 거명하는 송암 전병태 면장은 나름대로 평생을 살면서 남다른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그러하기에 평소에 굳건한 입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어려웠던 과정을 밝혀 남겨둠이 이 송덕비를 세우게 된 계기다.
그는 1936년 11월 24일생으로 궁류면 압곡리 329번지 전지수공의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1957년 8월에 육군에 입대 1962년 12월 7일부로 병장만기 제대하였다.
당시 무의촌 무약촌에서 면민 건강증진의 일념에서 고향 지킴이가 되겠다며 1962년 12월 31일자로 매약상 허가를 받아 개업하였다. 1965년에는 약업사 시험에 합격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면민의 건강을 위해 계속 노력하였다. 1978년 5월 18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제2대 대의원 당선 1981년 궁류면 새마을청소년(4H) 후원회장, 의령군사회정정화위원회 위원, 의령군정책자문위원에 위촉되어 여러 명예직을 맡아 지역사회에 봉사하였다. 우리들이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1982년 4월 26일 한 경찰관의 총기난동 사건으로 양민 50명 사망, 50명 부상자를 낸 만행을 저질렀다. 그도 18세의 꽃다운 젊은 나이의 아들 당시 경상대학교 재학중 잃은 천천의 날벼락을 맞았다. 본인의 슬픔은 가슴에 묻고 유가족대표로 선임되어 그들을 위로하였다.
수습대책본부에 유족의 요구 건의사항을 전하며 고향지킴이로서 위기 극복과 안정 회복을 위해 동분서주 하였다. 그러하다 보니 1982년 12월 20일부로 궁류면장에 임명되자 직무수행에 더욱 증진하였다. 1983년 음력 3월 10일 봉황대 성덕암이 전기 누전으로 소실, 많은 면민과 불교신자들의 허탈함이 켜서 그들과 함께 성덕암 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자 이를 딱하게 여겨 일붕선교종종정 서경보 큰스님께 건의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 하지만 증건복원이 순조롭지만 않아 물심양면으로 서로 협조한 결과 오늘날 동양최대의 석굴법당을 비롯한 일붕사가 건립되고 의령 명승 9경 중에서 3경이 되었다.
1984년 지방유지에게서 벚꽃나무 묘목 200주를 기증받아 이장, 새마을지도자들이 면내 요소마다 심었다. 이제는 면민들의 심성 순화와 휴식공간으로 기능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많은 업적으로 1985년 2월 7일에 군정보고대회에서 읍면 행정종합 평가심사에서 1위의 우승기를 받는 등 사건 발생 이후 민심 안착과 면행정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었다. 그리고 궁류면청사가 낡아 비가 새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 당시 김주호 도지사에게 건의하여 도비 7,000만원, 군비 5,000만원 지원으로 지금의 아담한 청사를 건립하였다.
1987년 4월 18일에는 면민의 축제처럼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다음은 봉황대 공설운동장 부지 소유권 이전문제의 법적다툼 1989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1년을 끌었다. 변호사 선임비 등 많은 경비가 소요되었다. 이를 해결지어야 하는 1997년 공설운동장 유지관리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바로 이때가 IMF구제금융사태가 일어난 어려움이 가중됨에도 경향각지를 방문, 애향심에 호소하여 8,700만원의 많은 성금을 모아 1998년 고등법원의 화해판결에 피고에게 4,000만원을 주고 이전등기를 하였다. 70년 전통의 유서깊은 봉황대운동장인지라 유래비를 건립하여 영원히 보전해야 한다는 뜻을 모아 이에 전병태 면장을 추진위원장으로 선임하여 2001년 8월 15일 운동장 유래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이상과 같은 많은 업적을 남겼기에 뜻 있는 유지분들이 모여 전병태 면장 송덕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비석을 세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