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의령 소바로 아점(아침과 점심의 경계)을 했다.
내친 김에 의령 소고기 국밥 자랑을 하면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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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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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뤄 두었던 의령 소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지금은 의령 소바라는 상호가 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해서 전국 어디를 가도 가맹지점이 있고 또 원조 의령 소바를 맛보기위해 식도락 여행가들이 의령을 찾아올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훨씬 이전부터 의령 사람들에게 소바는 우리 국수보다 친근한 편한 먹거리였다. 심지어 술 마신 다음날 해장으로 소바를 먹는다고 할 정도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겠나.
소바는 메밀가루를 주재료로 한 면류의 통칭으로 한자어 교맥(蕎麥)의 일본식 발음이다. 의령이 어떤 이유로 소바의 유명지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 몇 가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징용되어 갔던 이들이 해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일본에서 먹었던 맛의 기억으로 알음알음 소바를 해먹으면서 우리 식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또 의령지역에 메밀밭이 많고 메밀농사가 잘 돼서 재료를 구하기가 수월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의령 소바의 원조로 지금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시식당>은 1945년 문을 연 해방동이다. 우려낸 국물을 뜻하는 일본말 <다시>와 <다시 시작하자>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는데 후자는 현대적 해석의 적절한 치장으로 보아줄만 하다. 돌아가신 김초악씨가 어머니와 신반마을 소바할매한테 배워서 문을 열었고 동생 김막내씨를 거쳐 지금은 아들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전통의 맛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일절 분점을 내지 않고 있으며 이런 고집이 76년 전통을 지켜낸 원동력이라 할 것이다.
두번째로 오랜된 집은 <화정소바>다. 1978년 의령시장에서 그릇가게를 하던 김선화,이종선씨 부부가 국수를 해서 좌판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는데 그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주변에서 아예 식당을 해보라는 권유가 이어졌고 이듬해 1979년 <화정식당>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김선화씨의 고향이 의령군 화정면에서 상호를 따왔다는데 유명한 작명소보다 낫지 않은가. 동기가 선하면 결과도 좋다는 말처럼 좌판 상인들 먹이자고 시작했던 일이 문전성시의 대박 식당이 되었다. 소바 종류에 따라 굵기를 달리 해 뽑고 직접 농사지은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화정식당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맛집이 되었다. 그러나 부인 이종선씨가 암에 걸리면서 위기가 닥쳤고 치료를 위해 2007년 결국문을 닫게 된다. 지금의 <화정소바>는 딸인 김나영씨가 2011년 다시 문을 열었다. 부모님께서 일궈온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한다. 이어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동생 동환씨는 예전 손님들이 "그 맛 그대로"라고 할 때가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고 한다.
세 번째로 소개할 집이 지금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의령 소바>다. 전통의 맛에 사업적 노력이 보태지면서 지금은 전국적으로 가맹지점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의령 소바>와 <화정 소바>의 인연은 각별하다. <의령 소바> 대표인 박현철 면장(麵匠)의 어머니가 <화정식당>에서 일을 하였고<화정식당>의 여주인이 병을 얻어 문을 닫게 되자 식당을 인수한 사람이 바로 박현철 면장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하교길에서 어머니가 일하던 <화정식당>에 가서 소바를 먹고는 했는데 각고의 노력으로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소바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의령이라도 집집마다 소바 맛은 다르다. 메밀가루와 밀가루 전분의 배합비율이 다르고 육수를 내는 방식도, 멸치 육수와 고기 육수의 비율도 다 다르다. 고명으로 올리는 장조림의 조리방식도 다르고 고명의 재료들도 다 다르다. 그러나 비 오는 날 소바 육수를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길 때의 그 시원한 따뜻함과 거친 듯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메밀면의 원시적 식감은 어느 집을 가더라도 무릎을 치게 할 것이다. 의령 소바 이야기를 하면서 못내 아쉬운 것은 왜 우리말 메밀국수를 놔두고 일본말 소바를 쓰고 있나 하는 것이다. 해방 이후 소바가 우리방식으로 정착 되는 과정에서 소바라는 말이 고유명사처럼 고착화 되었다 하더라도 이후에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옛날에는 밀가루가 귀해서 면 요리의 재료로 거의 메밀을 썼다. 메밀국수는 밀국수와는 달리 삶아도 잘 불지 않아 잔칫날 손님을 접대하기 좋은 음식으로 따끈한 고기육수에 말아 고명을 올려 대접했다고도 한다. 또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가뭄으로 먹을 게 없을 때나 춘궁기에는 서민들의 훌륭한 구황(救荒)식품이었다. 이렇게 메밀국수에 대한 우리의 오랜 전통과 풍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마치 전혀 새로운 일본의 식문화가 넘어온 것처럼 소바라는 명칭을 우리의 고유명사처럼 쓰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은 아니다. 더구나 의령의 메밀국수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개발하고 계승해온 우리의 음식이지 않은가. 나라의 독립과 한글의 독립을 지켜낸 수많은 독립열사가 잠들어 있는 이곳 의령이라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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