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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先親)의 유훈(遺訓)

남상태(재경 의령군향우회 고문)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3년 03월 25일













▲ 남상태
선친의 아호(雅號)는 제강(霽岡)이시다. 개일 제, 뫼 뿌리 강, 굳이 해석하자면 비나 안개가 사라지고 깨끗하게 개인 산의 모습으로 아버님의 성품과 인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생각한다.


지금부터 44년 전, 1968년 2월에 72세를 일기로 별세하신 그분은 43세의 젊은 나이에 상배(喪配)하셨다. 그 때 6남매의 다섯째인 나는 9살, 막내 동생은 4살이었다. 맏딸인 누나는 출가하고, 장남인 백형이 결혼 한 지 1년 만에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했는데, 당시 나의 큰형수는 겨우 20세였다. 그때부터 선친을 비롯한 6부자(父子)가 오로지 형수 한 분의 수발을 받게 되었으니 무척이나 어려웠던 살림 때문에 형수님의 고생은 필설로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버님은 한여름에도 버선을 신고 의관을 단정히 하시고 학문에 힘쓰시며 유학자로서의 자세를 유지하셨다. 그러하니 집안의 유일한 여인인 형수님의 고충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안살림이 힘들고 어려워도 부친은 재취(再娶)를 안하셨다. 그 이유는 재혼하면 또 다른 소생이 생길 것이고, 그래서 혹여 나와 내 동생이 구박을 받게 될까 염려하셨음이요, 자연히 가정의 평화가 깨질 것이라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 자신의 소중한 삶을 포기하고 어린 아들 둘을 안고 사셨다. 그랬으니 선친 스스로도 참아내기 힘든 일이 많았으리라. 당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 은혜는 갚을 길이 없다.


동생이 어렸을 때 허벅지가 크게 곪아서 칼로 1센티 정도 찢어야 하게 되었는데, 본인은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겁이 나고 안타까워 눈물을 쏟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정색을 하시고는, “옛날 중국에서 관운장이라는 장군이 적으로부터 독이든 화살을 맞았다. 그래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수술하면 너무 아파서 견디기 어려우니 쇠기둥에 몸을 묶어야한다는 의사 화타에게, ‘아무 걱정 말고 수술이나 하라’고 하면서 천연스럽게 바둑을 두었다. 뼈까지 독이 스며들어서 그것을 긁어내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는데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단다. 그런 것이 바로 사내대장부의 모습이다. 너도 훌륭한 대장부가 되어라”라고 하시며 상처를 칼로 찢고 치료하셨다. 지금도 고통을 참아야 할 경우에는 그 때, 그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또 어느 날 나에게 "장닭이 지붕에 올라가서 목을 쭉 빼고서 꼬끼오 하고 우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가장 시적(詩的)이겠는가?"하고 물어보셨다. 적당한 대답을 못하자, “너는 시인이 될 재능은 없다”고 하시면서 "소리를 드리운다."라고 말씀하시던 일도 기억난다.


돌아가시기 한 달 쯤 전에는 우리 5형제를 불러 모으시고 교훈을 주셨다. 옛날 어느 마을에 우애 좋은 형제가 개천을 끼고 살았다. 동생이 형 집에 가기 위해 돌다리를 건너는데, 큰 물고기가 뛰쳐나와 퍼덕거리고 있었다.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 고기를 안고 형님 집에 가서 요리를 해 먹고 나왔다. 그런데 형수가 종이에 싼 것을 주기에 뭔가 하고 물어보니, “그 고기 뱃속에서 빛나는 큰 구슬이 나왔습니다. 고기는 우리가 먹었지만 이 보물은 아주버님 몫이 분명하기에 드리니 가져가시라”고 주는 것이었다. “내가 형님 집에 가는 것을 신령님이 알고 나에게 전달하라고 한 것이지, 그게 어찌 내 복이겠습니까?”하고 뿌리치고 나와서 그 개천을 다시 건너가는데, 또다시 커다란 물고기가 뛰쳐나왔다. 그것을 집에 가져가서 손질하니, 똑같은 보물이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덧붙이시기를 형제간에 재물을 두고 다투는 일이 없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요즈음 재벌가의 후손들이 먹고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면서도 형이나 아우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크게 이루면, 그 재산을 탐하여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친의 유훈을 생각하게 된다.


선친께서 가르쳐 주신 많은 교훈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그 가르침들은 내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며 삶의 지침이 되어 주고 있다. 우리 5형제는 동생이 중심이 되어 재실(齋室)을 지어 헌납하고 후손들이 선친의 유훈과 은혜를 기리고 흠모하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모의 가르침이 자식에게는 거름이 되고, 영양가 있는 거름이야말로 영원한 가보(家寶)이며, 그 가보는 행복의 근원이 된다고 생각한다.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3년 0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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