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의 유학자 여섯 분 재조명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던 근세의 유학자들 여섯 분에 대한 ‘의령의 인물과 학문’ 학술대회가 30일 의령군민회관 공연장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는 의령문화원 경상대 남명학연구소가 주관하고, 의령군청 의령군의회 의령군 교육지원청 의령향교가 후원한다.
의령문화원은 ‘모시는 글’에서 “의령은 전통과 충절이 숨쉬는 유서 깊은 고장으로 뛰어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간에는 곽망우당을 중심으로 임란 때 충절을 세운 분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을 하였습니다만, 의령에는 이 분들 외에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귀감으로 삼을만한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라며 “이번 학술대회는 그간 조명을 많이 받았던 분들을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던 근세의 유학자들 여섯 분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였습니다“라고 했다.
특히 “이번 대회를 계기로 앞으로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의령의 많은 인물에 대해 연차적으로 조명하고자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허권수 경상대 교수가 ‘의령의 학문적 전통과 특색’, 윤호진 경상대 교수가 ‘석오 권봉희의 생애와 한시’, 최석기 경상대 교수가 ‘소와 허찬의 학문과 문학’, 김봉곤 순천대 교수가 ‘이천 남창희의 생애와 학문’, 정경주 경성대 교수가 ‘수파 안효제의 경륜과 절의에 대하여’, 전병철 경상대 교수가 ‘수산 이태식의 시대인식과 유학적 대응’, 문정우 경상대 박사가 .‘비천 전기진의 생애와 작품 세계’ 주제발표를 각각 한다.
허권수 교수는 “宜寧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자인 退溪 李滉과 南冥 曺植과 인연이 있는 고을로 학문적으로 남명과 퇴계의 영향이 모두 남아 있는 특별한 고을이다. 퇴계와 남명의 영향으로, 朝鮮 중기 이후로 의령에서 점점 많은 선비들이 배출되었고, 많은 문집을 남겼다. 여기에다 肅宗朝 南人의 영수인 眉叟 許穆이 십여 년간 우거하여 그 학문적 영향을 끼친 곳이기도 하다”라며 師承關係를 중심으로 한 學統을 위주로 고찰했다.
윤호진 교수는 “석오는 한말에 태어나 벼슬을 시작하면서부터 조선의 내외 정세가 걷잡을 수 없는 변화의 소용돌이를 만났다. 그는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를 구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고자 애를 썼다”라며 “상소문은 맨 처음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우려하여 올린 바 있고, 맨 뒤에는 김제군수에 임명된 것을 사임하는 상소를 올린 것이 마지막이다. 그 사이 올린 6편의 상소 가운데에는 짤막한 것도 있지만, 4,000여자에 이르는 장편의 상소도 있다. 그가 상소를 이처럼 길게 일이 있을 때마다 올린 것은 그의 문장력이 뒷받침이 된 것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시대에 대한 인식이 투철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최석기 교수는 “소와는 구한말 의령을 대표하는 유학자로서 경상우도에서 명성이 높았으며, 일제침략시기에는 무너져가는 유교의 도를 부지하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소와는 역사적 전환기에 지방의 유학자들이 현실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했는지를 살피는 데 주목해 볼 만한 인물이다”라며 “그러나 아직까지 소와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이 글은 구한말부터 일제침략시기를 살면서 유교의 도를 부지하고 지역의 문풍을 진작시키려 노력한 性齋學團의 許巑이라는 인물을 발굴하여 조명함을 목적으로 하되, 학문성향과 시문학의 특징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둘 것이다”라고 했다. 유종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