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공익을 위해 사심 버리고 서로 협력 단결해야 마을 발전
“향후 과제는 마을 앞 하천부지 꽃길조성, 마을의 솟대와도 같은 ‘돛대’ 정비, 마을 담장에 의미 있는 그림 그려 볼거리 제공, 마을 공동체 일들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마을로 만들기… ”
“아무리 진수성찬을 먹어도 타향은 늘 허전했습니다. 거기에는 미처 채우지 못한 아쉬움과 담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겐 고향은 언제나 채워주고 담아주는 어머니 품속 같은 곳이었습니다. 세상의 온갖 부귀를 다 누려봤지만 빈곳을 채워주는 고향만한 그 넉넉한 곳은 없었습니다. 공기 맑고, 물 좋고, 인심 좋은 내 고향 봉수면 오산음지마을로 귀향한 그날부터 부인의 건강이 나날이 몰라보게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손수 일궈낸 과수원에서 생산된 무공해 친환경 과일을 지인들과 나눠 먹는 재미와 공동체 마을발전을 위한 봉사활동의 보람 때문에 귀향생활이 정말 행복합니다.”
지난 1966년 안태고향인 봉수면 오산 음지마을에서 부산으로 출향하여 40여년만인 2005년에 다시 귀향(歸鄕)한 김광지(金光智․70) 씨는 자신의 귀향 동기와 보람을 이렇게 밝혔다.
대구에서 살고 있는 그의 고향 후배인 유창종 씨는 기자에게 어느 날 전화로 “귀향하여 열심히 살면서 지역사회의 봉사활동을 너무도 적극적으로 잘하고 있어 객지에 있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고향 선배가 있어 그의 귀향 미담을 지면에 소개했으면 좋겠다.”고 제의했다. 이로부터 2개월여 시간이 지난 12월 17일 정오에 김광지 씨를 오산마을에서 만났다.
먼저 부산에서의 생활을 묻자 그는 “부산 북구 구포동에서 40여년 간 ‘구포비니루상사’를 운영해 돈도 어느 정도 벌었습니다. 그런 후에는 낙동JC의 부회장. 특우회장, 라이온스클럽 활동 등을 통해 봉사의 참된 보람을 알게 되면서 구포동 주민자치위원. 파출소방범자문위원, 북구자율방범협회장, 한나라당중앙상무위원, 재부 봉수면향우회 부회장 등으로 지역과 향우회의 일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한 때는 주변사람들로부터 부산 북구 구의원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부인(조선이)의 반대로 단념한 적도 있습니다.”고 소개했다.
그는 부친이 2000년에 별세하고 모친마저 3년 뒤에 세상을 떠나게 되자 옥토의 논밭이 황무지로 전락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귀향을 위해 2004년 사업을 정리했다. 그 다음해부터는 귀향에 반대하는 부인을 부산에 두고 혼자서 귀향하여 황폐된 밭을 포크레인으로 과수원으로 만들었고, 생가도 귀향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리모델링했다. 그러자 부인도 김 씨의 뜻에 따라 부산의 부동산을 모두 타인에게 임대(월수입 250여만원)를 놓고 2008년에 귀향하게 되었다.
올해로 귀향 7년째를 맞이한 그는 “성공적인 귀향의 관건은 건강, 부인의 동의, 안정적인 생활비 확보, 최소한 자급자족의 전지보유, 농사기술 등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귀향이든 귀농이든 그 어떤 경우라도 고생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귀향 후 논 500평과 밭 400여평을 운동 삼아 경작하고 있다. 그의 가장 큰 귀향의 보람은 그동안 이 경작지와 별도로 버려진 밭 250평을 과수원으로 만들고 여기에 배나무 140주, 대봉 감과 단감나무 등을 식재해 매년 수확한 친환경적 과일을 객지에 있는 형제들과 지인들에게 나누어 먹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귀향 후 고향 마을이 점차 자신의 조그마한 노력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에서도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귀향 7년 동안 사비를 들여 마을회관 앞에 연산홍 꽃나무와 그늘이 좋은 느티나무 등을 식재하여 주변을 아름답고 정취 있게 단장했다. 마을 주민인 고용환 씨와 공동으로 노력하여 군청의 지원으로 과수원 주변의 비포장 농로를 포장하여 농민들의 농사에 편하도록 만들었다. 채 20명도 안 되는 그것도 모두 65세 이상의 노인들인 마을주민 상호간의 유대감을 돈독히 하는데 앞장서 노력하고 있다.
그가 고향 마을에서 이 같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주민들은 물론이고 출향인들의 전폭적인 성원에 있다. 그는 오산 음지․양지마을 출신 향우들의 모임인 전국오산부락연합회(1990년 창립)의 안태영(대구) 초대회장, 유점석(부산) 2대 회장, 박정복(서울) 3대 회장, 최학렬(대구) 4대 회장에 이어 5~6대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유창석(서울) 7대 회장에게 넘겨주기까지 향우들과의 두터운 인맥을 맺고 신뢰를 얻게 된 것이다. 이것은 그가 2009년 3월에 창립한 오산음지마을협의회 초대회장을 맡아 지난 1월 마을 입구인 음지교 좌측에 향우들의 후원으로 세운 ‘오산음지마을’ 이정표석이 입증하고 있다.
이 이정표석은 이 마을 출신인 노홍대 재부 봉수면향우회장이 김해 장유에서 귀한 청석을 구해 앞면에 ‘오산음지마을’을, 뒷면엔 유창종 재대구 향우의 헌시 ‘오산 음지 내 고향’을 새겨 기증한 것이다.
북에서 남으로/ 국사봉을 날다가/ 정겨운 산천이 마음에 들어와/ 잠시 머물러버린 까마귀 산. 그 아래 한가로이 돛배와 노닐다/ 영 영 떠나지 못한 그 영혼이/ 천만년 평화의 수호신 되어/ 오늘도 내일도 우리를 지켜주는 오산음지 내 고향. (오산 음지 내 고향-유창종 시)
오산음지마을 김해 김씨종친회장도 맡고 있는 김광지 씨는 향후 반드시 이루고 싶은 과제들을 이렇게 밝혔다.
“첫째 하천부지의 꽃길조성입니다. 정부에서 하천정비를 위해 이미 보상과 매입이 끝난 하천부지에서 아직도 무단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여 이곳을 아름다운 꽃길로 가꾸자는 것입니다. 둘째, 오산음지마을의 솟대와도 같은 ‘돛대’의 정비 사업입니다. 풍수 지리적으로 우리 마을의 지형이 돛배와 같아 마을의 평안을 염원하는 뜻으로 ‘돛대‘를 마을이 형성된 때(약 200여년 전)부터 선조들께서 마을 옆에 세웠는데 이곳에 콩 등 작물을 심고 있는데 이를 금지하고 잘 가꾸어 온전하게 보존하자는 것입니다. 셋째, 마을의 담장을 컬러 페인트로 의미 있는 그림을 그려 길손들에게 볼거리로 제공하자는 것입니다. 넷째, 마을 공동체 일들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대로 된 장부하나 없이 비체계적,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마을 공동체의 대소사를 체계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우리 마을을 군내에서 가장 모범적인 마을로 만들어보자는 의미입니다.”
이 같은 귀향의 보람과 과제를 안고 있는 김광지 씨는 “이 모든 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인 마을주민들이 모두 공익을 위해 사심을 버리고 서로 협력하며 단결해야 되는데 우리 마을 사람들은 옛날부터 단결과 협동심이 뛰어나 문제될 것이 없다.”며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박해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