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압문 호적 기록은 없어
일제시대 일본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지 60여년만에 의령출신 원혼의 연고자를 찾는 메일이 현해탄을 건너 의령신문사에 날아왔다.
메일을 전한 재일동포 김창진씨에 따르면 원혼의 이름은 삼산압문(三山壓文), 옛날 주소는 의령군 의령면 상리 77, 가족이름은 순자(順子) 등이 사망 당시 기록의 전부.
삼산씨의 원혼은 다른 한국인 1천135명과 함께 현재 일본 도꾜 유텐지(祐天寺)에 모셔져 있으며, 이들은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군인 및 군속으로 남양군도인 브라운섬에서 희생됐거나, 해방이후 우끼시마마루(浮島丸)를 타고 귀국하다 의문의 폭발사고로 희생됐거나,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서 연합군의 포로 감시원으로 근무하다가 전범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고 희생된 원혼들이라는 것이 재일동포 김씨의 설명.
김씨는 전쟁이 끝난 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이 쓸쓸하게 임시로 안치가 되어있는 이들 원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자 18년전부터 해마다 8월22일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며 3년 전부터 이들 원혼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이제야 그 원혼의 연고자를 찾는 내용의 메일을 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의령읍 오세용 계장에 따르면 삼산은 성 여(余)씨를 창씨개명한 것이고, 이름은 당시 그대로 사용했던 점을 고려하면 그 원혼의 이름은 여압문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령읍에는 당시 호적이 1953년 지리산 빨치산의 습격에 소각돼 여씨의 신원은 연고자나 지인을 통해 찾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연락처 의령신문 편집국 (055)573-7800 <김창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