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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입산인가?… 의령 근·현대사의 첨병 현장이기 때문

의령한글공원 내 안호상 박사
좌상 건립, 3·1운동 주역 안준상
제헌의원 서훈 누락, 안맹제
안상록 독립유공자 포상신청
탐진 안씨 인물 잇따라 조명

독립운동 백산 안희제 연계
부림 입산마을 인물 잇따라 배출
유적 및 민속 고스란히 전승
마을 전체 대상 관리·연구하는
문중 발전연구회 활동 ‘주목’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8월 24일
다시 쓰는 의령 9경

▶2008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부림면 입산마을 안범준 고택(사진 오른쪽 앞), 그 뒤 안준상 고택, 그리고 그 왼쪽 안호상 고택 모습.
                                                                                                ⓒ 의령신문
▶199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부림면 입산마을 백산 안희제 생가 전경. ⓒ 의령신문

지난 2023년 9월 15일. 경남도교육청의 의령 미래교육원이 개원됐다. 이 때를 전후하여 거센 변화의 바람이 의령에 휘몰아쳤다. 의령읍 서동리 행정타운 건설, 의령읍 도심 재편성, 한우산·자굴산 산림관광 자원 개발 등이 지역 변화의 바람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 변화의 바람은 의령읍, 한우산·자굴산 일대에 한정적으로 집중적으로 불었다. 의령읍에서 부는 변화의 바람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힌 만큼 이곳을 거점으로 하여 의령군내 다른 지역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역 균형 발전이 동시에 모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차원에서 의령신문은 지난 2007년 선정된 ‘의령 9경(景)', 즉 충익사, 자굴산, 봉황대, 벽계관광지, 정암루, 탑바위, 수도사,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호암 이병철 회장 생가 등을 대상으로 개별·독립적으로 조명하는 기존 방식에 더하여 지역권역 단위와 연계하여 복합적으로 개발·발전·변화를 모색하는 ‘의령 9경 이야기’를 다시 쓰고자 한다. (편집자 주)

( 7 ) 백산 생가 너머

의령 8경인 백산 안희제 생가를 품은 부림면 입산마을. 뒤로는 장백산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앞으로는 유곡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이다. 풍수지리에서는 이 땅을 일컬어 “큰 충신이 아니면 역적이 날 자리”라고 예언했다. 일제강점기 엄혹했던 시절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온몸을 던진 독립운동의 거점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진 지도자를 화려하게 배출한 곳이다. 오늘날 지역사회가 “왜 입산마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곳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입산마을은 단순한 집성촌이 아니라,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늘 가장 앞장서서 전진했던 첨병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 마을을 고향으로 둔 탐진 안씨 문중의 역사적 인물들과 문화유산이 새롭게 조명 받으면서, 입산마을의 역사적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의령한글공원에
우뚝 선 ‘한뫼의 정신’


7월 9일 의령읍 서동행정타운 내에 조성한 ‘의령한글공원’의 준공식은 입산마을의 역사적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총사업비 21억 원이 투입된 이 공원에는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데 헌신한 의령 출신 3인의 좌상이 세워졌다. 남저 이우식, 고루 이극로 선생과 함께 입산마을 출신의 한뫼 안호상(1902∼1999) 박사다.
안호상 박사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독립 운동가. 해방 후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한글 전용을 채택했다. 한글공원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헌신하며 오늘날 한글 체계와 국어사전 편찬의 토대를 마련한 정신을 기리고 대한민국 한글문화도시 의령의 정체성을 담아낸 상징 공간. 오태완 의령군수는 “의령한글공원은 대한민국 한글문화도시 의령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상징적인 공간”이라며 “세 분의 정신을 계승해 한글의 가치와 역사를 널리 알리고, 의령만의 한글문화 자산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려진 영웅들
문화유산은 남았으나


그러나 화려한 조명 뒤에는 여전히 어둠 속에 갇힌 역사의 그림자도 존재한다. 입산마을이 낳은 또 다른 거인, 백산 안희제 선생의 친척이자 기미년 3·1운동의 주역인 안준상(1898∼1994) 선생의 서훈 누락 문제가 대표적이다. 안준상 선생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서울에서 일어난 기미독립선언서를 목숨을 걸고 고향 의령으로 몰래 반입한 인물이다. 그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가져온 선언서를 직접 등사하여 영남 지역 및 의령 전역에 배포했으며, 현재의 입산마을 만세공원 터를 중심으로 의령 지역의 만세운동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했다.

동래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 경제학과를 거친 엘리트였던 그는, 개인의 안위를 버리고 백산 안희제 선생의 민족 기업 ‘백산상회’에 투신해 항일 자금 조달과 비밀결사 활동에 깊숙이 관여했다. 해방 후에는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의령군선거구로 출마해 당선되어 대한민국의 첫 헌법을 제정하는 데 기여했다.

이처럼 뚜렷한 업적에도 안준상 선생은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 비밀결사 활동 특성상 일제 측의 공식 재판기록이나 수형기록 등 직접적인 증빙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안호상 박사 역시 초대 문교부 장관 등 고위 정관계 행적이 워낙 뚜렷하다 보니, 국가보훈부 심사 과정에서 ‘독립운동’ 그 자체보다 해방 후의 정치적 행보에 가려져 서훈이 뒤로 밀려난 상황이다. 두 선각자가 독립유공자 서훈 명단에서 누락되어 있는 현실은 의령의 역사를 반쪽만 기억하는 것과 같다. 경상남도와 의령군은 이 두 분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각각의 고택을 도 지정 문화유산자료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으나, 집은 문화유산인데 주인은 독립유공자가 아닌 역설적인 상황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97년 만의 서훈 신청
낙동농민조합 사건
그리고 독립운동의 거점

반가운 소식은 입산마을을 중심으로 한 항일 민족운동의 역사가 하나둘씩 발굴되어 공식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28일 경상남도는 1929년 일제의 농업 수탈에 저항했던 ‘의령군 낙동농민조합 사건’의 주역들을 마침내 독립유공자로 서훈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경상남도가 숨은 독립운동가 발굴 조사를 통해 수형 기록과 당시 신문 기사를 찾아내면서, 입산마을 출신의 탐진 안씨 문중 인물인 안맹제, 안상록 선생 등 2명이 ‘2026년도 제1차 포상 신청’ 명단에 포함된 것이다. 낙동농민조합 사건은 단순한 소작료 인하 투쟁을 넘어, 농민들이 주체가 되어 일제의 식민지 농업 정책과 수탈 체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직적인 항일 민족운동이었다. 

당시 안맹제 선생은 조합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고, 안상록 선생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장남으로 낙동농민조합 위원장 출신임이 확인되었다. 이들의 공적이 97년 만에 비로소 명확히 증명되었다.

이처럼 입산마을이 끊임없이 걸출한 인물을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던 백산 안희제 선생과의 긴밀한 연계가 있었다. 안희제 선생이 세운 초계 안씨 가문과 입산마을의 탐진 안씨 가문은 서로 깊은 유대를 맺으며 민족의식을 공유했다. 

안희제 선생이 1908년 창남학교를 설립하여 문명개화를 이끌 인재를 양성할 때도 입산마을의 청년들이 중심에 섰다.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의병장 휘하에서 군자감 책임을 맡아 군량미와 군수품을 조달했던 의병장 안기종(1556년 출생) 선생의 우국충정을 이어받은 후손들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위기 앞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3·1운동의 안준상, 한글 수호의 안호상, 농민운동의 안맹제와 안상록에 이르기까지, 백산 안희제라는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연계된 입산마을의 인물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역사적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해냈다.

의령에서 만주 대륙까지
스크린과 교육 현장으로
살아나는 안희제의 ‘발해농장’


특히 최근 들어 안희제 선생의 항일 투쟁사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의령군과 KNN이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백산-의령에서 발해까지>가 그 도화선이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안희제 선생이 1932년 만주 지역에 세운 독립운동 기지이자 민족 자급자족 공동체였던 ‘발해농장’의 실상을 최초로 대중에 공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제의 삼엄한 눈을 피해 만주 한복판에 대규모 농장을 건설하고 이를 독립운동의 인적·물적 자금줄로 활용했던 안희제 선생의 대담한 경영 능력과 불굴의 독립 의지가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겼다. 이 영화는 의령의 선각자들이 단순히 지역에 머물지 않고 만주 대륙을 무대로 거대한 항일 전선을 구축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교육 현장의 실천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제81회 광복절을 앞둔 지난 8월 12일, 안민석 경기도교육감(같은 의령 출신)은 직접 만주 지역의 ‘발해농장’ 유적지를 방문했다. 안 교육감은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백산 안희제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척박한 만주 땅에서 꽃피웠던 민족 교육 정신을 기렸다. 안 교육감은 이번 만주 현장 방문을 계기로, 교과서 중심의 주입식 역사 교육에서 벗어나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삶과 숨결을 학생들이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현장 중심의 역사교육 대전환’을 과감하게 다짐했다.

이처럼 다큐멘터리 영화의 발굴과 교육계의 현장 방문 성과는 백산 안희제 선생과 긴밀하게 연계된 부림 입산마을의 역사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데 강력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마을 내부에는 이들이 숨 쉬고 활동했던 유적과 선조들의 정신이 담긴 민속문화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전승되고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선조들의 덕행과 정려각을 정비해 만든 ‘효충원’이 장엄하게 맞이한다. 또 의병의 신발과 의복을 보관했던 재실이자, 조선시대 이 지역의 선비이자 학자였던 안찬(1829년 출생) 공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조양재(朝陽齋)’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서 있다. 비록 비지정 문화유산이라는 한계로 인해 관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유곡천 주변의 둔치와 고택들은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한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문중 의령입산역사문화
마을발전연구회 설립
‘미래형 역사마을’ 관리 나서


이처럼 찬란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입산마을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움직임은, 개별 문화재의 관리를 넘어 마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역사·문화 자원으로 바라보고 체계적으로 관리·연구하는 문중 중심의 활동이다. 탐진 안씨 헌납공파 문중을 중심으로 2024년 설립된 사단법인 ‘의령 입산 역사문화마을 발전연구회(대표 안장기)’의 활동이 바로 그것이다. 

연구회는 문중에 산재한 문화재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과 결합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과거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된 정부의 문화재 활용사업과 농촌테마마을 선정 등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국가사적지 지정 추진이 ‘불가’ 판정을 받았던 아픔을 거울삼아 더욱 정밀하고 체계적인 학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재청, 의령군 등과 정보를 공유하며 생가 및 고택, 종갓집을 활용한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나아가 유곡천 주변 정비를 통한 관광 활성화 등 주변 지역의 생태·문화자원과 연계한 콘텐츠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문중 구성원들이 스스로 연구자가 되고 관리자가 되어 마을 전체의 가치를 높이는 이 활동은, 자칫 잊히기 쉬운 문중 역사를 현대적인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 모델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학계와 지자체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결국 “왜 입산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확하다. 그곳이 바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났고, 나라의 기틀을 세울 때 가장 깊이 고민했던 인물들이 치열하게 살아 숨 쉬었던 ‘의령 근·현대사의 첨병 현장’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한 발해농장의 역사적 재조명과 경기도교육청의 역사교육 대전환 다짐, 그리고 문중 발전연구회를 필두로 마을 전체를 가꾸고 연구하려는 주체적인 노력이 맞물리며 입산마을의 역사는 지금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국가보훈부의 전향적인 서훈 심사와 지자체의 지속적인 문화재 보존 지원이 더해진다면, 부림면 입산마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 교육의 최전선이자 가슴 벅찬 역사 관광 자원으로 우뚝 서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선조들이 뿌린 씨앗을 키워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입산마을의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전재훈·유종철 기자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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