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06-25 23:28:26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기고

전장을 달린 영웅, 군마 레클리스를 기억하며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25일
ⓒ 의령신문
 
정영만 (한국자유총연맹 대구시지부 고문·전국 의령군 향우연합회 고문)

올해로 6·25전쟁 발발 76주년을 맞는다. 해마다 6월이면 조국을 위해 쓰러진 수많은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호국(護國)의 대열에는 사람들과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하며 끝까지 전장을 지킨 한 마리 말도 있다.

1953년 3월, 경기 연천의 고지는 짙은 포연으로 뒤덮여 있었다. 포탄이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총성이 산허리를 갈랐다. 사람조차 몸을 낮추고 숨을 곳을 찾아야 했던 아수라장 속에서 한 마리 말이 탄약을 등에 싣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포성이 가까워져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한국전쟁의 군마 레클리스(Reckless) 이야기다.

레클리스의 원래 이름은 ‘아침해’였다. 1952년 10월, 미 해병 제1사단 제5연대 무반동포 소대의 에릭 페더슨 중위가 경마장 소년 마주(馬主) 김흑문으로부터 250달러에 사들이면서 이 말의 운명은 바뀌었다. 

소년에게는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누나의 의족을 마련할 돈이 필요했다. 전쟁의 참화(慘禍)가 평범한 이들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를 보여주는 가슴 아픈 사연이다. 그렇게 전선으로 보내진 작은 암말은 머지않아 미 해병대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이 된다.

처음 맡은 임무는 탄약과 보급품을 운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병들과 함께 생활하며 포성이 울리면 몸을 낮추고, 한 번 지나간 이동로를 스스로 기억할 만큼 영리하고 용감한 전우로 성장했다. 특히 경기 연천에서 치러진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 레클리스의 활약은 눈부셨다. 

하루 동안 무려 51차례나 탄약 보급소와 포진지를 오갔으며 대부분의 길을 인도하는 병사 없이 홀로 달렸다. 그렇게 운반한 탄약은 약 5톤에 이르렀다. 전선으로 올라갈 때는 탄약을 실었고 내려오는 길에는 부상병을 태웠다. 두 차례나 파편에 상처를 입고도 다시 포화 속으로 향했다.

당시 전선은 한순간의 판단이 수많은 생사를 가를 만큼 위태로웠다. 말은 전쟁의 이유도, 자신이 마주한 위험의 크기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레클리스는 자신을 기다리는 전우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했다. 그 작은 등 위에는 탄약과 부상병뿐만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린 장병들의 희망도 함께 실려 있었을 것이다.

미 해병대는 레클리스를 단순한 운송 수단으로 대하지 않았다. 레클리스의 전공을 인정해 상병과 병장으로 차례로 진급시켰고, 1959년에는 동물로서는 미 해병대 역사상 최초로 우리 군의 중사에 가까운 ‘Staff Sergeant’ 계급에 오르는 영예를 안겼다. 훈장과 표창도 뒤따랐다. 한 마리 말에게 군의 계급과 명예를 수여한 것은 레클리스가 전쟁에 동원된 장비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순간을 함께 견딘 엄연한 전우였음을 뜻한다.

오늘날 경기 연천에는 레클리스를 기리는 동상과 거리가 조성돼 있으며 미국 국립해병대박물관과 캠프 펜들턴 등에도 동상과 기념 공간이 마련돼 있다. 태어난 곳은 한국이었고 함께 싸운 부대는 미군이었지만 그가 지켜낸 것은 국적을 넘어선 생명과 자유였다. 레클리스는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의 역사를 묵묵히 증언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6월은 호국의 뜻을 다시 가슴에 새기는 달이다. 우리는 흔히 영웅을 위대한 지휘관이나 이름난 전사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진정한 영웅이란 가장 두려운 순간에도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외면하지 않는 존재인지 모른다. 포화가 뒤덮은 산길을 51차례 오르내린 작은 말이 남긴 교훈도 바로 그것이다.

76년 전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과 유엔군 참전용사들 그리고 그 곁을 지킨 레클리스의 헌신을 기억하자. 오늘의 평화가 얼마나 값비싼 희생으로 지켜졌는지를 후대에 전하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다짐하는 일이다.

연천의 고지를 묵묵히 달렸던 레클리스의 발굽 소리가 오래도록 우리 가슴에 울리기를 바란다. 그 소리는 평화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 스스로 지켜낼 때 비로소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말없이 일깨우고 있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25일
- Copyrights ⓒ의령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2026년 7월 정기인사 승진심사 결과..
의령군, 청년 소통·교류 프로젝트 `뭉쳐야 청춘` 본격 운영..
(사) 건설기계개별연명사업자협의회 의령지회, 독거노인 주거환경개선 봉사활동..
의령소방서, 대의초등학교 ‘한국119청소년단’발대식 개최..
의령교육지원청, 2026. ‘의령 학부모 대학’ 첫 발을 내딛다..
경남동부보훈지청-두산에너빌리티 보훈가족 주거환경 개선 봉사활동 해피하우스 실시..
의령군, 의령전성시대 준비단 본격 가동…100대 과제 발굴 나서..
건보 함안의령지사, 아동보호시설 혜림학원에 교육비 후원금 전달..
의령군 상동 우리동네살리기 사업, 지역균형발전 우수사례 선정..
경남도, 임산부 8,380명 대상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지원..
포토뉴스
지역
경남도, 이제서야 설계 마무리 내년 12월 제방 보완 완공될 듯..
기고
정영만(한국자유총연맹 대구시지부 고문·전국 의령군 향우연합회 고문)..
지역사회
후손 시인 유천 안종만..
상호: 의령신문 / 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51 / 발행인 : 박해헌 / 편집인 : 박은지
mail: urnews21@hanmail.net / Tel: 055-573-7800 / Fax : 055-573-7801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아02493 / 등록일 : 2021년 4월 1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재훈
Copyright ⓒ 의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15,853
오늘 방문자 수 : 10,179
총 방문자 수 : 22,781,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