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땅이 풀리면서 봄이 오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와 있는 봄을 사는 일이 고되고 힘들다고 미처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 사는 일이 풀린 땅에 무언가를 심고 기다리는 일인 것처럼 순리를 따르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순리를 존중하며 무조건 따르려고 했을 것이다.
순리라는 것은 정해진 이치대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순리만을 존중하며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행동하고 조심스러워 했다. 그러나 그 순리가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사전적인 의미로 순리라는 말은 ‘무리가 없는 순조로운 이치나 도리’ 라고 풀이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의심을 가지게 된다. 무리가 없는 순조로운 이치나 도리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남이 장에 가니 나도 간다는 식의 부화뇌동이 순리인가? 아니면 남이 장에 가지만 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가지 못한다면. 여기서의 순리란 무엇인가? 남들 다 가는 장에 가지 못하는 사람을 대열에서 이탈했다고 순리를 거스르게 했다고 말할 것인가?
순리라는 것은 일정한 집단이 표본으로 또는 그리해야만 한다고 만들어 놓은 규칙일 뿐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순리를 우리는 지겹게 봐왔다.
왜냐하면 순리라는 사전적의 의미가 그리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내편이 아니면 무조건적으로 눈을 감아버리며 외면하고, 나쁜 것인 줄 알지만 내편이니까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원칙이 그동안 순리라는 이름으로 행세해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4.11총선에서도 순리를 앞세운 배타적인 편 가르기가 판을 칠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편향적인 생각이다.
나는 당원이니까, 고향이 같으니까, 학교선후배니까 하는 편향적인 사고가 나라를 망치고 지역을 병들게 하며 사람과의 관계에 금을 긋게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후보자들은 발품을 팔면서 인연에 호소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식의 선거운동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한 현실이다.
경남에서 가장 작은 인구를 가진 의령도 마찬가지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이웃이 원수가 되고, 떨어진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긴 동면에 들어가게 만든다.
편 가르기가 성공해서 당선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임을 얻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 된다. 신임을 얻지 못하는 당선자는 결국 내 편만 안고 갈 수밖에 없고, 그 많은 내편을 모두 끌어안기도 버겁고 기여도에 따라서 차별적인 대접을 하다 보니 선거 때마다 줄을 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젠 우리도 선진 국민답게 편향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일해 줄 수 있는 일꾼을 뽑아야 한다는 순리를 새롭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내편 네 편이 아닌 지역발전을 위해서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거짓이 없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서서 결심하고 누워서 결심을 취소하는 후보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만족하지 못하는 갈증만 줄 뿐이다.
순리를 따르자니 정이 울고 정에 따르자니 순리를 역행하게 되고 하는 식의 편향적인 생각은 과감하게 버리고 순리가 바르지 못하면 바르게 잡는 순리가 필요한 시기다.
그릇된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루하루가 주는 참맛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正이 되는 순리를 위해서 지금은 편향적인 생각을 버릴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