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해다. 설 연휴를 맞아 부산스럽던 농촌도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골목을 차지하던 승용차가 쑥 빠져나간 자리에는 을씨년스럽게 가랑잎만 나부낀다. 꼭 촌로의 허전한 마음 같다. 귀성인파로 붐비는 거리 소식에 고향 다니러 온 자식도, 자식을 맞이한 부모도 마음 편하게 설 연휴를 즐길 수 없다. ‘길 막힌다. 퍼떡 준비하고 나서라.’ 차례 상 물리기 바쁘게 독촉한다. 짧은 연휴 탓에 이웃을 돌며 어른께 드리던 세배도 생략이다. 언제부턴가 농촌도 내 가족 위주로 보내는 명절이 당연시 되어버렸다. 이웃 어른 찾아다니며 세배 드리고, 그 집에서 설음식 차려내고 떡국 끓여 손님 대접하던 풍습도 사라져버렸다.
올 설은 지난해보다 더 조용해진 느낌이다. 동네에 초상이 난 탓이기도 하다. 까치설날 상여꾼으로 갔다 온 남편이 푹 한숨을 쉰다. 동네마다 빈 집이 많단다. 도시 사는 아들에게 제사수발을 맡기면 촌로는 역귀성을 한다. 도시의 자식 집에 가서 설을 쇠고 오는데. 오가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다고 아예 혼자 기거하면서 설을 나는 어른도 계신다.
어떤 할머니는 며느리 눈치가 보여 설 쇠러 아들네 안 간다고 했다. 촌집에 있으면서 친정 다니러 오는 딸들 기다린다고 했다. 딸도 시댁에서는 며느리다. 며느리노릇 하고나면 쉬고 싶다. 편하게 쉴 수 있는 자리가 친정나들이니 촌로에게 딸은 생전 효녀가 아닐 수 없다.
설 이튿날, 형님과 동서 식구도 떠났다. 올 때도 바리바리 싸 왔지만 갈 때도 바리바리 싸 간다. 어머님은 설 전후해서 차근차근 챙겨놨던 농산물을 설날 오후가 되면 보따리에 싸 주신다. 올해는 우리가 농사지은 참깨로 짠 참기름과 산초기름, 콩 등을 선물할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창고에 간수해 놨던 배추와 텃밭에 묻어 놨던 무도 한 포대씩 쌌다. 돈으로 치면 별 거 아니지만 정성이 담긴 선물 아닌가.
시아버님은 승용차 두 대가 모롱이를 돌아 사라지자 축축하게 젖은 눈가를 훔치며 하늘을 본다. 늘 잔병치레로 병원나들이가 잦던 아버님도 설날은 짱짱했다. 삼형제 앉혀 놓고 술잔 기울이면서 연신 즐거워하셨다. 촌로에게 도시 사는 자식은 그리움이다. 옆에 사는 자식은 언제든 볼 수 있으니 그리운 줄 모르지만 멀리 있는 자식은 자주 볼 수 없으니 늘 그리움이다. 또한 그 아들이 맏이일 때는 그리움의 강도가 더 세다. 촌로에게 맏이는 집안 대들보 같은 존재라서 그럴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아침이다. 농사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 것 같다. 올해는 좀 더 나은 삶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용의 해, 여의주의 오묘한 빛으로 모든 사람의 삶이 환하게 열리기를 염원한다. 이무기가 승천하여 용의 자리에 앉듯이 민초의 삶에 대복이 내리는 해가 됐으면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