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진사태, 천안함 사태, 유럽발 경제위기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유난히도 힘들었던 2011년이 지나고 2012년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를 맞았다. 작년 11월초 남편과 함께 홍콩으로 늦은 휴가를 떠났을 때의 일을 생각하면서 새해에는 모든 분야의 모든 일들이 작년보다는 많이 나아지길 기원하는 마음이다.
홍콩은 제주도의 절반보다는 조금 크고 2/3에는 못 미치는 작은 나라다. 하지만 금융 선진국인 영국이 150년간 통치해온 탓에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들 정도로 금융업이 발달한 나라다.
홍콩은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일어났던 아편전쟁으로 인해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로 지내다가 1995년 155년 만에 중국 영토로 반환되었다. 반환 과정에서 영·중 두 나라는 홍콩 전역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하는 대신, 반환 후 50년간은 홍콩의 현행체제를 유지하는 일에 합의했었다. 그래서 일국이 체제(一國二體制)의 행정이 유지되는, 중국이라기보다는 영국풍의 냄새가 짙은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이 홍콩에 갈 때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데 막상 중국본토에서 홍콩을 입국할 때는 오히려 비자가 필요했다. 아마도 그건 엄청난 대륙의 인구가 무질서하게 좁은 홍콩으로 드나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닌가싶다.
여행 첫날 옵션관광인 중국의 심천관광을 위해 출국수속을 밟을 때였다. 그런데 10여명이 조금 넘는 우리 일행을 밀치고 족히 육십 명은 됨직한 중국 관광객이 소위 새치기란 것을 했다. 우리일행의 정열 되지 못한 작은 틈새가 원인이었다. 수적으로 그들의 1/5정도밖에 안 되는 열세인 상황에서 가이드의 거친 항의도 소용이 없었고 공항직원도 분쟁에 휘말리기 싫었던지, 아니면 자국민에 대한 묵시적인 동의를 하느라 못 본체 하는 건지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상황에서 느낀 건, 세상 이치가 질서에 의하기보다, 때로는 힘의 논리에 의해 억울한 틈새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2002년 동계올림픽 때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전에서 미국선수 오노의 오버액션 사건 같은 것이다. 당시 우리의 김동성 선수가 오노선수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실격 처리되고 오버액션으로 반칙을 일삼던 오노에게 금메달이 넘어갔던 사건이다.
독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신라시대부터 독도가 우리 땅이란 사실의 역사적 고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자꾸만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이제 대한민국이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고 보니 함부로 하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일본은 세계 각국에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알리는, 악의적인 틈새로 질서를 교란시키고 있다.
틈새를 비집고 침입하는 일에 건강이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세계인을 공포로 떨게 했던 사스나 질병도 건강에 틈을 보인 사람에게 주로 찾아온다. 건강한 사람은 병원균에 대한 차단막이 설치되어있기에 병균이 침입하기 힘들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은 그 차단막이 튼튼하지 못한 이유로 쉽게 병에 걸린다.
이번 홍콩 여행에서 나의 경우만 봐도 그랬다. 다소 타이트한 일정이었지만 다른 사람은 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마지막 날 홍콩과 마카오간 페리호에서 심한 어지럼증과 배 멀미에 시달려야했다.
배안의 화장실에서 두 번의 구토를 하고 미리 준비해 간 바늘로 여섯 손가락을 따며 응급조치를 취하고 난리를 쳤지만 하선하자마자 또 심한 구토를 했다. 그렇게 비실대며 홍콩 공항에 도착한 뒤 공항에서 뚱뚱했던 어떤 여자가 세게 밀고오던 카터에 걸려 그만 넘어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또 귀국 후에도 일주일 정도 된통 앓았다. 이는 순환기계통의 몇 가지 질병이 바로 내 건강을 해치는 틈새였기 때문이다.
홍콩은 무역업 외 선진 기법 중 제일 어렵다는 금융업이 발달한 도시다. 특히 해지펀드(hedge fund)※의 핫머니(hot money)※들이 타깃으로 삼은 나라의 틈새를 파고들어 세계경제를 교란시키는 일과 ‘돈 놓고 돈 먹는 식’으로 돈이 될 만한 일을 고의적으로 벌이고, 또 그 일로 잇속을 차리는, 고도의 정보력과 테크닉이 요구되는 금융 산업이 아주 발전한 나라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며 세계경제의 흐름에 편승하려면 이 기법 또한 배우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이처럼 고도의 신경이 쓰이는 금융 산업이 발달한 나라라 그런지 엘리베이터, 식당, 화장실 등 모든 곳에 ‘操心하세요(be careful!)’라는 문구가 많이 붙어있었다. 방심하면 여러 형태의 위험에 그만큼 많이 노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내게는 操心하세요(be careful)란 문구가 ‘틈을 보이지 마세요.’란 글자로 다가왔다.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틈을 보여주지 말아야 질서가 지켜지고, 또 내 것을 지킬 수 있으니 참으로 살아가기 피곤하고도 힘든 세상이다. 오죽하면 ‘역사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말이 생겼겠는가?
틈새를 노리고 새치기한 중국 관광객을 보고 느낀 바가 있다. 이처럼 국력이든 기업이든 건강이든 질서라는 의미는 정신 차리고 허술한 틈새를 보이지 않을 때만 그 질서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매사에 정신 줄 놓고 사는 자체가 이미 질서 속에서 이탈되어 무질서의 늪으로 빠져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정신 차리고 살아야 될 일이다.
※해지펀드(hedge fund): 주식 채권보다는 파생상품 등의 고수익, 고위험 분야에 투자하는 투기자본.
※핫머니(hot money): 투기적 이익을 찾아 국제금융시장을 이동하는 단기 부동자금(浮動資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