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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온 손님

배민숙(자유기고가․가례면)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12월 03일











▲ 배민숙 자유기고가
지난해 난 드라마를 배우기 위해서 서울에 있는 한국방송작가교육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의령에서 왔다는 내 소개가 끝나자 저마다 의령이 어디야? 경북이야? 하면서 되묻기를 많이 했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가는 수업에 망개떡을 가지고 가면서 이것이 의령의 특산품이라고 소개를 했고 그때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우리 조원 몇 명이 담당 선생님과 함께 여행을 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남의 기쁨보다는 망개떡 하나로 알린 의령을 소개할 만한 꺼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언뜻 생각나는 것이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은 몰라도 삼성은 안다고 하는 이병철 생가와 일붕사, 그리고 수도사와 곽재우장군이 내 생각의 전부였다.


이런저런 고민들을 하고 있는데 서울사람들이 선생님과 땅거미가 넘실거릴 즈음 도착을 했다. 미리 준비해둔 삼겹살과 용덕막걸리를 마시며 드라마 강의가 이어졌고 열띤 토론이 오갔다. 열기도 식히고 취기도 삭힐 겸 거실 창을 연 서울사람들은 비명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고 이내 맨발로 뛰어 나갔다. 보름을 넘긴 달빛과 돋보기의 초점으로 태우던 먹지 같은 하늘은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였다. 매일 마당의 하늘을 품고 살았던 나조차도 몰랐던 황홀함에 같이 함성을 지르자 서울사람들이 이상하다는 식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건 금성 일 것이고 저건 오리온자리 그 옆엔 처녀자리 같다는 앞뒤도 맞지 않는 내 맘속의 별들을 찜하면서 맷집 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기분 좋게 맞았다. 이렇게 예고 없이 가져다준 하늘과 바람이 꼭 드라마의 예고편 같지 않니? 드라마는 이런 감동을 수시로 줘야 시청자의 채널이 돌아가지 않는 법이라고 여행에서도 일침을 놓으시고 선생님과 서울사람들은 새벽과 동침에 들어갔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하늘과 바람의 냄새가 의령의 망개떡을 단숨에 눌렀다.


다음날은 이병철 생가와 일붕사를 둘러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의령에 아직 서툰 내가 나보다 더 초짜인 길 원장님의 안내를 받기로 했다. 내가 사는 마을에 달포정도 늦게 전입해 오신 분인데 집 소개를 내가 했다는 이유로(사실로 말한다면 이장님의 소개였지만 그 중간역할을 내가 한 것이었다.) 부탁을 드렸던 것이다. 게으름이 미덕인줄 아는 나와는 반대로 길 원장님은 완전한 의령사람으로 살아가시기 때문이며 의령의 봇도랑 흐름까지 파악하고 계셨기에 청국장 한 그릇에 단단히 엮이신 것이었다. 읍내를 지나 몇 개의 산길을 넘어 이병철 생가에 도착했다. 말끔하게 단장된 생가보다는 나름대로 氣를 받는다고 명당을 찾아 헤매느라 침묵을 지키더니 생가를 나와서는 그냥가면 서운하다고 어묵과 붕어빵을 먹고 일붕사로 향했다. 그런데 이미 충만한 氣를 받아서 인지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인지 그냥 가자고 한다. 돌아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왔던 길로 또 하나는 자동차길이 위험하긴 하지만 아름다운 둘레길이 있다고 길 원장님이 설명하자 원래 재방송은 재미없다고 둘레길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임시도로가 한우산의 정상까지 이어져 있어 오르는 길은 쉬웠지만 그 풍경은 유홍준 교수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문화재 감이었다. 서울사람들은 벽계저수지부터 터진 감탄이 정상에 발을 디디면서는 되려 조용해졌다. 그물처럼 걸려있는 산의 너울들 그 정수리에 남아있는 하현달 만하게 걸린 기름기 빠진 햇살의 쓸쓸함, 물감으로 그려낼 수 없는 거대한 풍경화의 아름다움에 입 벌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렇게 서울사람들은 조용히 소월의 진달래가 피는 봄날을 다시 기약하고 떠났다.


거실 창으로 매일 보는 산이 자굴산인지 한우산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랴 싶다. 그리고 주말에 형형색색으로 나는 패러글라이더들의 하늘비행을 난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땅을 딛고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며 올려다보는 세상과, 내려다보는 세상 그 중심에 의령이 있고 내가 있었다.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1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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