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집에서 약 7㎞ 정도 떨어진 서울대입구역까지 갈 일이 있었다. 그 구간을 차로 통과하는 동안, 야광조끼를 입고 도로 청소를 하는 환경 미화원을 서너 명 보았다. 그때는 아침이라 그리 덥지는 않았지만, 요즘처럼 아열대성 기후를 방불케 할 정도로 푹푹 찌는 더위에 그분들의 고생 또한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
요즘은 국민소득이 높아진 탓에 휴일이나 연휴를 여행지에서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복잡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잠시 자연의 품안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삶을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에너지 넘치고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연휴나 휴가철이 되면 피서지나 관광지 또는 놀이공원 등에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 해주는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나, 또 우리가 함부로 버린 쓰레기로 인해 자연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의 경제발전이 급격히 성장하여 세계 10위권에 진입하자, 빠른 경제 성장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국민의식이 낳는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자 토요 휴무를 시행하는 직장도 늘고, 직원들의 복지차원에서 직원이 원하는 날에 연월차 휴가를 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이렇게 삶의 질이 높아지다 보니 연휴나 휴가철이면 각 여행지의 콘도나 호텔 예약이 일찌감치 동이 나고, 원화절상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화폐가치가 올라가다보니 국내여행 못지않게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 또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이런 호사를 대부분의 국민들이 다 누리는 것만은 아니다. 아직까지 여행 같은 것은 꿈도 못 꾸고 자신의 분야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시는 분도 많다. 어쨌든 이러한 풍속도는 먹고사는 문제가 관건이었던,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1980년대를 잠시 뒤돌아보자. 그 시절의 휴가란 개념은, 일 년 중 여름 한철만 누리는 특별한 의미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일 년간 열심히 일해서 더운 여름날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를 찾는 것이 휴가의 개념이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휴가란 것은 바로 여름휴가를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약 23년 전) 우리 가족은 남편 직장에서 제공하는 관광버스와 숙소를 이용해 전라도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을 갔던 적이 있었다. 무주구천동은 계곡물이 맑고 군데군데 빼어난 절경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 과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경이로웠다. 그러나 그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진 건 숙소에 여장을 풀고 가족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계곡을 찾았을 때부터였다.
계곡 입구에 들어서자 계곡은 온통 고기 굽는 냄새와 여기저기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로 코를 찌르고, 맑고 곱다던 계곡은 누런 흙탕물이었다. 거금(?)을 주고 준비해간 어린이용 튜브는 그날 물속에 한 번도 띄워 보지 못했다.
물장구치며 신나게 놀 수 있다는 즐거움에 들떠있던 아이들이, 계곡에 발도 담그지 않고 돌아서자 떼를 쓰며 울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때 일이 생각날 때면 내 기분 같은 건 잠시 접어두고, 그냥 남들처럼 흙탕물 속에서라도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놀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당시의 기억을 되돌려 봐도 온 계곡에 널린 쓰레기와, 음식물 썩는 냄새와 흙탕물로 변해버린 계곡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상황이 너무 심각했었다. 이 부분은 내가 좀 유별나서 나만 느끼는 부분은 분명 아닐 거란 생각도 든다.
얼마나 실망이 컸으면 무주구천동에서 보낸 2박 3일 동안 아이들을 달래느라 빙과류를 잔뜩 사줬던 기억과 원두막을 찾아 수박을 먹었던 기억과,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던 기억밖에 없다. 그렇게 무주구천동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즐겁지 못한 기억을 준 지역으로 남았다.
그런데 한 10년 전쯤 문인회에서 단체로 무주를 갈 일이 있었다. 그때의 무주는 처음과는 달리 계곡물도 깨끗하고, 숙박시설도 잘 정비됐고, 특히 무주의 밤하늘은 너무나 맑고 깨끗해서 하늘에서 한꺼번에 별이 쏟아질 듯한 환상적인 느낌을 받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마 1997년 무주에서 열린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인 국제적인 행사를 치른 뒤라 모든 부분이 잘 정비되고 보존된 탓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고, 그만큼 국민의 의식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에 가보면 시민 의식이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끔씩 받는다. 특히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몰리는 피서 철이면 주변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들뜬 나머지나 하나쯤이야하는 식의 도덕 불감증에 젖다보면 그 부작용은 더욱 심각해진다.
자연이 어디 우리 인간만의 전유물이던가? 자연은 자연에 기대어 사는 모든 생명체의 공유물이다. 이렇게 자연은 인간과 동물과 식물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장이기에 자연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될 일이다. 공존하며 지켜나가야 할 일이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이런 고마운 자연은 우리가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자연은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고, 후손에게 빌려서 쓰는 것이기에 소중하게 쓰고 되돌려 줘야 하듯이, 우리의 후손 역시 자연을 잘 가꾸고 보존해서 그들의 후손에게 되돌려 줘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대손손 자연이 주는 풍성함을 모든 인류가 함께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찌는 듯한 여름이다. 피서를 떠난 사람도 많고, 피서 계획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피서철이든 연휴이든 떠나기 전에 한번쯤은 되새겨 보자.
자연은 당대 우리의 것이 아닌, 우리의 후손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이기에, 소중하게 쓰고 잘 가꿔서 후손에게 되돌려 줘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