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사이 '관계와 소통'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깊이 해보게 된 원인은 한 보름 전 쯤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와 친해지면서부터이다.
고양이라는 동물은 상당히 예민한 동물이다. 특히 애완용이 아닌 길고양이일 경우는 경계심이 무척 강하고 사람과 좀처럼 가까워지기가 힘들기에 지금까지 3미터 이내에서 고양이와 마주한 경험조차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산책길에서 아파트 길가 풀숲에 웅크린 고양이를 보고 다정하게나비야!하고 불렀더니 신기하게도 그 녀석이 마치 강아지처럼 나를 졸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사실 이 고양이를 처음본건 대략 6개월 전쯤이지 않나싶다. 산책길에서 가끔씩 마주칠 때면 놀라서 휘익 도망가 버리고, 어떤 날은나비야!하는 소리에 도망가는 대신 눈만 마주친 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배가 무척 고팠거나 아니면 무척 외로웠든지, 아무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를 졸졸 따라왔다.
하도 신기해서 녀석의 동태를 좀 살펴볼 요량으로 벤치로 자리를 옮겨 앉아 있는데, 주변을 경계하면서 살금살금 벤치로 다가온 녀석은 내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든지 사뿐히 뛰어올라 내 곁에 얌전히 앉았다. 행여나 녀석이 놀랄까봐 오히려 걱정된 나는 다정하게 몇 마디 건넸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내 무릎 한 쪽에 사뿐히 앉아 친근감을 과시했다. 이를테면 그날부터 나와 그 고양이와의 친구관계가 형성 된 셈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길든 짧든, 각별하든, 덜 각별하든, 어떤 대상과 늘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관계가 좀 더 지속적이고 각별한 사이로 형성되는 일에는 무엇보다 소통과 대화가 중요하다. 그날부터 나의 일과에 두 번 정도는 먹다 남은 생선과 댄디(愛犬)의 사료, 물 등을 챙겨들고 녀석을 찾는 일이 추가되었다.
그렇게 녀석과 친해진 탓인지 이제는나비야!하고 부르지 않아도 금방 어디선가 나타나 내 앞에서 벌러덩 드러누워 배를 드러내 보이며 애교를 떨기도하고 눈을 깊게 깜박이며 친근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보름 동안에 나와 녀석 사이에 꽤 신뢰가 쌓인 셈이다.
여기서 한자의 사람 인(人)자를 한번 살펴보자. 사람 인(人)자는 둘이 기대어 서있는 형상이다. 쉽게 말해서 사람은 혼자서는 설 수가 없고 둘이 기대어야 지탱할 수 있다는, 즉 사회적 동물로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 글자이다.
인간은 일차적으로는 부모와 자식관계, 그리고 친지, 고향사람, 동문, 직장 동료, 넓게는 같은 나라 등, 무수히 많은 관계형성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인간 관계형성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과 그 소통으로 인해 얻게 되는 신뢰일 것이다.
자신과 주변의 삶을 둘러보면 대화의 결여가 가져오는 소통부족으로 낭패를 당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또 주변에서 많이 볼 수도 있다. 좁게는 가족 간의 대화부족이 빚어 낸 크고 작은 불행을 볼 수도 있고, 노사관계의 불협화음으로 발생한 노조 투쟁과 파업을 볼 수도 있으며, 넓게는 정부와 국민간의 소통 부족으로 인한 급격한 민심 이반을 볼 수도 있다.
M&A(기업 간의 인수 합병)에서도 노사와의 소통에서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일이 기본이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권력과 힘으로 밀어붙이다보면 성사단계에서 노조의 강력한 저항에 의해 딜(deal:거래)이 깨지는 사례를 간혹 볼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서로의 관계 형성에서 소통과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천택의 시조에 "잘 가노라 닫지 말며 못가노라 쉬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이 시조구절이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나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고사 성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찌 늘 좋은 일만 있고, 또 어찌 늘 나쁜 일만 있겠는가? 또 어찌 모든 일이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리기만 하고, 또 늘 엉키기만 하겠는가?
길고양이와의 우연한 관계에서도 신뢰가 쌓이듯, 우리의 삶에서 서로에 대한 소통과 신뢰만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풀기 어려운 일도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특히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관계형성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소통과 신뢰야말로 모든 일의 근본이며 삶의 윤활유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