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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그해 겨울의 재앙

문남선(수필가)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06월 02일












▲ 문남선
2010년 겨울은 여느 해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한파가 심했던 해였다. 한강물이 얼어붙고, 결빙된 강물 탓에 유람선이 부분 운항을 하고, 전국이 눈 폭탄세례로 엄청난 경제적 피해와 교통대란으로 몸살을 앓았던 해였다. 그런데 이 혹독한 추위보다 더 우리의 가슴을 얼어붙게 한 사건이 바로 구제역(口蹄疫) 사건이다.


구제역(口蹄疫)은 발굽이 2개인 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등의 동물에게 생기는 질병으로, 구제역이란 한자를 보면 짐작이 가듯이 입과 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기는 전염성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가축의 병이다.


작년 겨울에 발생하여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구제역 사건이, 어느 정도 잠잠해질 무렵까지 강제 살 처분 된 가축의 수는 무려 340여만 마리라고 한다. 뉴스에 가축들의 생매장 소식이 나올 때면, 안타까운 마음에 일부러 시청을 거부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의 이메일에 올라 온, 모 단체에서 보낸 <생매장 돼지들의 절규>라는 동영상 파일 하나가 계속 마음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파일을 열면 왠지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열어보지 않다가, 한번은 봐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파일을 열어보았다. 경기도 이천에서 1,050여 마리의 돼지가 강제 살 처분 당했던 광경을 찍은 동영상이었다. 허나 참혹한 그 광경을 보며 가축들에 대한 불쌍함과 죄스러움으로 마음이 아팠다.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땅 한번 밟지 못했을 그들이, 잠시 후 닥칠 운명을 예측하지 못하고, 난생 처음 맡아봤을 흙냄새에 기뻐하며, 경쾌하고 기분 좋게 꿀꿀거리며 죽음의 현장으로 다가갔을 것 아닌가.


가로 30미터 깊이 10미터 정도의 구덩이에 육중한 포클레인에 떠밀려, 마치 짐짝처럼 깊숙한 구덩이로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던 모습. 몇 백 마리일 땐 그래도 어느 정도 여유 있는 공간에서 두려운 소리로 꿀꿀거리기만 했었다. 하지만 한 마리, 두 마리…. 숫자를 더해가면서 그들은 마치 봉지 속의 스낵과자처럼 오글거리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몸통위로 세찬 눈보라처럼 인정사정없이 쏟아지던 흙더미와, 다른 돼지들의 몸무게에 눌려 귀까지 찢어진 채 숨도 못 쉬며, 선채로 그들은 압사당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내장인들 파열되지 않았을까.


어느 농부는 살 처분이 있던 다음날까지 땅속에서 돼지들의 울부짖음이 들렸다했다. 최소한의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예의도 없이, 그렇게 처리한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만약 그들이 우리처럼 말을 할 줄 안다면, 아니 우리가 만약 그들의 언어를 해독할 줄 안다면, 이토록 무자비한 인간들의 만행에 과연 그들은 뭐라고 절규하면서 생을 마감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당국에서는 인력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그런 방법으로 살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명료하게 해치운 그 일이, 살 처분 후 침출수 문제로 수질이 오염되어, 그 수습책으로 배보다 배꼽이 큰 식의 이중 예산이 드는 일로 연결되지 않았는가.


자식마냥 애지중지 기르던 소를, 구제역 발병지에서 반경 500미터 안에 위치한다는 이유만으로 살 처분해야할 처지에 놓였던 어느 노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차라리 내가 뒷산에 가서 목을 매고 싶은 마음뿐이죠. 억울하지요. 병을 고치다가 안 되면 죽이더라도, 왜 병이 들지 않은 소를 죽이는지 모르겠어요. 멀쩡하게 살아있는 소를 죽이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요. 꼭 죽여야만 하나요?󰡓하며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소를 바라보던 그 노인의 표정이 선하다.


그 노인의 곁에는 마치 자식처럼 노인을 따르던 2개월 된 송아지가 노인의 체취를 맡고 있었다. 최후의 만찬이 될 마지막 여물을 소들에게 주면서 단장의 아픈 울음을 쏟아냈을 그 노부부의 마음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이 노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제역에 걸린 가축이나, 구제역 발생지 반경 500미터 내외라는 이유로 가축을 살 처분 한 후, 한꺼번에 도륙 당한 듯 텅 비어있는 축사를 바라보고 망연자실할 농부의 마음을 우리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이번 구제역 사건을 바라보면서 나름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현행법이 잘못되었다면, 여당 야당 싸움질하며 힘 뺄 시간에, 임시국회라도 즉각 소집하여 현실적인 특별법이라도 바로 만들어 구제역의 빠른 확산을 막고, 대통령령으로라도 즉시 현실에 맞는 특별조치라도 취했었어야 옳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또 있다. 인간의 생명이 중요하듯 동물들의 생명 또한 절대 존중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거두지는 못할망정 최소한의 마지막 생명에 대한 예우는 해주어야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번 재앙이 어찌 가축에게만 해당되겠는가. 도망가려는 소를 중장비로 누르면, 󰡐우두둑󰡑하며 소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던 중장비 기사의 말이나, 죽어가는 와중에 갓 낳은 새끼에게 젖을 물리던 어미 소의 모정을 묵살한 채, 송아지와 어미 소 모두를 살 처분했던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크게 다친 마음 역시 크나큰 재앙이다.


상상 이상의 엄청난 그 작업의 충격이 준 󰡐외상 후 스트레스󰡑를 받으며 밤잠을 못 이루고 병원신세를 졌을 많은 분들과, 과로와 스트레스, 자살 등 암암리에 알려진 구제역 여파로 인한 사망자의 죽음에 대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2010년 구제역 사건은 아마도 우리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로 남을 것 같다. 다시는 이 같은 재앙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행여 또 일어난다 치더라도, 빠른 행정적 대처와 최소한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 담긴 살 처분 조치와, 상처받은 농민에 대한 보상 문제까지 일관된 행정적 조치가 취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구제역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많은 분과, 수많은 동물의 영혼에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얹어 몇 줄 글로써나마 위로를 드리고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06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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