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정치권과 이명박 정부의 화두는 공정한 사회다. 지난 8월 불볕더위 속에서 진행된 국무총리 내정자와 장관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공직자의 자질을 사전 검증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국민의 관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경남도민의 경우 전임 지사를 역임한 김태호 후보가 총리 내정자로 지정되어 청문회 석상에 섰기에 그 기대감은 어느 지역 국민들 보다 강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청문회 직후 정치권과 국민의 반대여론에 부딪혀 자진사퇴하여 국무총리에 임명되지 못했다. 도민의 한 사람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의 정점에 공직자의 청렴과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재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거슬러 조선시대 대신들과 대간의 추천에 의해 청렴한 공직자를 인정했던 청백리 제도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물론 이 제도는 고려시대에도 행해졌던 제도로서 그 당시엔 염리(廉吏)로 불려졌다. 당시 청백리 정신의 백미를 꼽는다면 탐욕의 억제, 매명행위의 금지, 성품의 온화성 등을 내포한 선비사상과 이상적인 관료상이 주류였다. 특히 청백리들은 스스로의 공직윤리를 수기치인(修己治人)에 두고 청렴. 근검. 도덕, 경효, 인의 등을 생활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의 면면을 보면 고려시대엔 유석, 왕해, 김육석, 최석, 정운, 윤해, 최영 등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전고대방(典故大方)에 219명, 청선고(凊選考)에 186명이 기록되어 전해질 정도로 공직자의 청백리 정신은 그 시대의 표상이었다. 과히 작금의 공직자들이 오매불망 잊지 않아야 할 처세라 할 만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청백리의 표상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지면상에 한 사람만 주지하면 태국의 방콕 시장이었던 잠롱 스리무앙을 쉬이 떠올릴 수 있다. 그는 공직자의 행동양식에 대해 “일은 많이 하되 쓰고 먹는 것은 적어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잠롱 자신은 언제나 수도자처럼 청렴하게 생활했다. 과히 세계의 청백리로 불릴 만한 하다.
이러한 공직자의 청렴이 바로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첩경임을 아마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면서 자신의 양심이 이미 검은 것이라 판단되면 스스로 건네지도 말고 받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주는 자가 아무런 대가없이 마음에서 우러난 인정을 표시한 것이라면 그건 사회의 미덕이라 할 수 있겠지만 뭔가 그 어떤 바람을 가지고 건넨 것을 취한 것이라면 그건 청렴에 반한 부패의 시작이요 우리 사회의 기대감인 공정성은 이미 저 먼 바다를 건너가 버렸다고 단언해도 필자만의 억측은 아닐 것이라고 자답해 본다. 아무튼 누구나 잘 인지하고 있으되 청렴을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엄격한 자기관리를 통한 양심의 의식 세계에 몰입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나 검은 유혹에 쉬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나 자신을 포함한 공직자는 물론이고 우리 국민 모두 도덕적인 양심의 거울을 하나씩 지니고 살길 감히 주문해 본다. 동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계모 여왕 대신 스스로 매일 한번씩이라도 자신의 거울을 들여다 보며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니?’ 라고 묻는다면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열릴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