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 것을 안다고 하는 뜻의 온고지신은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중국 호남성의 성도 장사에 있는 악록서원의 한 쪽에 인류 역사상 4대 성인 중의 한분이신 공자님의 상도 자리 잡고 있다. 현대 중국은 그 이념적인 맥락으로 보면 공자의 사상과 크게 괴리를 보이지만 경제나 교육적인 맥락에서 공자의 사상은 크게 부활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본다. 최근에 수학이나 과학의 국제적인 성취도 평가 결과에서 동아시아권 국가들이 최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이유를 공자의 사상을 토대로 한 유교문화권의 전통에서 찾으려는 연구도 많이 시도되어 왔다. 많이 제기되는 연구 문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성실한 모범생들이 우수한 성과를 거두는가?” “연습으로 완성할 수 있는가? (Does practice make perfect?)” 독창적인 사고력을 강조하는 최근의 교육계의 흐름으로 본다면 성실성을 토대로 한 연습과 수련 방식의 문제해결 만으로는 창의적인 사고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성실성이 문제해결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기에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옛 사람들의 아이디어에 독창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조선시대 수학책인 이수신편에는 ‘계토산‘이라 불리우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수록되어 있다. “철수와 영희가 동물농장에 놀러갔다. 닭과 토끼는 모두 100마리인데, 다리를 세어보니 272개였다. 닭과 토끼는 각각 몇 마리씩인가?” 만약 요즈음의 중학생이라면 닭의 마리수를 x, 토끼의 마리수를 y라 두고 다음과 같은 연립방정식을 세워 풀 것이다. x+y=100, 2x+4y=272, x=64, y=36, 하지만 조선시대의 수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풀고 있다. 만약 닭과 토끼가 그들의 다리의 절반을 들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율분신(二率分身)”> 그러면 다리의 수는 136인데 마리 수는 100이므로 그 차이는 36이고 이는 누구의 다리일까? 필시 토끼 다리다. 왜냐하면, 원래 닭과 토끼는 각각 2개, 4개의 다리가 있지만 그 절반을 들고 있다면 각각 1개, 2개의 다리가 있는 셈이니, 닭은 다리 개수와 마리 수가 같지만, 토끼는 다리 수가 마리 수보다 1개씩 많기 때문에 동물의 마리수 100과 이율분신한 상황에서의 다리 개수 136의 차이 36은 는 곧 토끼의 마리수가 되고 나머지 64는 닭의 마리수가 된다. 기발한 착상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연립방정식으로 놓고 풀면 그 기발한 착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즉, “이율분신”이란 x+y=100, 2x+4y=272에서 두 번째 식의 양변을 2로 나누면, x+2y=136이 된다는 것과 동일한 조작이다. 이는 10년쯤 전 필자가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출제위원으로 참여하여 수학 및 과학 분야 지문으로 사용한 사례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른 사람들의 훌륭한 아이디어나 지혜는 배워서 익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데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