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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학회 사건

김승곤 한글학회 회장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8년 10월 26일











▲ 김승곤
1. 조선어 학회 사건의 발단과 학자들의 체포


일본이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나라 안팎에 전시체제로 국민을 조이기 시작하였는데,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1942년 여름 방학을 기하여, 명치대학에 유학중이던 박병엽이 그의 친구가 놀러 온다고 하여 홍원의 전진역으로 친구 마중을 나갔는데 그는 옷차림이 전시 체제의 것이 아니고 모시중의 적삼에 흰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당시는 기차역이나 기차 안에는 사복 차림의 형사가 늘 있어서 요시찰인을 검문하였는데 거기에 걸리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병엽은 검문에 조선말로 응답하였는가 하면 그 태도가 너무나 건방져서 시비가 확대 되면서 그의 집까지 가서 가택수색을 당하였다. 거기에서 박병엽의 질녀인 함흥 영생여고 4학년에 재학 중인 박영희가 여름 방학으로 집에 와 있었는데 그미의 책상을 들추다 보니까, 여고 2학년 때부터 쓴 일기장이 발견되었다. 호기심에 가득 찼던 형사(조선인)가 그 일기책을 모두 가지고 가 버렸다. 박병엽은 그의 아버지가 그곳 어업조합장인 박동규(朴東奎)였으므로 별일 없이 풀려 나왔으나, 일기장은 빨리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시일이 좀 지나서 독촉을 하였더니, 형사가 급히 읽어 가던 중 중2 때 쓴 일기장에서 “오늘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한테 단단한 꾸지람을 들었다.”라는 구절을 발견하고 “국어”를 일본어로 착각한 형사는 곧 박영희와 그의 친구 최복녀, 이성희, 이순자, 채순남, 정인자 등 6명을 잡아 가서 일주일이나 심한 고문을 하면서 그 선생이 누구냐고 다그쳐 물었다. 하는 수 없이, 정태진 선생과 김학준 선생이라고 자백하였다. 정태진 선생은 1925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위한 경비를 마련하려고 함흥 영생여고에서 2년 동안 교편을 잡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5년 동안 미국 우스터 대학 철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의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1931년에 귀국하여 영생여고에서 다시 교편을 잡다가 1941년 조선어학회(한글 학회의 전신)에서 정인승 박사와 사전 편찬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1942년 8월말 경 홍원 경찰서에서 소환장이 왔는데 그 내용을 보니 “치안 유지법 피의 사건의 증인으로 9월 5일에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홍원 경찰서에 당도하니, 간교한 일본 경찰이 “증인”으로 너를 불렀지만 너 자신이 “피의자”라고 하며 모진 고문을 하였다. 심한 고문 끝에 ①조직이나 단체 같은 것은 없었으나 개인으로서 교단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②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자들의 집단체라는 것을 지적 내지 인정하였다.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의 전말을 정인승 박사의 기록에 의하여 그 전개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942년 9월 30일 이극로, 정인승, 권승욱 세 분이 밤새도록 사전 편찬 작업을 하다가 10월 1일 새벽에 댁으로 가니, 홍원 경찰서 형사 한 사람과 종로 경찰서 형사 한 사람 도합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길로 바로 종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10월 2일 저녁 식사 후에 대기실로 가니 “이중화, 장지영, 이극로, 최현배, 한징, 이윤재, 이희승, 김윤경, 권승욱, 이석린” 등이 체포되어 있었다. 모두가 전차로 서울역까지 가서 기차를 하고 10월 3일 새벽에 함흥역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이극로, 정인승, 권승욱 세분은 내리고 8명은 함흥경찰서로 갔다. 10월 18일에는 김법린 체포, 10월 20일에는 정열모 체포, 10월 29일에는 이병기, 이만규, 이강래, 김선기 체포 되었고 1943년 3월 5일에는 김도연 체포, 3월 6일에는 서민호가 체포되었다. 3월말에는 4월 1일까지 신윤국, 김종철이 체포되었고 1943년 4월말까지 총 33명이 체포되었다.



2. 고문의 가지가지


1942년 10월 3일에 권승욱이 불려나가 3일 동안 고문을 당하고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10월 4일에는 정인승이 불려 나가 7일 동안 고문을 받았는데 기어 다녔다 한다. 정인승이 풀려난 다음 이극로가 불려 나가 10일 동안 고문을 받았다. 여기서 3주일이 되는 날 모두 함흥 경찰서로 이송되어 그 연무장에서 고문이 계속되었는데, 네모난 고무 몽둥이로 때리기, 고춧가루를 탄 물을 코에 붓기, 비행기태우기, 몽둥이로 서로 때리기 등등이었는데 그들은 몽둥이로 때리기를 육전, 물 먹이는 고문을 해전, 비행기태우기를 공중전이라 부르며 악독한 고문을 하였다 한다.


고문한 형사를 보면, 홍원 경찰서는 中島種藏(고등계 주임), 伊藤輝元(한국인 윤**형사), 安田橞(안정묵 고등계 형사 부장), 恒川議三(일인형사), 新原東哲(박동철 고등계 형사), 假屋*(일인 형사) 등이었고 함흥경찰서는 大原炳薰(주병훈 수사계 주임) 紫田建治(김건치 형사 부장), 松山武(이** 형사) 등이었다. 특히 조선인이 악질이었는데 대표적인 사람은 안정묵, 김건치, 주병훈 이었는데, 이들은 사람 백정이라 불리었다. 김건치는 자기 은사인 이윤재를 보고 이윤재 이 개새끼야 할 정도였다니 더 할 말이 없다.



3. 사건의 결과


1943년 3월말에서 4월 1일까지 총 48명이 소환되었는데 특히 백낙준, 정세권, 곽상훈, 김두백, 방종현, 민영욱, 임혁균 등은 홍원까지 끌려와 심문을 받았다. 1943년 3월말에서 1943년 4월 중순에 조서를 끝내었는데 이극로, 이윤재,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김윤경, 김약수, 김도연, 이우식, 이중화, 김법린, 이인, 한징, 정열모, 장지영, 장현식, 이만규, 이강래, 김선기, 정인섭, 이병기, 이은상, 서민호 등 28명이 기소되었다. 1943년 9월 7일 靑柳五郞 검사가 11일째 형식적으로 심문을 끝냈다. 이들 중 16명이 기소되고 12명은 기소유예가 되었다. 10월로 들면서 급식이 1/2, 1/3로 줄었고 추위에 1943년 12월 8일에 이윤재, 1944년 2월 22일에 한징 두 분이 옥사하였다.


1944년 中野虎雄 판사가 9월 30일에 예심을 끝내었는데,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 김법린, 이중화, 이우식, 김양수, 김도연, 이인, 장현식”은 정식재판에 회부되어 1944년 12월 21일부터 1945년 1월 16일까지 9회에 걸친 공판 끝에 西田勝吾 주심 판사는 이극로 징역 6년, 최현배 4년, 이희승 2년 반, 정인승 2년, 정태진 2년을 선고하였다. 정태진을 제외한 네분은 고법에 1945년 1월 18일 고법에 공소를 제기하였다. 그러자 8월 15일 광복이 되어 8월 17일에 함흥감옥에서 석방되어 함흥 유지집으로 초대되어 대접을 받고 18일 밤차로 출발하여 19일 밤 10시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이분들은 쉴 사이도 없이 곧 한글 학회로 와서 사전 편찬 작업에 착수하였다. 광복후 가장 악질이었던 안정묵은 코를 꿰어 흥원 시내로 샌드위치맨으로 하여 끌고 다니다가 그곳 청년들이 때려 죽였다는 말을 들었다.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8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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