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대형할인마트에 쌀을 사러 갔는데 의령의 유명산 이름을 딴 20Kg들이 쌀포대가 쌓여있는 것을 봤다. 반가움이 앞선 나머지 한 포대를 얼른 사 왔다. 밥맛이 좋은 것 같았는데, 집안 식구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 한 달 후 또 그 매장으로 쌀을 사러갔는데, 그 많던 의령산 쌀 포대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매장 직원들에게 물었더니 그 쌀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는 것이 그 까닭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쌀의 품질이 좋았더라면 그런 평가를 받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소비자들로서는 같은 값이면 더 나은 품질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도 시장에는 국내산 쌀값이 천차만별이고, 품질 좋은 쌀은 높은 가격에도 잘 팔리고 있다. 아무튼 경쟁력이 없었으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다.
쌀 시장 개방 당시 온 나라가 지금의 촛불시위에 버금가는 심각한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점거되고 곳곳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시위에 애꿎은 수많은 젊은 전경들이 희생되고 물류가 마비되는 홍역을 치렀지만, 세계적인 개방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미국을 비롯한 각국과의 FTA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고, 외국산 농산물의 국내 시장 유입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최근 세계적인 식량 가격 폭등으로 일부 빈국들이 더 이상 자국민들을 부양하지 못할 정도의 위기에 놓여 있다. 그 주된 요인이 미국과 유럽의 바이오연료 정책에 따른 결과라고 한다. 지구온난화 방지 차원에서 바이오연료정책은 앞으로도 계속될 상황이고 보면 이러한 식량가격 폭등추세도 확산될 전망이다.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이 5% 미만으로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인데다 1980년과 1993년경에도 흉작으로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나라에 미칠 여파도 간단치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농업생산기반을 확보하고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안정적 식량수급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농산물의 안정된 생산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유통의 현대화도 불가결한 과제이다. 아무리 품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도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소비자들은 외국산 보다는 국내산을 선호하지만, 시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농산물을 내놔도 소비자들이 몰리게 되면 외국산 등 저급품을 섞어 파는 등의 눈속임 사례가 많아 얼마 가지 않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일쑤다. 생산자들로서는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높이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유통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하다.
더욱이 개방화로 농산물의 가격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금의 단계에서는 농산물의 생산만으로는 소득증대를 꾀할 수 없다. 농업이 나가야 할 방향은 농산물의 저장과 가공 및 유통을 연계하여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가족농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의 농업현실에서는 품목이나 지역을 단위로 한 규모의 경제와 범위경제를 모색하여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의령군이 그 동안 ‘토요애’ 브랜드로 의령산 농산물의 품질경쟁력 제고에 노력해왔던 점은 평가할만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자굴산 청정 밭미나리의 명품화 사업을 추진, 자굴산청정밭미나리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도모하고 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지역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농가소득을 증대시키는 것은 물론 의령 농업의 미래를 다지는 의미가 크다. 이러한 노력이 의령산 농산물의 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다만 한가지 걱정스러운 측면이 유통부문이다. 산지 농산물 유통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지난 3월 출범했던 의령군-농협공동사업법인이 대표이사의 전격적인 사퇴로 좌초 위기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 배경과 향후 진로에 대한 분석이 구구하지만, 의령 농산물의 원활한 유통을 기대했던 군민들과 향인들에게는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와중에 의령군은 토요애 브랜드 농산물 전문 유통회사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밝혀 새삼 주목을 모으고 있다.
공동사업법인의 해체 위기는 농산물의 유통문제는 법인만 설립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유통회사의 설립에 있어서는 보다 더 기술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경영진은 농산물의 유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확고한 의지와 전문지식, 경영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산지의 경쟁력 있는 농산물을 대도시 소비자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농산물을 소비자들의 식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인적․물적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 공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하산식 인사나 예산만 낭비하는 탁상경영을 지양하고, 의령 농업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령산 농산물에 대한 마음은 군민들이나 향인들 모두 한결같다. 외국산 쇠고기가 국내시장을 잠식하더라도 어디서든 의령산 쇠고기의 성가가 높아졌으면 싶다. 농민들이 이 살인적인 무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애써 생산한 농산물이 그 성가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이제는 대형매장에서도 의령산 농산물을 언제나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