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4-05-20 20:24:09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향우기고

면민 피땀어린 봉수 초등학교


관리자 기자 / 입력 : 2004년 11월 10일
언제나 가고싶은 고향과 봉수초등학교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고려시대부터 한지·창호지의 원산지로서 상부 서쪽은 봉삼면이고(지금의 죽전리, 신현, 장유, 청계, 서암, 오산, 방계)하부 동쪽은 가수면인(삼동, 서득, 철낙 등) 2개 면으로 나뉘어져 있다가 봉삼면의 봉자와 가수면의 수자를 합쳐 1914년(대정)한일합방으로 통합되었다.
 또한 소백산맥의 종지막인 국사봉(해발 688M) 산하에 대동사 사찰의 경남 고성군 옥천사(사찰)에서 이주해온 『설모』라는(함자불명)스님이 대동사로 와서 사찰주위 계곡에 자생한 닥나무 겹피를 한지로 개발 연구하여 주민들에게 보급하고(약 600년전) 현재 서암리의 한지 전시관이 건립되었다.
 한일 합방으로 행정 개편이 된 이후 1933년 3월 28일 봉수 공립보통학교(4년제)설립 인가를 받고 서현리(지금의 진버들 및 장유마을 서쪽)에 개교하여 1938년 3월 28일 6년제로 추가 승인을 받았다.
 일제치하에서 모교는 설립되었고 그 후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50년대 급격히 학생수가 증가하여 봉수면 삼동리에서 통학이 곤란한 학생을 위해 1951년 죽전에 분교가 설립되었다가 죽전국민학교로 독립되었다. (봉수교 18회와 죽전교 1회가 동기이다) 그러다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날로 학생수가 증가하고 봉수면의 특산물인 한지생산산업의 번창으로 지역면이 활기를 띄면서 서현리의 비좁은 교실 부족한 교사, 그리고 좁은 학교 부지로는 학생 교육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웠다. 1.2.3 학년은 학교 동편인 큰 아카시아 나무가 모교의 버팀목이 되었다.
 봄, 여름이면 아카시아 꽃 향기 그늘밑에서 방배돌 및 가마니를 깔고 노천에서 공부하였고 4학년은 서쪽편 초가집 교실에서 공부하였으며 5, 6학년이 되어서야 낡은 교실에서 그나마 행복하게 장차 이나라의 일꾼이 될 기초교육을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교육청과 학구민이 해결하기위해 학교 이전 논의가 시작되었다. 학교부지 선정 과정에서도 방계. 청계 부락의 故 노만수, 백점제씨 등 주민 등은 현 청계부락 창고터에(옛 청계 못)학교를 세우자고 주장하였고 서남리의 故 정석호, 강유생, 김무창 씨 등 주민은 현 학교 위치를 주장하였다. 양쪽 주민의 뜻이 일치되지 않아 무기명 투표로써 합의하고 투표과정에서 서로 얼굴을 가려 삿갓을 쓰고 치열한 학교부지 유치경쟁을 비밀투표를 통해 마무리를 지었다. 가히 그 논쟁을 짐작할 만 하다. 현 위치인 부지의 내력은 서암부락에 3,000석 엄부자(모교 제9회 엄동토씨의 조부) 故 엄주명씨께서 자제분 故 엄태익, 자제 친구(강유생, 김무창, 강명진, 정석호 등) 제씨들이 짚불(짚으로 만든 공)로 공을 차고 노는 것을 보고 가죽 볼 공을 차게 하였고 현 학교 건물이 서 있는 곳에 미래 꿈나무들을 위해 잔디구장을 만들어주었다. (故 엄태익 본인의 유언에 따라 모교 서북 쪽 국도변 위에서 그의 안택이 마련됐다. 따라서 그는 사후에도 모교를 바라보고 항상 모교발전을 위해 영혼을 불태웠던 모교사랑을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시며 고이 잠들어 계신다.)
 그 당시 희귀한 이 잔디구장은 경남 축구대회를 비롯하여 장사 씨름대회 군에서는 농악 경연대회 등 경남 체육·문화 행사가 열리던 장소였다. 잔디구장을 만드는 과정을 잠시 알아본다. 당시만 하더라도 장비가 없어 주민들과 엄부자댁 하인(직원)들이 동참하여 낮에는 농사일을 밤에는 햇불을 밝혀 손과 발로 돌맹이를 주워가며 잔디 구장을 완공 하였다.
 이 잔디구장을 엄부자께서 서암 청년회에 희사를 하여 서암청년회에서 관리를 하였는데 학교 부지로 선정됨으로서 청년회에서는 언제든지 학교 운동장을 사용하여도 된다는 조건으로 승낙하였다.
 이렇게 하여 1969년 9월 1일 현 위치인 서암리 336번지 인 잔디구장에 학교 건물이 서고 현 운동장이 논밭이었는데 이 논밭을 주민 1가구당 1㎡씩 할당을 주어 피나는 노력으로 정지 작업을 하였다.
 엄부자에게 희사한 잔디구장을 잃은 서암 청년회원들은 해마다 열리는 봉수면 축구대회때마다 각고의 노력으로 모래와 소금을 넣고 배수 작업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후에도 1975년에 체육진흥회 임원들이 1인 1감나무를 심어 감나무 단지를 조성해 학생들이 농가 실과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하였고 1976년에는 학부모들께서 리어카로 조경석과 흙을 나르면서 현 교화(철쭉)의 동산인 관찰원과 연못과 분수대를 설치하였다.
 여름이면 아름다운 꽃을 연못에 수놓은 수련꽃을 합천 황강에서 학부모들이 손수 채취하여 심는가 하면 오월에는 노란꽃을 피우는 창포를 심어 봉수교의 자랑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1979년 도서관을 설립하여 언제든지 꿈나무 학생들이 독서를 하게 하였고 과학실과 자료실을 설치하여 모교 학생들의 기초 교육장을 튼튼하게 하였다.
 이러한 학부모들의 노력과 그 당시 보직한 선생님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1980년 실과 우수학교, 1981년 학교경영최우수학교, 문교부 선정 새마을 우수학교 라는 영광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1982년도 선정 도서관 우수학교로 이어지면서 그 영예를 이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세워진 봉수교의 전당이 농촌교육에 이바지하였으나 본교 학구주민의 주산업인 한지 생산의 퇴락과 80년대의 도시인구 집중화와 가족계획 등으로 급격히 아동이 줄어 1989년 벽지학교가 되었으며 1998년 농촌학교 1면 1학교 통폐합이 시작되면서 보존결정에 의해 6학급으로 편제되었으나 2001학년도 3월 2학년생이 없어 부득이하게 5학급으로 편성되어 전교생 14명이라는 소수인 학교로 전락되었다가 2002학년도 3월 다시 6학급으로 편성되었다. 이러한 현실에도 면민들은 화합이 되지않고 죽전에서는 부림초등교로 취학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면민 여러분, 이 글을 보시면 어떻게 봉수교가 설립되었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본 면의 본교를 지키시며 타면에 모범이 되는 살기좋은 봉수면의 주민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또한 죽전교 출신과 봉수교 출신이 한자리에 모여 미래 지향적인 총 동창회를 개최하기를 희망합니다.
관리자 기자 / 입력 : 2004년 11월 10일
- Copyrights ⓒ의령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우상헌
모교 제9회 엄동토씨의 조부라는 글이 있는데 엄동토가 아닌 엄동호입니다.
확인해 보시고 수정 부탁드립니다.
08/20 01:17   삭제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의령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수여식..
의령 수월사 의령군장학회 장학금 300만원 기탁..
의령군가족센터 ‘의령박물관 및 충익사 탐방’ 진행..
의령교육지원청 진로 직업인 특강 올해로 3회째 열어..
의령홍의장군축제 성공은 `RED`에 있었네!..
의병마라톤 행사에서 함께 뛰며, 청렴봉사 활동 시간 가져..
의령소방서, 주거용 비닐하우스ㆍ컨테이너 화재 예방 당부..
오태완 군수 공약 평가...경남 군부 유일 2년 연속 `A등급`..
입식가구·생명박스·방역소독...의령군 경로당 `3종 세트` 호응..
의령군, 경남 드론측량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 수상..
포토뉴스
지역
제26회 의령군수기 생활체육 게이트볼 대회 개최..
기고
김복근(국립국어사전박물관건추위 공동대표·문학박사)..
지역사회
최병진.전형수 회장 이.취임 최병진 회장, 재경 의령군 향우회장 감사패 수상 하형순 산악회 전 회장 공로패..
상호: 의령신문 / 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51 / 발행인 : 박해헌 / 편집인 : 박은지
mail: urnews21@hanmail.net / Tel: 055-573-7800 / Fax : 055-573-7801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아02493 / 등록일 : 2021년 4월 1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종철
Copyright ⓒ 의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4,711
오늘 방문자 수 : 6,171
총 방문자 수 : 15,77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