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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와 국사봉 발전을 염원하며!

정상대 수필가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11월 19일











▲ 정상대
경상도라는 조선 8도의 하나는,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에서 나왔다. 그러면 경상북도 도시뿐이네, 당연한 얘기다. 그래서 나는 1894년 전봉준의 농민혁명인, 동학혁명 때 조선지도를 보니, 경상남도는 부산의 표시가 3분의 1 크기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초계(草溪), 50년 전에는 팔계(八溪) 즉 8개의 고을, 산에서 내려오는 시내(물)가 모여 벌판이 된 고장으로, 팔계 정(鄭)이다. 합천군 17개 면에서, 가장 큰 면이 초계이다. 우리 의령군은 산악지대로 둘러싸인 약간 서부경남에 가까운 곳이다. 경남에서 고성군과 비슷한 인구로 꼴찌다. 양군이 닮은 점은 장수자가 상위에 속하며, 마늘 재배를 많이 하는 것이 장수군이 된 원인일 수도 있다는 기사를 수년전 본 적이 있다.


우리 동네 얘기 하나 하자. 때는 1981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다. 어느 날 우리 옆집에 자동식 전화기가 들어왔다. 우리 집에서 2발 떨어진 합천 오산이다. 우리 집 오산은 수동식으로 신반우체국을 거쳐야 모든 전화가 가능했는데, 졸지에 신세가 뒤바뀐 것이다. 대통령 나왔다고, 이웃 의령은 푸대접이냐 얘기하니, 아니꼬우면, 합천 땅으로 이사와 말하며, 기를 죽이는 시절이었다. 그 이후 올림픽 개최 무렵, 합천 땅인 오산리는, 의령땅으로 모두 편입되었다.


내 고장 봉수(鳳樹)면은, 새(짐승)와 나무로 둘러싸였다는 의미의 고장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어느 날 벌목하는 회사가 국사봉 밑에다, 나무 운반 컨베이어를 설치하고, 아름드리 금강송들을, 기계톱으로 순식간에 짤라 동네 뒤, 야적장으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총알같이 내려와, 목재소로 계속 운반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사봉 정상에는 수 천 년 전 솟아오른, 여러 개의 화강암이 위용을 뽐내며, 나의 초교인, 봉수학교와 우리 봉수면을, 따뜻한 어머니의 품 같이 지켜주고 있다. 영원히 말이다. 여기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비밀이 국사봉에는 존재한다. 국사봉 돌산아래, 처음에는 12개가 있었다. 왜정 때 인부를 동원하여, 찾았으나 11개는 발견하고, 끝내 한 개는 아직도 못 찾은 상태인 것이다. 더구나 찾지 못한 굴에는, 보물이나 보석이 들어있는데, 일본인들의 약탈을 피하려고, 동네사람들이 숨겨놓았다는 전설이다.


얼마 전 봉수학교, “국사봉 산행기념” 때, 나의 친척이 사는 대양면 오산리(오숫골)에 들렸다. 그는 나에게, 아제! 지리산 밑, 함양에서 울산까지 2016년(?)인가, 고속도로가 뒷산을 지나, 국사봉 부근으로 지난다는데, 나는 그 길 따라 손자 회사 있는 울산까지, 갈 날이 올지, 살 지 모르겠네, 라고 말했다. 5남 중 혼자 살아있는 조카에게, 아직 농사도 짓는데, 무슨 얘기하느냐, 금방 4년 지나는데, 걱정마시라라고 답했다. 우리 동네 뒤편, 초계 재, 1차선 도로를, 고향이라고 김혁규 도지사 시절에, 도로 개설 및 포장해 놓아, 5일장인 초계장 가기 좋고, 얼마나 나무하러 가기도 수월한지, 이제 시골도 많이 좋아졌다며, 자랑했다. 곧 내 고향 산, 국사봉에도 쨍하고 해 뜰 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 60년 전, 대도시로 가서 살아야지, 좋은 교육시킬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유행했던,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 즉 이농현상이 이제 60년 즉 환갑(회갑) 주기인지, 귀농현상이 일어나고,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내 고향, 오산에도 도시형 단독 주택이 즐비하다. 계절 따라 재배 되는 농작물로, 신토불이 농작물로 시골사람의 얼굴도 좋아 보인다. 고사리 밭이 지천인 국사봉 중턱, 국사봉 동편으로, 염소를 키우던 염소목장 벌판에다, 아열대 지역으로 변해가는 남부지역에, 감자, 고구마, 포도, 모과나무 재배 등 특산화 농업으로 발전시키면, 지역 경제에도 도움 되고, 살만한 곳이라고, 고향이라고, 부모 땅이라고, 모여들 것이다. 인지상정 아닌가. 외국 가서 살아보면, 애국자 되고, 수구초심, 태어난 곳, 부모의 땅이 그리워, 눈물 글썽거림을 나는 많이 보았다. 아! 이것이 우리 한국사람의 정(情)이다 고 하기엔, 속상한 현실이 슬프기도 했다. 국사봉은 합천군과 의령군이 경계하고 있다. 우리 부모님은 초계와 적중면이 고향이다. 부자군인 합천군과 그렇지 않은 의령군, 군청 관계자님들이 협력하고, 군민 여러분, 각처의 향우회원님들이 십시일반 후원하시어, 나의 소원, 우리의 소원, “국사봉 개발”이 가능한 빨리 가시화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본다.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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