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곡’ 이전 ‘치실’로 불리고, 둘 다 ‘일곱 골짜기’의 뜻 -
2011년 현재의 경남 의령군 칠곡면은 신라 신문왕 5년(서기 685년)에는 장함현(獐含縣)의 읍땅이었을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된 고장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칠곡’(七谷)이라는 말의 근원에 대해서 관심이 적은 것 같아 안타깝게 여기면서, 나의 생각을 적어 보고자 한다.
■ ‘치실’(←칠실)의 ‘-실’은 ‘골짜기’의 순우리말
‘칠곡’(七谷)은 ‘일곱 골짜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칠곡’의 옛 이름 가운데 최근까지 널리 사용되어 왔던 이름으로 ‘치실’이 있는데, 이는 ‘칠실’에서 변한 말로서 그 뜻 역시 ‘일곱 골짜기’이다. ‘-실’은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이고, ‘곡’(谷)은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 한자말다. 그래서 ‘칠곡’이나 ‘치실(칠실)’은 ‘일곱 큰 골짜기’라는 뜻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징적인 관계가 되어 있는 말이다.
내가 진주에서 진주중학교, 진주사범학교(1961년 졸업)에 다닐 시절, 그곳 사람들은 ‘치실’이라는 말에 매우 익숙해 있음을 알았다. 현재도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지명에 ‘-실’을 포함하고 있는 지명이 수없이 많은데, 이들은 ‘골짜기’와 관련 있는 곳의 지명들이다.
■ ‘-실’이 붙은 지명은 한자말 ‘-곡’(谷)으로 바꿈이 일반적
옛 지명에서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로는 ‘-골’, ‘-굴’, ‘-실’, ‘-일’(‘-실’에서 ‘ㅅ’이 사라진 말) 등이 널리 쓰였다. 이런 말이 포함된 지명을 한자말 지명으로 바꿀 경우에는 ‘골짜기’의 뜻을 지닌 ‘곡’(谷)으로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실’→대곡(大谷: 경남 진양군), ‘숨은실’→이십곡(二十谷: 전남 화순군), '다라실'→월곡(月谷: 전남 화순군), ‘북실’→적곡(赤谷: 전북 순창군), ‘푸실’→초곡(草谷: 경남 합천군), ‘가일(←가실)’→가곡(佳谷: 경북 안동군), ‘새일(←새실)’→신곡(新谷: 경북 선산군), ‘두일(←두실)’→두곡(斗谷: 경기도 오산시) 등이 ‘치실(←칠실)’이 ‘칠곡’(七谷)으로 바뀐 것과 같은 경우이다.
내가 어릴 적 칠곡면 도산 마을의 우리 집 근처 넓은 길에는 여름밤이면 동네 어른들이 모여 더위를 식히며 온갖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는데, 그때 ‘칠곡’의 큰 일곱 골짜기를 화제로 내세우는 것을 듣기도 했다. ‘항수골/항수굴’, ‘압수골/압수굴’, ‘수부렁골/시부렁골/시브렁골’(‘수부’ 마을을 ‘수부렝이/시부렝이/시브렝이’라고 불렀음.) 등이 내세워지곤 했는데, ‘-골/-굴’은 앞에서 말했듯이 ‘골짜기’라는 뜻이다.
옛날 칠곡면에서 가례면이나, 화정면이나 대의면으로 이르는 길은 아주 좁게 나 있었을 것이다. 칠곡 바깥에서 보면 칠곡 전체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이고, 수많은 골짜기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전해 오듯이 자굴산을 비롯해 산마다 수많은 골짜기 이름을 붙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수많은 골짜기 가운데서 일곱 골짜기가 두드러져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칠곡 안팎의 사람들은 이 지역을 자연스럽게 ‘칠실(치실)’이라 불렀을 것이다.
■ 일곱 큰 골짜기를 지정해 명소로 가꿀 필요
일곱 큰 골짜기의 정확한 위치를 글로 적은 것이 발견되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는데, 칠곡면 지역 전체를 현장 답사하고 전해 오는 골짜기나 마을 이름을 연구하면, 그것을 짐작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칠곡을 상징하는 일곱 큰 골짜기를 지정하여, 그 이름을 되찾거나 이름 없는 골짜기는 새로 이름을 지어 후세에 물려주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곱 큰 골짜기를 ‘첫째 큰골’(제1곡)부터 ‘일곱째 큰골’(제7곡)까지 차례를 붙여 각 큰 골짜기를 특색 있게 가꾸어, 명소(이름난 곳)가 되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도록 하는 일도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