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설뫼(立山)마을은 깊은 정적에 묻혀 있었다. 옛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전에 문을 닫아 체험교실 같은 모임에 쓰도록 잘 단장돼 있었지만, 추울 때라 그런지 텅 빈 채 적막이 감돌았다. 관리인도 자리를 비웠지만, 전화연결은 쉽게 되었다. 읍내에 나가 있던 그는 자리 비운 걸 미안해하며, 열쇠 둔 곳을 친절히 일러주었다.
열쇠는 학교 앞 슈퍼에 맡겨져 있었다. 슈퍼도 비어 있었다. 주인은 없고 열쇠만 점포 벽에 걸려 있었다. 무인점포 같았다. 말끔한 내부에 작은 진열장 하나뿐인 마루가 너무 넓어 보였다. 창 너머 방안에는 바이올린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다. 겉면이 많이 닳은 낡은 악기였다. 빈 공간 하얀 벽면에 걸린 오래된 바이올린이 누군가의 고적(孤寂)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우리 일행 셋만 서성일 뿐, 길에는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산을 넘어 찾아올 때의 인적 없는 산길의 적막감이 그대로 이어지는 느낌이었고, 아이들의 함성이 사라진 빈 운동장을 바라볼 때는 문득 차오르는 공허감이 아득한 향수처럼 밀려들었다.
파릇한 보리 싹이 엄동의 시련을 참아내고 있는 들판에는 하얀 비닐하우스가 짧은 저녁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들녘 너머 호수처럼 넓은 개울은 허옇게 얼어 있었고, 바람에 쓸리는 마른 갈대와 여뀌풀들이 개울가를 서걱거릴 뿐, 겨울의 깊은 침묵이 무겁게 흐르고 있었다. 개울을 따라온 아주머니 한 분이 하우스로 들어가는 모습이 얼어붙은 적막을 흔드는 단 하나의 그림처럼 고요한 움직임이었다.
아주머니를 따라가 본 하우스에는 딸기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온실 한 켠에는 하얀 백합이 피어 있었다. 해맑은 꽃송이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온실에서 꽃을 기르는 것이야 계절에 관계없이 예사로운 일일 게다. 하지만 좀 의아스런 것은 백합 바로 옆에 드리워진 가시덩굴이었다. 장미도 아니고 찔레도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망개나무였다. 지난해 익은 마른 열매가 덩굴 줄기에 빨간 송이로 매달려 있었다.
망개는 낙엽교목이라 하지만, 예리한 가시가 돋는 길고 가는 줄기가 등나무처럼 왕성하게 벋어 주위를 덮는 덩굴 식물이기도 하다. 붉게 익는 열매는 아름답지만, 이런 흔한 야생의 가시덩굴을 온실에서 보기란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등(藤)처럼 올려놓은 걸로 봐 저절로 자란 것도 아니었다. 무슨 까닭이 있을까? “쓸 데 없는 가시를 왜 기르지요?” 조심스레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취민가요?” 재차 묻는 말에, “그래요.” 짧은 대답이었다. “별난 취미네요.” 놀리듯 한 말에도, “그렇지요.” 메마른 대답이었다. 흔히 보는 시골 여인네들의 활달한 대꾸와는 너무 대조적인, 어딘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자르듯 한 대답에 머쓱해져 있는데, 아주머니는 솎은 딸기 몇 알을 건네주고는 앞서 나가버렸다. 종종 찾아오는 불청객들의 비슷한 질문이 귀찮기도 했을 것이다.
딸기를 손에 들고 멍하니 서 있는 우리를 피하듯, 아주머니가 종종 걸음으로 향해 가는 산자락 마을에는 어느새 엷은 저녁 안개가 내리고 있었고, 어둠에 잠기는 오랜 기와집들이 산마을의 적막을 더욱 깊게 하고 있었다. 저녁 안개 속으로 희미해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별난 취미’를 긍정하는 짤막한 대답이 알 수 없는 호기심으로 밀려들었지만, 우리가 기껏 생각해낸 것은 ‘가시밭에 한 송이 흰 백합화’라는 오래된 가곡 한 구절이었다.
산골 마을은 해가 떨어지자 이내 어두워졌다. 한줄기 강한 바람이 미루나무 가지를 세차게 흔들었다. 가지들을 울리는 팽팽한 금속성이 악기의 현을 때리듯이 휘몰아치는 세찬 돌풍이었다. 겨울 산골의 밤하늘은 맑은 별빛으로 더 차가웠다. 숲은 적막했다. 개울을 건너서 어두운 나목의 숲을 지날 때, 얼어붙은 호수의 수면이 갈라지는 긴 파열음이 숲의 적막을 깨뜨릴 뿐, 겨울밤은 끝없는 깊이로 함몰하고 있었다.
교실로 돌아왔을 때도 숲의 적막은 가뭇한 별빛처럼 따라왔다. 지친 일행은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눈을 감은 채였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처럼 생각의 가지들이 침묵 속에 흔들리고 있었다. 백합과 가시와 그 메마른 대답 속에 숨어 있을 얼른 이어지지 않는 생각의 토막들로 채워진 침묵 속으로, 또 하나의 흔들림이 들려오고 있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바이올린 소리였다. 귀에 익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였다. 드문 겨울 손님을 위한 슈퍼 주인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겨울 나그네’란 제목만으로도, 우리는 이 오랜 독일 가곡에 적막한 야상(夜想)을 실어내며 겨울 여행의 정취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겨울 산마을의 밤이 참으로 특별한 적막 속에 깊어지고 있었다.
이슥한 밤인데도 관리인이 찾아주었다. 열쇠 둔 곳을 말해 줄 때 느꼈지만, 퍽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곳 출신 전직 교사였다. 찾아주어 고맙다며, 기념물로 내민 선물은 떡이었다. 멧새알보다 약간 큰 하얀 찰떡을 하트 모양의 망개잎에 싼 것이었다. 온실 속의 망개가 곧 떠올랐다. 낮에 본 그 ‘별난 취미’를 말했을 때, 저 바이올린 연주자가 그 주인공이며 수 년째 이 망개떡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떡에 쓰는 망개잎은 산에서 채취하는데, 온실에 심은 뜻은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자신의 제자이자 집안 조카이지만, 어릴 때와는 달리 워낙 입이 무거워져 사사로이 말을 붙이기 어렵고, 대답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참을 말이 없던 그가 가벼운 한숨을 내쉰 다음, “한 천재 소녀가 시련의 세월 끝에 꿈을 접고 귀향하여…“라며, 남의 일처럼 조카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망개떡 여인’에 관한 생각의 토막들을 대충 이어낼 수 있었다.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을 한 천재 소녀의 좌절된 꿈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가시터널 같은 지난 세월의 시련을 반추하며, 이제는 해맑은 백합꽃처럼 하얀 떡을 빚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추측은 도무지 얕고 가벼워만 보였고, 겨울밤을 깊은 적막의 정취에 젖게 해주던 바이올린 연주가 겨울 손님을 위한 특별한 선물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자신의 고적을 연주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되돌아 나오는 산길에는 망개의 가시덩굴이 메마른 갈잎들을 쓸어안고 차가운 바람결에 흔들리며,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밝은 햇살이 비치는 개울가 양지 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으로 하얀 백조 한 마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물안개가 그려내는 겨울 무지개 속으로 어제와 똑같은 모습의 한 여인이 어제의 비닐하우스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