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일도유천(一道庾泉)이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오직 한길위에 맑은 샘이 솟아나고, 맑은 물로 농사지은 벼가 아주 큰 노적가리가 되어서 세계적인 고을 의령(宜寧)이란 웅비부(雄飛府)에 힘차게 날아오르는구나.
人生은 하루하루가 결승전이다. 인생엔 연습이 없다. 인생에는 재수생도 없고, 재판(再版)도 없다. 단 한 번의 인생, 단 한 번의 청춘,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에 이런 장면이 있다. 사형수가 사형장에 끌려가면서 자기에게 남은 마지막 3분간을어떻게 살까를 생각하는 장면이다. 그는 처음의 1분간은 부모처자를 생각한다. 그 다음 1분간은 친구를 생각하고, 그리고 마지막 1분간은 하늘을 쳐다본다.
그렇다! 언제 종지부가 찍힐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마지막 3분간이 중요하다.
영원한 실존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상의 나그네, 잠깐 왔다 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보람 있게 살아야 한다. 창조의 기념탑을 세우고 가야 한다. 내 존재의 의미와 빛을 남겨야 한다. 보람 있는 인생, 아름다운 인생, 행복한 인생의 금자탑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인생을 지혜롭게 살고, 슬기롭게 처신해야 한다. 지혜는 정신의 진주다. 그것은 마음의 등불이요, 경험의 총화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삶의 의지가 충만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지성의 행동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생이란 영원한 불안과, 불만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부자가 되든, 가난뱅이가 되든, 어느 쪽으로 굴러가든, 우리는 인간인 이상 불만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실존이다. 인생의 정체다. 그러나 인생은 꾹 참는 것, 또 참고 다시 참고, 죽을 때까지 참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이렇게 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인생은 결코 텔레비전에서처럼 사랑과 행복이 흐르는 홈드라마는 아니다. 폭풍과 거센 파도 속에 롤링하고 있는 것이 인생의 실상이다.
불만과 불안의 연속, 인생의 실제는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비참할 수도 있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얼간이가 있다면 그는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거센 세파에 밀려 견디다 못해 죽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었다면, 그것은 잠시나마 편한 세상을 동경해서였을까?
가슴에 가득 찬 슬픔, 원한, 만년설처럼 녹을 것 같지 않은 마음의 상처, 그래도 인간은 살아야하는 것이다. 꽃잎에 이슬이 맺혀 있으면 가슴이 뛸 일이다. 꽃에 벌 나비가 앉아서 꿀을 딴다면 또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인생은 왕복 여행이 아니다. 가는 길만 있지 오는 길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 싶어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힘이 들어도 헤쳐 나가고,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운명에 희롱 당하고, 불행의 파도위에 떠 밀려가도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인간! 하나님! 제발 이 정도로 끝내 주십시오. 문득 이렇게 중얼거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이미 사방이 막히고 나갈 문도 없는 그런 인생의 포위망에서 그래도 계속 살아야 한다고 속삭이는 하나님의 목소리.
그렇다! 살아야 한다. 사는 것 이외에 인생의 대안은 없다. 사는 것이 행복이다. 그 가운데 건강하게 사는 것은 더욱 큰 행복이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 나스메세끼의 작품 ‘행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차분하게 자고 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난다. 일어나면 그저 일어나 있을 수가 없어서 걷는다. 걸으면 그저 걷고 있을 수가 없어서 뛴다. 이미 뛰기 시작한 이상 어디에서도 설 수가 없다. 뛸수록 속력은 가속화 된다"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떻게든 보다 충실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다.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이끌어 나간다는 의미다.
이제는 일도유천(一道庾泉)한 의령 땅에 상장(相長)이라는 나무를 심어보자. 잘 가꾸고 서로 보살펴서 꽃과 열매를 만들어 보자. 인생은 인생 자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천고소단(千古笑端)이다. 웃음 웃음소리다, 그것도 천년의 웃음소리다. 쉬지 말고 웃고 살자. 유쾌하게 살아서 福을 부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