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8월이다. 64주년 광복절이 다가온다. 일본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지도 어언 64년, 우리는 또 어김없이 그 날을 기릴 것이다.
나는 광복절이 싫다. 월급쟁이로 하루를 유급 휴가로 단지 더 쉰다는 의미 외에 광복절에 대한 단상은 없다. 내게 광복절은 진지하고도 신중하게 성찰할 가치가 없다.
내 할아버지는 일생을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이시다.(경남일보 2008. 7.31.자 15면 참조) 전국 유림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나는 파리장서 사건과 제2차 유림단 사건으로 7여 년 동안 수배를 받는 고초를 겪으셨고 대대로 물려받은 천석지기 전 재산 중에서 오직 생가 터 하나만 남겨 놓고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은 분이시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당신과 가족의 삶을 희생한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자식 손자 대에까지 가난의 멍에를 메우신 분이시다. 손자 7명 중에 그나마 시골의 번듯한(?) 오두막집이라도 건사하고 사는 손자는 겨우 둘 뿐이니 말이다. 손자들 가난이 오직 당신의 몫은 아닐 지라도 대대로 물려받은 천석지기 옥토를 당신 대에서 다 팔고 저당 잡혀서 독립군 군자금으로 탕진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초등학교라도 온전히 마친 손자가 시골집 가진 둘인데, 세간붙이는 고사하고 집도 절도 하나 없이, 그나마 물려받은 것이라곤 빚의 굴레와 애국지사 유족이라는 허울 좋은 명예뿐이었다. 따라서 돌이켜 보면 당신 자손들의 지독한 가난이 끝내 자손들 잘못만은 아닌 것이다.
아! 그 와중에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얼마 전부터 도청 주관 광복절 행사장에 애국지사 유족으로 즐거이 불려 나가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후더워 진다. 아버지 당신께서 바깥 출입 하실 계기가 되고 또 그것을 자랑스레 하시니까 말이다.
아아! 하지만 내 할아버지가 남기신 것은 또 있다. 당신의 제자와 문중이 세우고 당신이 강학지소 겸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은 임천정이 그것이다. 이젠 낡고 허물어져 조만간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폐허가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19칸이나 되는 웅장한 규모의 서당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자손들에게는 멍에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물려받은 재산 없는 자손들이 몸 뉘일 살림집은 차치하고 먹고 입을 것이 없는데 당신의 향사가 있을 수 없고 이렇게 큰 집을 관리하고 보존할 능력이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나마 임천정에 대한 소유권이 있는 지역 유림에서 궁여지책으로 서당의 규모를 줄이면 관리․보존하기 수월하고 이로 인해 얻은 재목으로 자식들의 살림집을 짓게 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어느 즈음까지는 보았다. 그리하여 이젠 겨우 7칸이 남았는데 그나마 폐허가 된 것이다.
당신께서 보상을 바라고 나라를 위해 헌신 하시지 아니 하셨겠지만 자손으로서는 오직 하나 남은 당신의 유적지가 폐허가 된 것을 한없이 울분만 삼킨 채 마냥 바라만 봐야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건국 60주년,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인 정부에서 복원해 주어야 한다. 중앙은 물론이고 지방정부에서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 주어야 한다. 건국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의 행적을 되돌아보고 그 고귀한 희생을 제대로 보상해 주어야 한다.
많은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독립운동관련 유적지이자 우리의 근대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가꾸자는 말이다. 그것은 독립유공자 자손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자손이 여력이 되면 국민의 혈세인 지원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쯤 애국지사 자손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까? 일본이 여전히 호시탐탐 독도를 노리고 있는 것도 영원한 우방이라는 미국이 우리를 배반하여 독도 영유권 표기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소시민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나는 알지 못한다.
언제쯤 나는 소시민이 아니라 주권 시민으로 우리 사회에 가없는 애정을 가지고 애국․애족이 아름다운 가치임을 느낄까? 끝내 되먹지 아니한 광복절에 대한 내 생각의 편린이 교정될 날은 올까! 우리는 언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의 희생이 아름다운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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