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한차례 휩쓸고 간 자리마다 매미가 밈∼임 밈∼임
목청을 가다듬고 여름은 제 할일을 충실히 채우기에 바쁜 날이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어릴 적 우리들에게 가장 각광받던 과일은 바로 수박이었다. 수박과 더불어 생각나는 친구∼ 정암이 고향인 친구∼
지금은 솥바위산악회의 선배님 옆 지기로 살아가는 내 친구, 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이 친구가 자기네 원두막으로 놀러 가잔다. 우리는 들뜬 기분으로 뙤약볕이 머리를 벗길 정도의 뜨거움도 모른 채 걸어서 정암까지 갔었다. 그 친구네 원두막에서 지금은 볼 수 없는 노지 수박과 참외를 따서 뜨거워 미지근한 수박을 참 맛나게도 먹었다.
돌아오려고 하는 날 불러 친구 옴마 하시는 말씀이 “야야! 너거 아부지는 무슨 일하노?”
“우리 아부지 예, 농사짓는데 예… 와! 그라는데 예∼”
그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새끼줄에다 내 머리통 보다 더 큰 수박을 묶어 주시면서 “집에 가꼬가서 식구들끼리 농가 무라…”
무거운 줄도 모르고 한걸음에 상동네 집에까지 왔다. “옴마 오딧노? 내 수박 얻어왔다. 빨리 나와바라!”
수박∼∼식구가 대여섯명은 보통일 때라 지금처럼 수박을 모양 좋게 잘라서 먹는다는 것은 부잣집에서나 하는 호사스런 짓이었다.
울 옴마 수박을 받아 들고는 “숙희야 가서 얼음 한 덩어리 사오이라.”
아이고, 울 옴마 맨 날 하는 말이 “묵고 죽을라 해도 돈 없다”고 하더니 얼음은 무슨 돈으로 사오라 하는지∼∼얼음집 아저씨는 큰 덩치의 얼음을 톱으로 잘라 새끼줄로 잘 묶어준다.
이때부터 나는 걸음이 빨라진다. 많이 녹으면 야단맞을 걸 뻔히 알기 때문이다.
“바늘 가온나∼” 바늘을 가져오면 아버지는 그 바늘로 얼음을 쪼갠다. 가는 바늘에 얼음은 쉽게 깨진다. 양재기에 얼음을 담고 수박을 반으로 자르고 손에 든 숟가락으로 푹푹 떠서는 양재기에 담는다.
그렇게 가는 바늘에 조각난 얼음과 수박을 담아 설탕을 듬뿍 넣어 맛을 조절한다. 머리통이 깨져라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정신없이 수박을 퍼먹다 보면 어느새 양재기가 바닥을 드러낸다.
옴마는 수박 껍질 통째로 껴안으시고 설탕물을 약간 부어 덜 발라낸 수박 속살을 숟갈로 긁어내며 잡숫고 계셨다. 그것마저 먹고 싶어 한 모금 물만 얻어 마시고 자려고 하면 “오줌 누고 자라!”는 울 옴마의 당부말씀∼∼
해마다 여름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수박속살을 드시던 옴마 모습이 아른거려 가슴 짠하다.
이번에 옴마한테 가면 젤로 맛나 보이는 수박을 사서 옴마랑 수박파티를 열어 볼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