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멋과 맛이 어우러진 계절이다.
가을의 멋은 백일홍이요, 맛은 전어가 아닐까 싶다.
백일홍은 꽃중의 꽃이다. 백일홍은 일명 배롱꽃 또는 배롱나무라고 하기도 하며 자미(紫薇)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개 꽃들의 수명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데 백일홍은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7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20일 정도 피었다 10일 정도 시들고 하여 9월까지 세 번 꽃이 핀다.
이번 여름은 예년에 보기 드문 폭염이 며칠 계속 되고 있다. 아내의 이순(耳順)을 기념하여 남산동 촛불회 회원 16명과 함께 기장 월전 자연횟집으로 가기 위해 구서 고속도로를 지나는 길목에 백일홍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회원들과 함께 즐기면서 갔다.
우리는 학창시절 검은 스커트에 하얀 교복만 보아도 모두가 백일홍이 되어버린 추억을 간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백일홍은 고고하게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꽃중에서 독야홍홍(獨也紅紅)한다고 해서 옛 선비들이 좋아 했다고 한다.
조선 초기 강희안(姜希顔 : 1417∼1464)은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당대의 멋쟁이로 그의 국내 최고 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꽃과 나무를 9품으로 분류하였는데 백일홍, 매화, 소나무를 1품으로 분류하고 백일홍은 비단같은 꽃이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 사람의 혼을 빼앗는 듯 피어 있으니 품격이 최고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가을은 백일홍이 유난히 돋보이는 계절이다. 백일홍은 부산진구 양정에 있는 동래 정씨 시조 (휘) 정문도 묘소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800년된 것이 있고 황간 백화산 반야사에 500년이 넘은 백일홍이 있고, 경주 남산에 있는 서출지(庶出池)는 사적 제138호로서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저수지로서 343년전(1664년)에 세웠다는 정자 이요당(二樂堂)이 있고 수백년된 백일홍 하나만 있었는데 지금은 동쪽 둑에 빽빽하게 심어져 붉은 정열을 피우고 있다.
또한 전남 담양의 소쇄원 앞으로 흐르는 냇물 주변에 수백년 전부터 수 십 그루의 백일홍이 열을 지어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7월17일 의령군 지정면 두곡에서 둘째 처남(송천: 이종빈)과의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돌아오는 길에 함안 무릉에 있는 주세붕 선생의 덕연 서원에도 백일홍이 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백일홍은 옛 선비들이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사랑하였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백일홍은 상서로움과 부귀를 상징하며 참고 기다림의 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신라 21대 소지왕도 기나긴 어려움과 고통을 백일홍과 같이 참고 기다리면서 성군이 되었다고 전한다.
지난해 가을 홍도, 흑산도 여행을 위해 목포로 가면서 길 좌우에 끝없이 늘어선 백일홍 가로수에 심취하여 마음껏 달려보았다.
가을의 맛은 전어(錢魚)라고 할 수 있다. 전어하면 옛 속담들이 많다. 물고기 가운데 맛을 비유한 속담이 전어만큼 많은 것도 드물다. 전어라는 이름도 맛에서 비롯됐다. 맛이 좋아 값을 따지지 않고 사들인다고 해서 돈전(錢)자를 붙여 전어라고 한다.
전어가 맛이 있는 것은 가을에 지방질이 3배이상 늘어나 맛이 고소해지기 때문이다. 전어는 성질이 급해서 하루를 넘기기가 어렵기 때문에 잡은 당일 횟집으로 옮겨야 한다.
15㎝ 크기가 가장 맛이 좋다고 하며 퍼덕거리는 전어에다 상추, 깻잎에 싸서 소주 한잔 들이키는 맛은 가을이면 누구나 맛볼 수 있는 별미다.
맛으로 몸값하는 전어, 전어는 소금구이가 제맛이라고 한다.
‘집나간 며느리가 전어구이 냄새 맡고 돌아온다’는 말과 같이 전어구이 냄새는 몸에 배인 불포화 지방산이 타면서 나는 냄새 때문이다.
가을 전어 머리엔 깨가 서말, 씹으면 고소한 기름이 입속 가득 번진다. 몸통과 내장을 통째로 삼키고 나면 입술에 기름이 번질거린다.
8월인데도 아직 전어맛을 보지 못했다. 빨리 가을이 왔으면 하고 기다려진다.
가을은 백일홍의 멋과 전어의 맛이 어우러지는 계절이기 때문에 더욱 기다려지는 지도 모른다.
정원식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환경공학과 석사과정. 문예시대신인상<수필>으로 등단. 한국가람문학회원. 부산문인협회회원. 부산문예대학 동문회장. 계간 문예시대 사무국장. 부산시행정동우문인회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