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1돌 한글날 맞아 고루 이극로 박사 주도의 ‘조선말 큰 사전’이 출간되기까지를 알아본다.
조선어 연구회를 모태로 한 조선어학회는 1929년 1월에 경남 의령군 지정면 두곡 출신(1893. 8. 28)의 이극로 박사가 독일에서 귀국하여 조선어 연구회에 입회하여 조선어학회로 바꾸고 조선어편찬회를 주도적으로 조직해 주시경, 김두봉, 신명균, 장지영, 최현배, 정열모, 권덕규, 이병기 등 사회 각계를 망라해 106명의 발기로 사전편찬사업을 민족적인 대사업으로 전개해 나갔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전에는 방언도 상당수 들어갔는데 방언 조사에는 14개교에 500여명의 학생이 참가하였고 1929년부터 13년간 공력을 기울려 만든 2만6천500여장의 조선어 사전 원고이다.
사전 작업에 담긴 의미는 말을 모으는 것은 곧 ‘세상 속의 지식을 모두 모으는 일’로 작성된 최초의 원고가 1942년 조선어학회 간사장 이극로를 비롯해 33명의 편찬위원들이 함흥형무소로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고 이운제, 한징은 모진 고문에 옥사를 하였으며 1945년 8.15광복이 되면서 풀려나고 원고는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하늘이 도와 되찾은 원고를 바탕으로 1947년 10월 조선말 큰 사전 첫 권이 출판되고, 이 후 한글학회로 이어져 10년간 작업 끝에 조선말 큰 사전은 1957년 6권으로 완간되었다. 그 과정에서 숱한 사연들로는 광복 후 사전 발간을 위해 거금 82만원이 특별 기부되었는데 그 돈을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관리들이 저 살자고 일본에 바치기로 했던 국방헌금이었다.
일본의 전쟁 비용으로 쓰였을 돈이 총독부에 앉아 조선어 사전 원고를 검열했을 관리들을 통해 전달되어 일본의 탄압으로 좌절된 사전 출판에 쓰인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다섯 권의 사전은 미국 록펠러재단으로부터 기차 화차로 종이가 9차이고 잉크 등 모두 12차(4만5천달러)의 물품을 기증 받았으나 6.25전쟁으로 다 없어지고 종전 후 미국에서 다시 3만9천달러 상당의 물자를 원조 받아 출간하게 되었다.
이종순 태광상사 대표
재부 지정면향우회 고문/ 재부 의령군향우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