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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아, 이 몹쓸 암아…!

이천 김 두 만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7년 08월 29일

 평소에 심한 변비로 인하여 많이 먹질 않아도 늘 배가 더부룩했다. 지난 세밑 어떤 모임에서 약속시간에 쫓겨 급하게 생선회를 먹었더니 그날 따라 배가 더 부르고 심히 불편했다. 훼스탈 이니 활명수 같은 좋다는 소화제를 먹고 배를 주물어도 별 소용없이 배 가죽만 몹시 아팠다. 동네의원을 찾았으나 역시 별 효과가 없었다.


 종합병원을 찾았다. 두 번이나 큰 수술을 한 적이 있어 병원이라면 몸서리친다. 위 내시경검사 결과 훼리코박타 균만 좀 있을 뿐, 별 징후가 없었음으로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CT 촬영 등 각종검사를 장장 14일간이나 거쳤다. 웬 검사는 그렇게도 많고 많은지! 도로 병을 얻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도 했다. 그런데 대장내시경검사를 하는데 줄이 잘 들어 가질 않는다고 하질 않는가? 그래서 내과의와 외과의간의 합동진단결과, 대장암 3기말이란 중 진단이 내려졌다고 하니 청천 벼락같은 굉음에 그만 아내는 실신했다고… 물론,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기막힌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22세 때 복막염에다가, 34세 때 탈장으로 대장을 잘라 두 번이나 큰 수술을 한 적이 있어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주마간산처럼 뇌리를 스친다. ‘무슨 놈의 팔자이기에 일생에 대수술(개복)을 세 번이나 하는가’싶은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여태 암이란 피안의불 인양 남의 일로만 여겨 왔는데, 하필이면 나한테 불청객이 부닥뜨려와서 있었을 줄이야! 내 마음과 영혼, 일시에 천리방죽이 무너지듯 별들이 쏟아지며 눈앞이 캄캄했다. 수술은 당장 서둘러야 되겠는데, 이럴 수 가 있을까? 의사는 환자가 고령자이기에 수술하길 꺼려했단다. 초조한 아내의 심정, 몹시 안절부절 했다니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으랴!


 여러 경로를 통해 드디어 수술이 결정되었다. 이동침대에 누어 수술실로 들어가는데 간호사는 한결 같이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한참 만에야 멈추는데 바로 거기가 집도 실, 주위는 폭풍 전야처럼 너무나 고요하다. 간호사는“가정과 사회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전부 잊어달라”고, 낭랑한 음성이 잔잔하게 흐른다. 막상 생사의 갈림길에 서니 너무나 암담하다. 평소 신앙이 얕은지라 그나마도 눈을 지그시 감고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를 드린다. 순간! 불안하던 마음이 일시에 사라지고 그렇게도 평안할 줄이야! 여기는 계급장도 명예도 재물도 그리고, 그 어떤 무엇도 훌훌 내던지고, 그저 평안만 충만할 따름이다.



카운트다운이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개복을 하고 보니 줄이 잘 들어가질 않는 것은 직장 위에 큰 종양(양성)에 받쳐서 그러했고, 그리고 위장 바로 아래 대장과 소장이 가로 놓여있는 횡행결장인 소장과 대장, 한 군데도 아닌 두 군데 다 암 덩어리가 엉켜 붙어 배설 통로가 협소해서 더부룩했단다. 조금만 늦었어도 수술은 불가능 할 번했다고 의료진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 운다.


 수술시간은 자그만치 4시간, 회복실로 옮겨졌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까? 의사와 간호사는 틈 사이 없이 참봉 날 지내듯, 바삐 왔다갔다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귓가에 스친다. 의식이 회복되길 기다리던 중, 생기가 감돌았던가 구역질을 하는 것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가족들이 조용한 환성을 질렀단다. 의사는 이따금 식 입을 벌리라며 혀 바닥을 자주 검사한다. 어쩐지 혀 바닥이 자꾸 말려 들어가는 듯, 언어 소통이 자유 롭지 못하고 심히 불편했다.


 아내도 75세란 만만치 않은 고령자, 기도로 밤을 지새워가며, “환자를 24시간 동안은 절대로 잠을 재우지 말라”는 의사의 간곡한 지시에 따라 모두가 교대로 자가며 잠을 쫓았단다. 특히 고령이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그런데, 어쩌자고 잠은 그렇게도 끌어 퍼붓는지! 아내는 내가 눈을 부쳤다하면 눈을 비시 벌리기도 하고, 가스가 나오나 안나오나 귀를 기울어가면서 한참 동안은 옆으로 누워도 창자가 이리저리 뒹굴어 제대로 자리를 잡지도 못하고 흔들거렸다.


 의례 항암주사로 치료를 받으려니 했는데 담당의사 왈, 고령자는 힘에 겨워 이겨내질 못해 주사를 놓질 않는다 고한다. 그래서 약물로만 치료를 한다는 데, 주사를 맞아도 항암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주사를 안 놓는다하니 마음이 더욱 불안했다. 이 또한 설상가상으로 고령자의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하기야 젊은 사람도 주사 줄이 검게 타고 탈모가 되는 심한 고통으로 견디기가 힘들어 도망을 간다하니 감히 짐작이 간다. 오직 암과 싸워서 주사보다 더 힘을 길러 이겨내는 길밖엔 도리가 없다.


 그런데 좋다는 약은 어찌 그렇게도 많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환자들을 유혹하고 있는지! 먹으면 당장 낳을 수 있는 약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의사는 어떠한 약에도 현혹되지 말고 오직 자기의 지시만 따르도록 간곡히 말한다. 다만 보약으로는 항암에 좋다는 홍삼정만은 권해서 사용키로 하고, 식사는 철저한 잡곡과 채식주의로 그리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일체 모든 잡념을 버리고 오직 평안한 마음으로 치료에 임하도록 지시했으며 입원한지 25일째 되는 날 퇴원을 하란다.


 퇴원하고 집에 오니 이웃사촌들이 몰려와서 반겨주었다. 처음엔 3기말이란 소문을 듣고 살아나기는 어렵다고 걱정을 했던 모양이다. 특히 입원 중에 병문 이나 위문전화를 받았을 땐 한결같이 기분이 좋았으며 용기를 북 돋아 주어 두고두고 감사의 마음 금할 길 없다.


그간 한달 간격으로 세 차례나 병원을 찾았으나 약 처방만 받고 다시 날짜를 잡아준다. 당시 같은 방에 입원한 어떤 환자들 중에는 재검사 또는, 재수술을 요한다고 하며 불안감을 떨 추지 못하고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는 것을 볼 때 감히 남의 일로만 같이 않았다.


 평소에 퇴행성 관절로 보행에 불편을 겪고있었는데, 요즘 들어서 좀 심한 듯도 하나 걷기와 운동으로 극복하고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C형 간염도 앓은 적이 있는데, 그 후유증으로 그런지 등이 땐 기기 시작할 때도 있단다. 궂은 날씨나 비가 올라치면 특히, 늦은 오후엔 약물에 취해 몽롱해 지기도하고 그래서 가급적이면 저녁약속은 사절한다. 아래 배가 굽이굽이 요동을 칠 때면 놀란 가슴 다시 메아리친다. 옆구리가 뻗치기도 할 땐 혹시 전이라도 되지나 않았는지? 체 머리가 흔들리 듯 온 전신이 아찔해진다. 그러나 의사의 지시에 따르고 초지일관되게 “오직 믿음과 정신력으로 버텨 싸와서 이겨야지!”하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짐을 한다.


 수술 후 수개월 동안 육식이나 생선회 따위는 일체 금식을 하고있으니 먹고 싶은 생각이사 어디다 말을 다하랴! 특히 중국집 앞을 지나치면 코를 찌르는 그 향기, 입안에서 마구 군침이 도는데 그럴 때면 항암주사를 생각하면서 참고 참아야지… 조금 만한 방심이 또 어떤 화를 자초할지! 늘 신경을 곤두세운단다.


 내 나이 음력으로 79세, 고령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여든을 넘긴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나이는 고사하고 오직 건강하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보니 모든 사물이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 한참 늦깎이 나이 77세로 현대시조에 등단, 그간 못 다한 시작詩作에도 여념 없이 정진하고싶다. 연말쯤엔 첫 시집이라도 낼까한다. 내같이 늙고 별 쓸모 없는 무재無才도 하면 된다는 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싶다. 그리고 PC도 인터넷이니 워드니 그런 대로 두들기면서 여생을 즐겁게 보내고자한다.


 새벽5시에 기상, 인근 학교운동장에서 가벼운 운동과 걷기로 몸을 풀고, 식사는 채식주의로 부글부글 끓인 된장국이며 토 마도 고구마는 상비부식, 오후엔 학교 뒷산에 올라가서 좋은 공기와 피톤치드 속에서 한 두시간 정도 시집 등을 읽고 하산하면 기분이 그럴 수없이 좋다. 하루에 약 만 보 정도를 걷는 셈이니 콧노래가 절로 날수밖에, 암은 저 멀리멀리 도망가다 시피 달아나는 듯 한다. 하루를 접고 잠자리에 들면 잠도 어찌 면 그렇게도 잘 오는지!



-암아, 이 몹쓸 암아…!



 기왕에 불청객으로나마 왔으니 나는 너와같이 더불어 여생을 같이 해야할 운명이로구나. 제발 속도위반만 하지 말아다오. 언제나 내 뒤에만 따라오길 바란다. 네가 있음으로 해서 항상 조심을 하게 되고, 다른 침입자를 견제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여든 고개를 무사히 넘기고 또한 아흔 고개도 넘나 보자구나. 하고픈 일은 태산같으니 나는 너를 길동무 삼아 끌어안고 여생의 동반자로 삼고 싶다.기 고암아, 이 몹쓸 암아!



이천 김 두 만


(용덕면 이목)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7년 0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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