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기반공사 의령지사장 박상현
내가 의령에서 보낸 2년 반의 세월은 너무도 짧아서 마치 차를 타고 가다가 잠깐 졸아버린 순간 꿈속에서 보낸 고향의 추억과도 같다. 나의 고향은 복숭아로 유명한 부천시로서 한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큰 수로에서 물놀이하던 농촌이었지만 이제는 산업지역으로 바뀐 탓으로 고향에 가보아도 시골의 향수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의령 농촌에서 보낸 날들이 벌써부터 아쉬워진다.
2003년 9월, 부임한 지 두 달 만에 들어 닥친 매미 태풍 때, 남강변 저지대인 지정면 두곡마을의 터져버린 둑으로 밀려드는 강물을 바라만 볼 수 없어서 이 지역의 공무원들과 군인,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과 밤을 지새우며 흙과 돌을 수로에 퍼부으며 몸부림치던 일은 평생 기억될 파노라마이다. 더구나, 수해복구를 위하여 피해주민들과 함께 추진위원회를 만들어서 피해대책에 대하여 수없이 토론하고 수로 확장을 위한 사업계획과 용지매수 대책을 이끌어내어 공사를 마친 것은 참여문화의 본보기로서 자부하고 싶다. 강변 저지대에 배수장 시설을 확장하고 배수장 입구의 연못을 넓힌 결과, 올 봄에 어느 농민이 보내준 신선한 수박의 맛도 느낄 수 있었고, 그 수변에서 왜가리 등의 새들과 물고기가 노닐게 되었다.
올 봄, 서암 저수지를 두 배로 확장한 후, 의령초등학교의 어린이들과 함께 물고기를 저수지에 풀어주고 의병제 축제용수를 의령천 냇가에 흘려보내서 이 고장의 자랑인 큰줄땡기기 행사에 오신 분들에게 풍성한 수변 공간을 만들고, 여름철에는 물고기를 위하여 환경용수를 흘려보낼 수 있게 된 것은 기술자로서 큰 보람이다.
외로운 산골인 대의면 천곡마을과 궁유면 산천렵 마을의 인심은 정말로 고맙다. 농림부 예산으로 천곡저수지를 설치하고 의령군의 지원 사업으로 산천렵 마을 앞의 콘크리트 수로를 자연형 수로로 개량하게 되었는데, 모든 주민들이 힘을 합하여 용지매수를 도와주신 데에 감사드린다. 또한 각 마을에서 맛있는 시골음식으로 초대해주신 추억들은 가슴깊이 새겨져있다. 이런 곳일수록 농산물에 훈훈한 인정이 배어들어서인지 골짝 쌀과 산나물 등의 특산품들은 없어서 못 팔정도라고 한다.
지난 초여름엔 강변 저지대의 농민들이 찾아와서 수박 하우스에 물이 든다고 야단을 하였지만 몇 차례 만나서 이야기하고 성심껏 수로를 보수해드리면 어느 새 눈 녹듯이 마음을 푸는 것이 이곳 인심이다. 그래서 이곳의 겨울 날씨가 포근한가 보다.
앞으로도 의령의 훈훈한 농촌 인심이 더욱 확산되어, 나처럼 외지에서 부임하여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이 고장의 즐거운 추억만을 간직하고 돌아가게 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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