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오당(迂堂) 조재학(曺在學:1861.9.4∼1943.5.14)선생의 기념비 중수 준공식이 지난 11월26일 오전 11시 화정면 상정리 화정초등학교 앞 현지에서 오당문중(대표: 증손 조정순) 주최와 창원보훈지청(지청장 김종오) 후원으로 열렸다.
이날 애국지사 조재학 선생의 기념비 중수 준공식을 갖게 된 것은 원래 1977년 4월9일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42-1-23)로 지정되었던 선생의 기념비 탑신을 국비 2100만원을 들여 지난 9월부터 재정비사업에 착수하여 주변 정화사업까지 마무리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문중 대표인 조정순(오당의 증손)씨는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생활하는데 급급하여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못하였던 일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늦게나마 오당 증조부의 행적을 널리 알림이 당연한 일이며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스스로 깨우치게 되었습니다.”며 “저의 조상이라는 것을 차지하고도 유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의 지조와 신념을 가지고 한말과 일제시대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얼마나 철저한 분이셨는지, 또 마음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행동하셨던 분이셨음을 더 깊이 알게 되면서 존경의 마음이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고 말하고 후원하신 지역민과 창원보훈지청 관계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김종오 창원보훈지청장은 축사를 통해 “새롭게 단장된 오당 선생의 기념비가 선생의 나라사랑정신을 드높이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바로 세우는 나라사랑 기림터가 되길 바란다.”며 이번 단장사업에 애쓴 오당 문중가족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화정면 상정리에서 춘호 조익환 공의 3남으로 출생한 오당 조재학 선생은 구한말 의병운동과 파리장서운동에 관여하여 서대문 감옥에 구속(1920)되는 등 독립운동가였으며, 198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오당 선생은 특히 스승인 면암 최익현을 따라 1906년 태인·진안 등지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였고, 최익현 의병진의 소모오위장(召募五衛將)으로 활동하였다. 1913년에는 임병찬과 함께 대한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였고, 1914년 4월에는 광무황제의 밀조를 받은 사건으로 울릉도로 1년간 유배되었다.
이 때 일본형사가 심문과정에서 “조선은 자금, 병함(兵艦)이 없는데 무슨 독립이냐”고 묻자, 오당 선생은 “나의 흉중에는 병함이 있다. 내 마음이 병함이다.”고 답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당 선생은 또한 1919년 13도 대표 독립청원서 제출 및 낭독운동에 참가했으며, 회당 장석영 선생 등과 파리장서 사건을 주도하고, 1921년 고사연구회를 창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던 중 일경에 의해 신의주에서 체포되어 미수로 끝나자 고향 화정면으로 돌아와 봉소암에 은거하면서 지역 유생들과 ‘유린계’를 조직하여 독립운동과 함께 훈장으로서 지역의 후학지도에도 힘썼다. 박해헌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