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창원황공 휘 경만 행적비’ 제막식이 지난 5월 14일 오전 11시 유관기관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과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의 고향인 용덕면 정동마을 입구에서 거행됐다.
이 비문은 용덕면 가락리에 거주하는 전철수 씨가 쓴 것으로 낭송까지 하였다.
이 자리에서 효자 황경만(黃敬萬) 공의 장남인 황종갑 씨는 인사말에서 “저희 아버지 행적비 제막식에 바쁘신 중에도 참석해 주신 기관장님과 주민 여러분께 일가친척과 저희 형제들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며 “오늘날 윤리 도덕이 무너져가는 세태라지만 저희 형제와 자녀들은 선고·현비의 지극하신 효심을 거울삼아 삼강오륜을 바로 세우는데 모범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이 행적비에 의하면 효자 황경만 공은 자가 래식(來植), 휘(諱)가 경만, 갑인년(1914. 7. 28)생이다. 효자 황공의 본관은 창원 황씨이며, 부인은 전의 이씨(全義李氏)이다.
부친 치인(1875년생)과 모친 의령 여씨 사이에 태어난 공은 어릴 적부터 천성이 온아하고, 효행이 남달랐다. 공의 부친께서는 세계2차대전 시 일제에 의해 일본 강산현(岡山縣)으로 강제 징용된 후 행방불명되어 영원불귀객이 되었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은 일시에 소년가장으로 전락, 남의 집 고용살이를 전전하면서도 항상 편모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으며, 간혹 부자집에서 어육을 얻기라도 하면 이를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서 편모께 공양했다.
공은 이처럼 지성으로 편모를 봉양하였으나 어머니가 노환으로 3년간 투병할 때 용하다는 의원마다 다 찾아가 온갖 좋다는 약을 구해 조석으로 드시게 했다. 공의 부인 전의이씨는 병중의 시어머니에게 조석으로 맛있는 음식을 어김없이 공양했을 뿐만 아니라 밤마다 북두칠성께 시어머니의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는 물론, 잠시도 시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하룻밤에도 열 번 이상 일어나 시어머니 보살핌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은 모친께서 돌아가시자 좋은 장례일을 택하여 일본에서 풍진고혼이 되어 떠도는 부친의 영혼을 초혼하여 부친초혼빈소를 짓고 모친장례식에는 선고의 영전 앞세우고, 그 뒤에 어머니 의령 여씨 상여를 24명의 상두꾼이 메고, 그 뒤에는 만장기가 따르는 극진한 장례를 지냈다.
이 같은 효자 황경만 공은 일찍이 의령향교 삼강장려회의 효도상, 의령군과 용덕면 정동리 동민 등의 포창장을 받기도 했다.
황경만(敬萬) 공의 자녀로는 장남 종갑, 종범, 종균, 종금, 진호, 종남, 종순씨 등 5남2녀가 있다. 하현봉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