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저 이우식 선생 비석 유적
묘비, 송덕비 등 의령에서 4곳 확인
의령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에서
의령금석문화 조사
“농민 구휼에 앞장서
은혜 입은 농민들이
송덕비 12곳 세워줘”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박용규 연구교수 언급
남저 이우식 선생의 비석 유적이 의령에 4곳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의령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가 최근 의령금석문화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25일 이 조사서에 따르면 남저의 비석은 의령읍 서동 우수골 묘비를 비롯해 의령읍 충익대로 의령소방서 인근, 칠곡면 외조리 국도변, 용덕면 운곡리 국도변 등 3곳에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먼저 남저의 묘비는 별세 후 1년 뒤인 1967년 7월 5일 한글학회 회원의 성금으로 세웠다. 묘비 뒷면에는 ‘일생에 어진 뜻을 품고 어진 일을 하고 가신 어진 어른 한 분이 여기에 누워 계시니 남저 이우식 선생이시다’라고 새겨져 있다. 이에 앞서 이우식 선생은 1966년 7월 5일 향년 76세로 서울에서 별세했다.
또 의령읍 송덕비는 ‘사인 합천 이우식 수재 구휼비( 士人 陜川 李祐植 水災救恤碑)’로 1927년 6월 4일 정암마을에 홍수가 나서 수확을 못하고 주민들의 양식이 부족하자 그 양식을 제공해준 것에 대하여 고마움의 뜻으로 세웠다.
칠곡면 송덕비는 ‘합천이공우식시혜비(陜川李公祐植施惠碑)’로 1930년 1월 산남 저수지를 지역 주민을 위해 농사지으라고 기증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세웠다.
용덕면 송덕비는 ‘망인합천이우식시혜불망비(亡人陜川李祐植施惠不忘碑)’로 1928년 4월 소작인들에게 농지를 제공하여 농사를 짓게 한 고마움의 뜻으로 세웠다.
현재 확인된 남저의 비석은 모두 4곳이지만 박용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2013년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염원한 이우식’이란 글에서 “<중외일보>의 1929년 7월 15일자에도 의령의 이우식이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 집중 호우로 이재민이 발생하였는데, 쌀과 보리를 출연하여 이재민에게 분배하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처럼 농민 구휼에 앞장섰기에, 은혜를 입은 농민들이 송덕비를 12곳에나 세워주었다고 한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 남아있는 비석 4개마저 후손 관리와 여타 관리 주체가 없음에 따라 관리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례면 운암 거주 왕원상씨가 많은 관심을 가지며 때로는 풀베기 등으로 주변을 관리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훈훈한 정감을 불러 주고 있다고 조사서는 적고 있다.
남저 이우식 선생은 1881년 7월 22일 의령읍 동동(현 천주교회) 자리에서 대대로 우리 고장에서 유일한 만석꾼을 한 부농에서 태어나, 항일 독립운동을 위한 작은 지원은 물론 한글운동과 백산상회를 위해 큰 재산을 바치신 지역의 큰 어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