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상큼한 발걸음이 고향 가는 길이라면, 언제나 설레는 것이 고향소식이다.
고향 가기가 그렇게 망설여지던 때가 지난 설날 이었다.
‘올 설에는 고향방문을 삼가 해 달라‘는 평생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에 고향에 대한 정다움과 그리움 대신 구제역으로 전전긍긍한 안타까움만 깊었던 설 이었기 때문이다.
그 설도 가고 무던히도 춥고 긴 겨울 끝에 봄이 오는가 했는데 살인적 중동의 모래바람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고향은 나의 과거가 있는 곳이고 내가 태어난 곳이기에 고향은 어머니와 같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궁금한 것이 고향소식인데 설날에 못간 탓인지 듣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런 참이라 고향소식을 가득 실은 의령신문을 받는 기쁨이 더 큰지 모르겠다.
전화나 메시지로 단편적인 소식이야 듣지만, 고을의 여러 소식을 함께 담는 그릇으로는 고향신문만 한 것이 어이 있겠는가.
지난번 의령신문은 참으로 좋은 소식을 많이 실었다. 제대로 된 4차선 도로 하나 없이 발전이 지체된 고향에 고속도로와 KTX철로가 놓인다는 꿈같은 소식이며 오랜 숙원이었던 의병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올 6월 1일 처음 행사를 고향일원에서 열린다는 소식 등등.
또 올 한해 고향에서 추진되는 사업이나 계획을 미리 알 수 있도록 군수와의 신년대담은 내용과 수준도 중앙지를 능가할 뿐 아니라 의령신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특집기사였다.
대담을 이끌어가는 당사자들의 높은 식견과 소통, 배려 없이는 질 높은 대담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독자들도 의령신문의 가치를 재삼 평가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고향을 지키며 의령인의 기개를 높여주는 민, 관 관계자들의 노력과 애향심에 고마움을 갖게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 필자의 사무실에 박해헌 의령신문 발행인이 방문했다. 그 분을 통해 더 많은 고향소식을 들었고 신문제작사업이 얼마나 어렵다는 시실도 알 수 있었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미안해 했는데, 그 분은 신문구독료 내는 것만으로도 도와주는 것이라 했다.
구독료야 신문을 통해 고향소식을 듣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이런 대화 속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의령신문 구독자의 70~80%가 구독료를 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는 2~3년치를 한 푼도 내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재정에서도 고향소식을 전해오는 박해헌 발행인의 고충은 얼마나 클까. 한번만이라도 그 분의 입장을 생각하는 의령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난했던 시절에도 고향에서 온 사람들이 들려주는 고향소식에 감격해 하고 고마워하며 돌아갈 때면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노자(路資)를 주던 우리사회였다. 하물며 선비의 고장 의령의 후예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야박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고향인심’이 아니라 ‘세상인심’이 변한 것이라 자위해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고향사랑의 길은 여러 가지겠지만 의령신문을 구독하고 구독료를 내는 것도 고향사랑의 길이 아닐까!
도시화에 상실되어가는 고향, 노인들만 남은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고향, 서쪽하늘이 오늘따라 몹시 흐려있다. 故鄕雪 눈소식이 오려나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