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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대사

정종규 의령군 문화관광해설사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0년 06월 17일











▲ 정종규
본명은 박자초(朴自迢), 호는 무학 또는 계월헌(榽月軒), 고려 충숙왕 14년(1327) 경남 삼기현(삼가․가회․대병) 상천리(上川里)에서 부 인일(仁一), 모 고성 채씨(蔡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채씨가 시집온 지 10년이 되어도 태기가 없었고 부친 인일씨가 성불구의 몸이라 애기를 잉태할 수 없는데 채씨가 배가 불러 오르자 시댁에서는 남의 씨앗이라고 출산과 동시에 땅에 묻어버리라고 하였는데 남몰래 산속에서 무학을 낳았다.


무학은 어릴 때부터 재주가 총명하고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천재로서 18세에 순천 송광사로 출가하여 남해 용문산 혜명스님에게 불교를 전수받아 함경도 묘향산 금강굴에서 수도 중 득도하여 불교계 대덕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공민왕 21년에 명나라로 유학하여 인도의 고승 지공선사(指空禪師)를 만나서 선불교를 배웠고 그 곳에서 나옹스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다.


그때 나옹스님은 공민왕의 왕사로 봉직하면서 무학을 전법제자(傳法弟子)로 삼았는데 다른 제자들이 극구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무학이 천민출신이요 또 하나는 비보수적인 선진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옹스님 곁을 떠나 묘향산 금강굴에서 수 년 동안 수도에만 전념하다가 35세 되던 해(1361)에 합천 가야산 해인사에 하룻밤을 보내고 물어 물어서 고향을 찾았다. 허름한 초가집에 이웃 할머니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무학은 자신이 박씨와 채씨 부인의 아들이라고 정체를 밝히니 할머니가 말하기를 채씨 부인은 불륜으로 얻은 씨앗이라고 시집에서 쫓겨나 행방을 감춘 지 35년이 지났는데 헌출한 장부로 자라서 도사가 되었으니 장한 일 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무학은 천문지리와 음양도참설에도 밝았고 파자점(破字占)과 해몽술에도 유능하였는데 이성계가 어느 날 찾아와서 꿈에 쓰러져가는 헌집에서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왔다는 꿈 이야기를 하였는데 꿈 이야기를 듣고 훗날 왕이 될 것을 확신했다.


무학이 역성혁명에도 대단했다. 고려말엽 불교에 대한 비판과 천민출신이라는 신분 때문에 한계를 느꼈다.


이성계가 1392년 7월에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조준, 정도전, 이방원, 배극렴, 남은 등의 추대로 왕에 오르니 고려 개혁론자 정몽주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며 이를 극복하여 새 왕조를 세웠다. 이성계를 도운 대표적인 인물은 무학, 정도전, 이방원, 배극렴, 남은 등이며 무학이 여러 성리학자들과 뜻을 같이 한 것은 불교보다 개혁에 대한 염원이 더욱 간절했기 때문이다.


이때 새 왕조 이성계의 충실한 인도자가 된다.


태조 원년에 무학대사를 왕사로 봉하고 묘엄존자의 법호를 하사하였다. 태조 2년에 도읍을 정할 때 충남 계룡산 및 공주를 정하였는데 도읍기간이 삼백년으로 짧다는 무학의 말을 듣고 최후의 결정은 왕사에게 맡겨 도읍지를 한양으로 결정하였다. 왕사가 병을 앓게 되자 궁중 전의감 양홍달을 보내어 치료하게 하였다. 무학은 천성이 검소하고 친절하여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했고 새로운 왕도를 바로 세우는 일, 왕궁을 건설하는 일까지 관여하느라 노년기에 일신을 희생하다시피 했다. 1405년 79세에 일생을 마감하였다. 개국의 주체이면서 그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았던 것도 무학의 선택이었다.


조선 3대 태종은 무학의 사리를 회암사 부도에 모시게 하고 예문관 대제학 변계량을 시켜서 비문을 짓게 했다. 지금도 회암사에는 지공선사(指空禪師) 나옹화상 무학선사 부도탑과 세분의 영정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조선실록 이태조7권 무학대사편 참조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0년 0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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