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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聞記者로 一平生

이종민 재부의령군향우회 고문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9년 04월 20일











▲ 이종민
이 記事는 前 朝鮮通信(UP特約) 編輯局長과 朝鮮記者會 初代會長 및 早稻田大學 校友會 顧問 等을 지낸 우리나라 開化期에 民族言論의 先覺者인 李鍾模(1900~1998)先生의 早稻田會報 寄稿文에 提出者가 몇구절 보정한 글 임을 밝혀둔다.



나는 鄕里 書堂에서 漢學 受業途中 開化期에 先覺者이자 社會運動家로 日本을 往來한 靑雲居士 鎭世宗丈의 어드바이스를 받고 日本 留學을 決心했다.


때는 3.1運動이 일어난 이듬해인 1920年 여름에 靑雲의 뜻을 품고 芝正面 杜谷里에 집을 떠나 岐江나루까지 전송나온 父母님께 작별인사후 東京으로 留學길에 올랐는데 当時는 3.1抗日 獨立鬪爭을 일으킨 뒤로 日本으로 工夫하려가는 學生이 부쩍 많아졌다.


처음에 마음먹기로는 日本 敎育界에서 이름높은 東京帝國大學에 入學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帝國大學에 入學하려면 먼저 第一高等學校를 卒業하여야 했던 것이었는데 두 學校가 모두 官立이었다.


나는 第一高等學校 入學試驗을 치르기 위하여 數年동안 英語學校와 數學講習所에 부지런히 通學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各學校의 敎育方針과 校風을 探聞하게 되었다. 그 時代는 東京帝國大學 卒業生은 주로 官吏로 많이 進出하게되고 여타 私立大學 卒業生은 民間機關에 投身하게 되는 것이 예로 되어있었다.


또 早稻田大學은 大隈重信이 設立한 學校로 總長 高田早苗博士 이하 關係敎授들이 다른 大學에 敎授들보다 좀 進步的인 敎授가 많고 校風도 民本主義(民主主義)적이라고 傳해졌다. 나는 当時로는 年少한 學生이지만 그 時代狀況으로 볼 때 日帝 强占期라 民本主義的 校風을 가진 大學이란 데에 그 學校에 入學하고 싶은 생각이 용솟음치게 되었다.


그래서 여태까지의 第一高等學校와 東京帝國大學의 入學準備를 停止하고 早稻田大學에 入學試驗을 볼 채비를 하여 法科에 入學하였다. 法科工夫를 하고 卒業後 抑壓支配機構인 朝鮮總督府의 官吏가 되려는 생각이 아니었다.


辯護士試驗에 合格하여 辯護士가 되어서 많은 光復運動者들이 總督府制定法網에 걸려 있는 것을 法廷鬪爭으로써 적은 힘이나마 援助하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한 것이었다. 많은 朝鮮人 留學生이 早稻田大學 政經科에 들어가서 工夫를 하고 있는 때였으나 惟獨 나만은 如上의 抱負로 法科에 들어가서 工夫를 하였다.


法律講義를 듣고 보니 딱딱하고 부드러운 데가 없었다. 나의 氣質에 맞지 않은 學科이었는 지도 모른다. 나는 每日 學校에 出席하여 講義는 精誠껏 들었다. 法律講義가 끝나면 校內 圖書館에 들어가 다른 마음 쏠리는 冊들을 耽讀하였다.


나는 東京에 건너간 지 9年만인 1928年에 大學을 卒業 故鄕인 宜寧으로 돌아와서 쉬고 있는 동안에 慶尙南道廳警察部 高等課長이라는 日本人 警視가 나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傳하여 왔다. 나는 그를 慶南道廳으로 찾아가서 만났다. 그는 나에게 親切한 態度로서 迎接하여 주었다.


그는 나에게 말하기를 道內에서 日本에 가서 留學하고 온 사람이 數名밖에 헤아릴 수 없는데 너는 慶尙南道의 名譽를 위하여서도 좋은 자리에 들어가서 일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서는 警察部 警官이 되어달라고 勸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警部補로 特採하여 3個月만 經過하면 正式으로 判任官인 警部로 昇進시켜준다고 하였다. 警察官으로 몇해만 勤務하면 차차로 다른 部門職에 轉勤되고 또 그 자리에서 昇進하면 郡守도 되고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道參與官도 되는 길이 열린다고 달콤한 말로 나를 誘引하는 것이었다.


내가 東京에서 工夫하는 동안 警視廳特高課에서 要視察人으로 注目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情報가 本籍地 慶南警察部高等課에 通報되여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慶南警察部 高等課長이 나에게 特別히 接近하면서 職長을 마련하여 주고 나를 懷柔하려는 工作이었든 模樣이다.


나는 그런 高等警察에 그물을 避하여 좀 우리 民族에게 보탬이 되는 일에 從事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고 1928年 가을에 東亞日報 記者로 처음 就職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白髮이 星星한 老境에 이르기까지 新聞記者로써의 외길을 걸어온 것이다. 나는 光復後 自由黨政權 時節 李承晩大統領 獨裁治下에 公報室長 및 內務部次官 등 高位職 提議에도 拒絶한 淸白吏 精神으로 지내온 세월을 回想하면서 後悔는 하지 않았다. 金錢으로 뽐내는 사람과는 아주 딴판으로 살아가는 大韓民國 國民의 一員으로서 自矜心을 갖고 살아왔다.



提出者: 在釜宜寧郡鄕友會 顧問 李鍾旼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9년 0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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