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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가 흐르는 발칸 6개국 순방기 <2>

이수재 재경 의령읍 향우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8년 08월 29일

두브로브니크, 지구상의 낙원 실감


 



지중해의 낙원 - 폴리트 비체













▲ 이수재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를 거쳐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유산으로 가장 아름답다는 크로아티아 폴리트 비체 국립공원으로 이동하였는데 국경들을 넘나들면서도 차내에서 여권만 내보이며 입출국 심사가 통과되는 것을 보고 선진국 미국과 일본도 배울 곳이 바로 여기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반도 한국과 북한이 언제나 자유통행이 되려나하는 부러움이 못내 아쉬웠었다.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가장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 바로 이 폴리트 비체 호수다.


물속에 녹아있는 석회질 성분과 암석이 많다. 그 크기가 조금씩 커지며 호수의 물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구채구를 연상시키는 폴리트 비체는 이곳에 수많은 계단식 폭포가 그 아름다움을 더해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늘아래 가만히 떨어지는 약 92개의 폭포줄기는 병풍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나무로 만들어 놓은 다리를 걸을 때마다 투영되는 초록빛 물방울(옥색)은 어느새 우리를 자연의 경이로운 향연으로 초대한다. 폴리트 비체 국립공원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적 가치를 지닌 곳에 속한다. 이곳 주변에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높은 산들이 있고 골짜기엔 계단식 구조로 이루어진 16개의 신비로운 호수가 폭포로 연결되어 있다.


물빛은 투명한 파란색에서부터 초록색까지 물의 깊이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다.


그것은 탄산석회가 호수의 바닥과 둑에 쌓여 물빛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는데, 은어들과 작별하면서 3시간을 소요하였으나 전혀 지루한 느낌이 없어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2.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아드리아해의 보석)



드디어 서발칸 아드리아 해변에서 조물주의 전성기 때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추정되는 위대한 걸작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크로아티아 남부해변에 위치한 역사적인 두브로브니크입니다.


시인 릴케가 이곳을 아드리아해의 보석이라고, 또한 조지 버나드쇼가 지구상의 낙원을 보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10세기에 건설된 약2km에 달하는 성벽을 걷노라면 마치 중세기 한 도시에 와있는 듯한 특별한 느낌을 갖게 했다.


성벽의 한 커피숍에 앉아 그윽한 커피향기와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아드리아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조물주의 따뜻한 가슴에 안겨있는 듯한 포근한 분위기를 느껴보았다.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두브로브니크는 지상에서 마지막 남은 낙원이자 세계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7세기에 도시가 형성되어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함께 아드리아 해안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무역 도시로 명성을 날렸다. 9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의 무역중심지로 막강한 부를 축척했으며 11-13세기에는 금, 은의 수출항으로 번영 15-16세기에 무역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 도시는 나폴레옹전쟁, 유고슬라비아 대전으로 인해 이 아름다운 도시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그때의 파편과 총탄 자국이 곳곳에 남아있다. 당시 유럽의 많은 학자들이 이곳으로 달려와 인간방패(두브로브니크의 친구들)의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이곳은 폐허만 남께 되었을지도 모른다.


1991년 내전 당시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를 보호하기 위해 UN이사회가 열릴 정도로 세계는 이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걱정하였다.


두브로브니크는 바다를 등지고 강한 방위벽으로 둘러싸인 철옹성의 도시이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육지와 연결된 필 게이트뿐이다. 지금은 성곽을 따라 마을을 구경할 수 있고 성으로 들어가는 문이 3개나 된다. 도시 중심부에는 로마스타일의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교회, 수도원 궁전 등의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좁은 중세 대리석 거리와 주택들은 “아드리아해의 보석”이요 “지구상의 낙원”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3. 새로운 관광명소-떠오르는 발칸(떠오르는 사라예보!)



사라예보는 헤르체고비나의 수도로 현재 인구는 36만명 정도이다. 16세기 오토만 터어키 지배시대에는 발칸에서 이스탄불 다음으로 크고 중요한 도시였으며 통계에 의하면 1838년도에 전 유고슬라비아(지금 세르비아) 수도인 베오그라드가 3만 인구였는데 당시 사라예보는 8만 인구였으며 1851년도에 현재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가 만사천이었다니 당시에 이름이 났던 곳이었던 것을 짐작 할 수 있겠다.


오토만 터어키 지배 415년간(1463년에서 1878년)의 지배를 통한 이슬람문화 그리고 40년간(1878-1918)의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지배를 통한 카톨릭과 또한 발칸지역의 동방정교회의 기독교 문화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를 그려내고 있다.


이곳은 1914년 6월 발생한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사건(사라예보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시내를 흐르는 미리아크강변에는 이 사건을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고 시내에는 이슬람풍의 거리와 시장 다수의 모스크성당 등이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1992년 3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분리, 독립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슬람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민족 간의 분쟁으로 내전의 중심지가 되고 있었는데 건물 일부가 아직도 복구가 되지 않았고 건물에 박혀있는 대포 및 총탄 자국은 내전의 참상을 일깨워 주었다.


또한 이곳은 1973년 4월 개최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에리사, 정현숙 선수 등이 여자단체전을 석권하여 처음으로 한국탁구가 세계 제패를 이룬 곳이다.


다음번 우리나라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유치되길 갈망하면서 베오그라드로 출발했다.

편집국 기자 / 입력 : 2008년 0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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