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아직도 자유무역이라는 거창한 경제용어가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가 찬거리를 사고파는 의령의 5일장에는 우리 농산물보다 수입 농산물이 더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가 나비의 단순한 날개 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이론의 나비효과를 발표했고, 이 이론은 나중에 카오스의 이론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 일반적으로 작고 사소한 사건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가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요즘 흔한 얘기로 미국에서 기침만 해도 한국 주식시장이 출렁인다는 말로 회자되기도 한다.
로렌츠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기상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초기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결국 그 결과는 엄청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브라질에 있는 날개 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의령농협 미곡처리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국산보다 값이 싼 수입 농산물이 시골장터 노전에 까지 지천으로 깔린 마당에 수급의 불균형으로 매년 이월되는 재고량이 누적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에 쌀 재고 감축과 농업인이 생산한 벼를 수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농산물의 특성상 해를 넘기게 되면 묵은쌀로 변질됨은 물론, 곳간을 비워야 이듬해 또 농민들로부터 사들일 수 있기에 때로는 거래처에 떠맡기다시피 매출을 올려야 하는 구조적 모순 속에 쌀 재고 처리를 위해 농협에서는 부산소재 의령군농산물직판장을 개장하여 위탁거래를 하게 되었다.
의령군 쌀의 대량수요처로서 처음에는 활발한 거래를 하였으나 거래처의 사기행각으로 이어지면서 급기야 관계직원들이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한 일로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도 피해가 감은 물론이지만 고향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하고 천직으로 알고 일하던 직장과 동료를 잃고 가족들에게 너무나 힘든 시련을 안겨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고향에서 대대로 뿌리를 묻고 살아오던 본인의 입장에서 이 일은 너무나 큰 충격은 물론이고 씻을 수 없는 이미지의 타격을 입게 되었다. 농협 근무 30년, 지금까지 쌓아온 나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서 파생된 순간의 과오가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온 것을 이제 와서 누굴 탓 할 수 있겠는가. 그간 여러 동료와 농업인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치게 되어 진심으로 사죄를 드리고 싶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열정과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근 대도시의 기관단체, 학교 등 단체급식에 안정적 거래선을 유지한 일, 이월 재고물량을 무리 없이 처리하여 농업인의 희망전량을 수매할 수 있었던 일, 수매장에서 출하 대기시간을 줄여 농업인의 편익을 제공하고자 도내 농협 최초로 지방비를 교부받아 산물수매장 투입구를 증설한 것 등은 보람으로 기억되어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당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뜻을 함께하며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군(郡)관계자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리며 지금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고 있을 옛 동료와 농업인들의 노고에 격려를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