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들녘에서 벼 이삭 영그는 소리가 들려오는 결실의 계절이 성큼 다가 왔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색깔이 짙어지는 들녘은 도시민들을 고향의 아름다운 향수에 젖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삭이 여물어 갈수록 농업인들은 또 다른 걱정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개방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애국심에 호소하며 농산물을 판매하던 시대는 이미 갔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국산이냐, 수입이냐’에 상관없이 품질과 가격을 농산물 구매의 최우선 조건으로 삼기 시작했고, 외국산 농산물도 예전보다 품질이 크게 향상되어 우리농산물은 더욱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럼 이 시대에 우리 농업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농산물을 구매하는 것이 수입 농산물보다 이익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만족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 쌀이 미국으로 수출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또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대형 할인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했지만 한우 매장을 찾는 소비자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해썹(HACCP·위해요소중점관리제도) 인증을 받는 등 한우의 안전성과 우수성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 온 덕택일 것입니다. 또한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으로 역경을 이겨낸 선도 농업인들의 명품화 전략도 많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흔해빠진 고구마에 유기농·행복론을 도입해 고소득을 올리는 ‘행복한 고구마’, 독특한 맛과 품질로 전국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충북 괴산의 ‘대학찰옥수수’, 옛 문헌 기록을 찾아내 ‘지례흑돼지’ 명품을 만든 김천시 지례면 농가들, 귀농 후 전통된장과 첼로독주회를 접목시켜 성공한 ‘메첼’, 매실축제로 매년 100만여명이 찾는 전남 광양의 ‘청매실농장’, 전남 해남 옥천농협의 ‘한눈에 반한 쌀’, 배축제를 활성화해 수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경기 화성 ‘현명농장’ 등이 그 예입니다.
식품관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주한미군이 1999년부터 농협유통을 통해 국산 농산물을 공급받고 있고, 그 이후 일본 오키나와·괌 등 태평양 주둔 미군기지로 확대했으며, 미군기지 커미서리(영내 판매장)에서 감자·사과 등 국산 농산물이 미국산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군 측은 우수 농산물을 공급해줘 고맙다는 감사패까지 최근 농협유통에 보내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각종 FTA 추진 등 우리 농업의 위기론이 팽배한 가운데에서도 우리 농업의 살 길을 찾을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으며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친환경농산물 생산이라 생각합니다.
농약의 오남용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이런 정보를 알고 있는 소비자들의 의식과 눈길이 친환경농산물로 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무적인 것은 친환경농산물 생산에 의한 성공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먹을거리를 안전하고 고품질로 생산하는 것이 힘든 만큼 농가의 노고를 인식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으며, 농업인은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요구하는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의욕을 북돋아야 할 것입니다.
친환경농산물인증에는 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저농약농산물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필지별, 재배포장별로 생산되는 전품목에 대하여 인증해 주고 있으며 연중 신청 가능하고, 인증을 받은 후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출장소에서 수시로 농장을 방문하여 생산과정에서의 인증기준을 이행했는지 Safeq(농식품안전안심서비스)를 통한 안전성조사도 하게 됩니다. 이 제도가 활력을 얻으려면 농업인들의 자구노력과 세계 농업정책의 방향과 비전을 아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업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농촌사랑일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국내 총생산 비중이 1%도 안 되는 쌀이 수출 1위 품목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농업을 온 국민의 산업으로 인식한 깊은 전통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우리도 이젠 세계적인 경제대국답게 국가의 기본 산업, 국민의 생명산업인 농업을 지키고 육성하는 일에 투자와 노력, 따뜻한 관심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