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4-05-20 13:18:56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기획특집

<4>-시를 통해 본 이극로의 생애와 사상

가장의 책임 다 못해 자책 슬프고 인간적인 면모도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06월 18일

새 가을 한밤중에 벌레소리가 시끄러워


옥 안에 갇힌 사람이 잠들지 못한다


어린 자식과 약한 아내는 요 사이 어떤가


책임을 느끼매 마음 편하지 못하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


 












▲ 이승재 미국 조지아대학교
비교문학과 강사
1942년 이극로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함께 구속되어 함흥 형무소에 수감된다. 일제는 이극로가 주모자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따로 독방에 수감해서 가장 혹독한 감시와 고문을 그에게 가했다.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고 할 만큼 석방 이후에도 만신창이된 몸을 치료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다음의 시는 그가 함흥 형무소에 있었을 때 썼던 시로 그가 그곳에서 느낀 감회의 생생한 증언이다. 먼저 첫 두연을 보자.


 


1.


본디 닥치는 대로 사는 이가


어찌 감옥살인들 피할 사람인가


몇 번이나 죽을 뻔하였는데


하느님이 도와서 살아난 사람이다


나와 같이 복을 받은 사람도


어찌 이 세상사람에 그리 많겠는가


오직 신께 이미 받은 은혜를 감사할 뿐이요


장래 일은 하느님의 뜻에 맡긴 사람이다


2.


그 사람의 죽음은 한때 일이나


진리와 정의만은 영원히 산다


한 부분 혈구가 희생을 당하여


귀중한 몸의 전체가 산다


천지 사이 만물 가운데


사람만이 영원히 전체로 산다


맘과 몸이 튼튼한 복을 구하려거든


일이 많아서 생사를 잊어버려라


 


여기서는 혹독한 고문이나 감옥 생활에도 굴하지 않는 이극로의 강인한 정신을 볼 수 있다. 그는 생각한다. 결심한 바가 있으면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살아온 인생이기에 ‘물불’이라는 호를 가지기도 했는데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굴할 순 없지 않은가. ‘하느님의 뜻’이란 기독교의 신이냐 대종교의 단군(檀君)이냐를 떠나서 그냥 천의(天意)를 가리킨다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미 이극로는 당시 국제 정세를 관망하고 일본이 곧 패망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하늘의 뜻이 그러하고 자기는 그 뜻에 사는 사람인데 뭐가 두려울 쏘냐. 그리고 죽음이란 일시적인 것일 뿐이고 ‘진리와 정의’는 불멸하므로 혹시 내가 죽어도 내가 행한 진리와 정의는 남아서 ‘몸의 전체’ 즉 나라 전체의 토대가 된다. 이것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다. ‘사람만이 영원히 전체로 산다’는 육체는 죽어도 그 사람의 정신은 죽을 수가 없음을 의미한다. ‘전체’는 여기서 ‘전생(全生)’을 의미하는데 한 평생이란 뜻으로 보기보단 ‘생명을 보전(保全)’한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3.


어려움을 참고 사전을 만듦은


선비의 도리에 의무를 다함이다


이런 일이 또한 죄가 되어서


마침내 진시황의 솜씨를 만났다


가슴을 치며 울고 싶으나


어찌 하느냐, 이것도 자유가 없다


깊은 밤 감옥 방 안에서


홀로 누워 눈물만 흘린다


 


이극로의 분한 마음과 처절했던 삶의 순간이 생생이 느껴진다. 일제의 문화적 탄압을 진시황제의 문화 탄압 사건인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비유한다. 한글 연구가 선비된 도리로서 학문적 열망을 가지고 하는 당연하고도 순수한 일인데 가차 없는 탄압을 당했다. 너무 분해서 울고 싶으나 독방에서 24시간 감시를 당하니 약한 모습 보여서는 안 되겠기에 눈물을 흘릴 수도 없다. 어두워지면 홀로 누워 몰래 분한 마음을 삭힐 뿐이다.


 


4.


새 가을 한밤중에 벌레소리가 시끄러워


옥 안에 갇힌 사람이 잠들지 못한다


어린 자식과 약한 아내는 요 사이 어떤가


책임을 느끼매 마음 편하지 못하다


 


한 밤중에 귀뚜라미 소리에 깨어 우수(憂愁)에 젖는다. 바쁘게 사느라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 하지도 못하고 살아 왔는데 이 한 밤중에 무력하게 형무소에 혼자 있으려니까 집안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귀뚜라미 소리는 마치 아내와 아이의 울음소리처럼 들리는데 그렇다고 집안 소식을 알 방법도 없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하면서 끝나는 이 시는 이극로의 시들 중 가장 슬픈 시이다. 그러나 또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시다. 전체적으로 보면 앞의 두 연의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의 ‘물불’ 이극로와 나머지 두 연의 섬세한 인간적인 모습의 ‘인간’ 이극로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미학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해방 후 이극로는 한 편의 시를 남겼는데 이것이 그가 남한에서의 활동에서 남긴 마지막 시다. 이 시는 그가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독립 투사들에게 바치는 송가(頌歌) 이다.


 


1.


역사 오랜 조선나라 멸망 당하니


충렬사는 의분으로 일어섰구나


만주들을 쓸고 오는 시베리아 바람


두만 압록 맑은 강물 얼어붙었다


서릿발이 나는 칼날 번쩍거리니


적의 목은 낙엽같이 떨어지누나


마주 오는 적의 탄알 가슴 뚫으니


거룩한 피 새론 역사 이뤄주었다


2.


조상나라 위한 몸이 목숨 바치니


그 정신이 멀리 뻗쳐 교훈 되구나


몸은 죽고 혼은 남아 영원 무궁히


자자손손 우리들과 함께 살도다


두견새가 슬피 우는 저문 봄날에


적국 일본 사쿠라도 떨어졌구나


충렬사여 두 눈만은 감아주소서


우리들은 새 나라를 세우오리다


- 「진혼곡」


 


일제에 나라는 빼앗겼지만 충렬사로 대표되는 열사와 충신의 정신은 살아서 독립투사들을 이끌었다. 그들은 만주의 혹한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기 않고 끝까지 싸웠다. 그들은 그렇게 죽어 갔지만 그들의 ‘거룩한 피’는 새 역사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결코 헛되지 않다. 그리고 그 불굴의 정신은 우리 모두가 그리고 자자손손 모두가 새겨야 할 ‘교훈’이 된다. ‘저문 봄날에 적국 일본 사쿠라도 떨어졌구나’는 8월 15일 광복절과 연관시키지 말고 상징적인 구절로 이해해야 하는데 이는 곳 봄날 화려하게 피는 듯 했지만 한순간에 지는 벚꽃처럼 몰락한 일제의 군국주의를 상징한다. 마지막 두 행에서 이극로는 충렬사 애국지사들에게 이제 걱정 말고 편히 쉬셔도 됩니다라는 마지막 위령(慰靈)을 드리는데 이것은 그의 ‘새 나라’를 세우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 결의였는지 명백히 보여준다.


새 나라를 세우겠다는 이극로의 당찬 결의는 그러나 그가 가장 바라지 않던 방향으로 전개된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것은 이극로 개인의 비극이자 한국 역사의 비극이다. 민족 분단만은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았지만 역사는 외면했다. 그가 이루지 못한 역사는 현재에도 진행 중인 역사다. 그는 1948년 평양에서 개최한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에 건민회 대표로 참석한 후 방언 연구차 그곳에 더 체류하게 되면서 결국 북한에 잔류하게 된다. 그 이후 그곳에서 한글학자로서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다가 1978년에 숨을 거두었다. 우리는 저간의 사정이 어떠했으며 또 월북 이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나중에 통일이 되서 그에 관한 모든 자료가 공개 되지 않는 한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에 갇혀서 우리가 그가 남긴 업적을 아직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우리는 그가 가장 원치 않았던 역사를 살고 있다는 현실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 모두가 가장 원치 않았던 역사였다. 하지만 편리한 세상에 길들여져 통일에 대한 인식과 중요성이 점점 사그라지는 이 시점에 분단의 비극이라는 사실에 무감각해져서 분단이 자연스런 역사로 무심코 굳어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한반도의 분단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은 역사의 자명한 이치다. 위의 시에서 이극로는 육체는 죽어도 정신은 영원히 산다고 했는데 그가 우리에게 남긴 업적과 정신은 곧 아니면 언젠가는 역사에 의해 다시 살아남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완성의 인생을 살다간 이극로, 한반도의 비극 속에서 그도 죽는 날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고향 산천에 황금빛 들판을 다시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도 분명히 한강을 낙동강을 고향 산천과 떼배에 탄 사공의 노랫소리를 사무치게 그리워했을 것이다. 시 몇 편으로 이극로의 전 생애와 사상을 개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가 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 글이 이극로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친근한 소개서로서 그 기능을 했다면 또한 이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극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면 필자는 보람을 느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상황상 자료 부족으로 「고투 40년」에만 의존하여 이 글을 썼는데 혹시 중요치 않은 것을 강조하고 중요한 것을 누락하지 않았는지 잘못된 정보가 있지는 않았는지 심히 걱정된다. 다음번에 또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그 때는 수필을 통해 또 한번 ‘인간’ 이극로를 얘기하고 싶다. <끝>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06월 18일
- Copyrights ⓒ의령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의령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수여식..
의령 수월사 의령군장학회 장학금 300만원 기탁..
의령군가족센터 ‘의령박물관 및 충익사 탐방’ 진행..
의령교육지원청 진로 직업인 특강 올해로 3회째 열어..
의령홍의장군축제 성공은 `RED`에 있었네!..
의병마라톤 행사에서 함께 뛰며, 청렴봉사 활동 시간 가져..
의령소방서, 주거용 비닐하우스ㆍ컨테이너 화재 예방 당부..
오태완 군수 공약 평가...경남 군부 유일 2년 연속 `A등급`..
입식가구·생명박스·방역소독...의령군 경로당 `3종 세트` 호응..
의령군, 경남 드론측량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 수상..
포토뉴스
지역
"빛과 색으로 물들이는 도시"...의령군은 변신중 '의병탑' 영웅의 흔적 주제로 '홍색' 조명 설치 의병교 보행로·수변산책로 다채로운 '빛..
기고
김복근(국립국어사전박물관건추위 공동대표·문학박사)..
지역사회
최병진.전형수 회장 이.취임 최병진 회장, 재경 의령군 향우회장 감사패 수상 하형순 산악회 전 회장 공로패..
상호: 의령신문 / 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51 / 발행인 : 박해헌 / 편집인 : 박은지
mail: urnews21@hanmail.net / Tel: 055-573-7800 / Fax : 055-573-7801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아02493 / 등록일 : 2021년 4월 1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종철
Copyright ⓒ 의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4,711
오늘 방문자 수 : 3,267
총 방문자 수 : 15,768,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