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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를 통해 본 이극로의 생애와 사상

한양성 지킨 영웅 기려 낭만적인 도가풍의 절창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06월 05일

한양성 싸고도는 저 물굽이에
배 띄운 영웅호걸 몇몇이더냐?


강천에 훨훨 나는 백구들이나


아마도 틀림없이 알까 합니다


‘한강의 노래’


 


 












▲ 이승재
1927년 베를린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벨기에, 영국, 미국을 거쳐 1929년 드디어 이극로는 고국 땅을 밟는다. 이후 조선어학회를 설립하고 사전편찬, 표준말 제정, 맞춤법 통일, 한글 보급에 전력을 다한다. 시인 정지용은 ‘언어 예술이 존속하는 이상 그 민족은 열렬하리라’라고 말했는데, 물론 바쁜 활동으로 시를 쓰지는 못했지만 이것을 몸소 뛰어다니면서 가장 확실하고도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보여주고 실천한 사람은 아마 이극로가 아닌가 싶다. 사실 이 기간 동안 이극로는 가장 많은 글을 썼으며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한글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것은 정말 상상 하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1939년 이극로는 고향땅을 다시 밟고 낙동강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1.


낙동강 칠백리 흘러간 저 물이


태평양 위에서 태평가를 부르네


2.


진주 앞 흘러온 저 맑은 남강물


합강된 거룽강 경치도 좋구나


3.


강녁은 열려서 너른 들 많은데


곡식이 익어서 황금밭 됐구나


4.


김유신 칼 갈고 솔거가 붓씻어


신라를 빛내던 낙동강이로구나


- 「낙동강」


 


1939년이면 이극로가 가장 바빴던 시기였겠지만 우리는 이 시를 통해서 그가 자연의 풍류를 즐기는 여유를 잊지 않았음을 본다. 사실 낙동강은 강원도에서 시작하여 남해로 흐르는 긴 강으로 족히 천 이백리는 된다. 그래서 ‘낙동강 칠백리’는 엄밀하게 보면 틀린 표현인데 그렇지만 낙동강의 주류가 사실 경북 상주에서 시작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것은 맞는 표현이다. 지금도 우리는 흔히 ‘낙동강 칠백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낙동강은 태평하게 노래를 부르며 한가로이 태평양으로 흐른다. 저 무한한 바다로 저 멀리 미국으로 혹은 세계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지 모른다. ‘남강’은 낙동강의 한 지류로서 진주에서 흘러나와 의령군과 함안군의 경계를 만든다. ‘거룽강’은 지금의 ‘거릉강’을 말할진대 남강의 한 작은 지류로서 이것은 의령군 지정면으로 흐른다. 이극로는 지금 낙동강을 따라 고향땅으로 걸어가면서 경치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다다른 고향땅은 강녁이 훤히 열려 있고 곡식이 황금빛을 발하는 추수를 앞둔 풍요로운 가을이다. 이 풍요의 공간은 다시 낙동강의 찬란한 역사를 생각케 해준다. 이곳은 당나라를 물리치고 삼국 통일을 이룩했던 김유신 장군이 칼을 씻던 곳이고 통일 신라 시대에 황룡사 벽에 새들이 앉으려 했다가 부딪혀 떨어져 죽었다던 그림을 그렸던 솔거가 붓을 씻던 곳이다. 이극로가 김유신 장군과 솔거를 떠올린 것은 그가 짊어진 막중한 역사적 의무와 그가 바라는 세상, 즉 자주 독립과 통일 정부 수립 그리고 아름다운 문화가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쉽고 읽을 만한 작품으로 이극로의 풍류와 나라 사랑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이 정겹고도 깔끔하게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이런 좋은 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서 많은 어린 학생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1941년 이극로는 강을 배경으로 한 또 다른 낭만적인 도가풍의 시를 썼다. 이 시는 여러 측면을 고려해 봤을 때 이극로의 모든 시들 중에서 가장 잘 쓰인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1.


한강은 조선에서 이름 높은 강


멀리도 태백산의 근원이로다


동에서 흘러나와 서해로 갈 때


강화도 마니산이 맞이하는구나


2.


강역은 한폭 그림 산과 들인데


초부의 도끼소리 멀리 들린다


점심밥 이고가는 농촌 아가씨


걸음이 바쁘구나 땀이 나누나


3.


한양성 싸고도는 저 물굽이에


배 띄운 영웅호걸 몇몇이더냐?


강천에 훨훨 나는 백구들이나


아마도 틀림없이 알까 합니다


4.


산 넘어 물 건너서 저기 저 마을


우리의 부모처자 사는 곳일세


떼배에 한가하게 앉는 사공들


기뻐서 이 강산을 노래합니다


- 「한강의 노래」


 


이 시는 김소월의 민요시가 바탕을 둔 7·5조의 율격을 엄격히 따른 시로 그만큼 리듬감 있고 정감 있게 읽힌다. 첫 연은 ‘낙동강’처럼 지리적인 관찰로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한강을 수도로 전개 됐기 때문에 ‘가장 이름 높은 강’이다. 한강의 발원은 태백산맥이고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서울을 거쳐 마니산을 지나 서해로 들어간다. 정확한 지리적 정보의 서술은 다소 딱딱한 느낌을 줄 수 있었으나 1연 끝의 ‘-누나’라는 감탄적 어미가 분위기를 살리면서 다음 연을 준비하게 해준다. ‘-누나’라는 어미는 2연에서도 반복된다. 이극로는 이제 강둑에 서서 아름다운 한강의 산과 들을 한 눈에 바라본다. 이때 멀리서 ‘초부’ 즉 나무꾼이 나무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강녁에서 배를 만드는 사람의 소리라고 해석해도 될 것이다. 이어 땀을 흘리면서 점심밥을 이고 가는 명랑한 ‘농촌 아가씨’의 모습이 정겹게 그려진다. 다음 연에서는 역사적 공간으로 넘어간다. ‘한양성’은 서울의 중심 4대문 안을 가리키는데 지금 이극로는 지금 그곳을 바라보며 한양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수많은 의로운 영웅들을 생각한다. 알려진 영웅들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영웅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영웅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의 중심인 한양성은 그런 오랜 세월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 나온다. 강위를 날고 있는 ‘백구’들 즉, 갈매기들은 그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라고 이극로는 상상한다.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자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반복된다. 우리들의 기록의 역사에서 사라진 영웅들이라 해도 ‘백구’로 대표되는 자연의 불멸성은 그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이극로의 상상력의 영역은 더욱 더 확대된다. ‘산 넘고 물 건너서 저기 저 마을’은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는 눈에 보이는 마을이라기보다는 그냥 막연한 ‘저기 저 마을’로서 남쪽 전체를 가리킨다. 이 막연한 심상을 주는 ‘저기 저’가 이 시의 낭만성과 신비감을 더한다. ‘떼배’라는 것은 지금은 전시관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뗏목 몇 개를 엮고 돛을 달아 만든 원시적 형태의 작은 배인데 가까운 연안에서의 해초 채취와 간단한 자리잡이, 낚시에 쓰였었다. 한강 유역에서는 사용되지 않았고 주로 남해안 일대나 울릉도, 제주도에서 사용되었다. 이 ‘떼배’라는 배의 이미지는 얼마나 낭만적 향수를 자극하는가! 이극로는 지금 서울에서 ‘저 멀리’ 남쪽에 있을 우리의 부모처자들을 떠올리고 있으며 그의 귀는 떼배 위에서 한가로이 노를 젓고 있는 사공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있다. 떼배라는 것이 바다를 업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고달픈 채취 즉 우리 민족의 고난을 상징할 수 도 있겠지만 그러나 여기에서는 낭만과 환희로 승화되어 온 ‘강산’에 울려 퍼지는 행복과 평화의 노래가 나오는 곳으로서의 상징이 된다.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1년 06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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