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백두산! 백두산이라!
하늘 위냐? 하늘 밑이냐?
하늘에 오르는 사닥다리로구나!
진세(塵世)의 더러운 기운
발밑인들 어찌 미치리
이후 이극로는 배움에의 열망으로 여러 번의 가출을 했고 천신만고 끝에 결국은 마산의 창신학교를 다니게 된다. 1912년 학업을 마치고 독립군이 되겠다는 결심으로 고국을 떠나 만주 서간도에 간다. 당시 간도를 비롯한 만주 지방은 독립 운동가들의 집결지이자 민족교육의 중심지였다. 이극로는 이때 처음으로 백두산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 감회를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뜨거운 피’로 다음과 같이 한글시로 노래 했다. 전문은 16연 58행의 긴 자유시인데 여기서는 지면상 첫 두 연과 마지막 연만 싣는다.
백두산! 백두산! 백두산이라!
하늘 위냐? 하늘 밑이냐?
하늘에 오르는 사닥다리로구나!
진세(塵世)의 더러운 기운
발밑인들 어찌 미치리
그는 세상을 내려 살피고
세상은 그를 우러러 본다
세상은 만민이요 그는 제왕이구나!
우뚝 선 보탑(寶塔) 이로다
영원히 조선 겨레의 보탑이로구나
전체적으로 거칠게 읽히는 이 시는 절제되지 않은 리듬과 불규칙한 감정의 토로 그리고 투박한 은유의 구사로 미학적으로 뛰어난 시는 아니나, 이극로의 시들 중 가장 이극로다운 기백이 넘치는 시다. ‘진세’와 ‘보탑’은 불교 용어로 각각 속세와 보배로운 탑이란 뜻이다. 나라 잃은 슬픔으로 점철된 더러운 세상 속에서 꿋꿋이 위용있게 서있는 저 ‘제왕’같이 드높은 백두산을 보며 이극로는 한민족의 불멸의 혼을 느끼고 있다. 민족의 독립은 시 속에서 신격화된 존재인 백두산의 가호 속에서 당연히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하늘의 뜻이다. 대자연의 존엄 속에서 어서 빨리 나라를 되찾아야겠다는 ‘뜨거운 피’를 느끼며 이극로는 다시금 독립에 대한 결의를 다진다. 그는 믿는다. 백두산은 민족의 보배로운 탑으로서 영원히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라고.
유학을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가는 중에 1921년 이극로는 이집트, 이탈리아, 스위스를 거치게 되고 그곳에서 이집트 문명과 서양 문명을 토대가 됐던 기독교 문화를 유심히 관찰한다. 그는 시대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당시 먹고 살기도 힘든 식민지 조선에서 누가 유학이라는 것을 감히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갇힌 세상과 시야 속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것도 국제적 흐름과 열린 시야 속에서 조선의 상황을 이해 하려는 노력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극로의 애국주의는 감정적, 지엽적, 국수적 애국주의가 아닌 세계적인 시야와 역사적 감각 속에서 나온 애국주의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한국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애국주의자(cosmopolitan patriot)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이자 가장 찬란했던 문명을 이끌었던 이집트를 방문한 이극로는 자신의 나그네 신세와 비교하여 끊임없이 흐르는 역사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몸소 느낀다. 이런 비교적인 관점으로 그는 아마 고대 시대부터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생각했을 것이고,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 곧 올 것임을 느꼈을 것이고, 우리가 문화 (한글)를 지키지 못하면 언젠가는 또 어느 나라의 식민지가 될 것임을 느꼈을 것이다.
금자탑은 높이 하늘을 뚫고 섰구나
애급 문화를 여기에서 본다
나일강은 흘러 쉬지 않고
사하라 사막 바람은 불고 있다
헤홉 왕의 넋은 아직도 살아 있어
북쪽으로 카이로를 바라보고 운다
예나 이제나 구경 다니는 동서양 나그네
나라의 흥망이 덧없음을 새로 느낀다.
- 「애급(埃及) 금자탑 위에서 읊음」
‘애급’은 성경에 있는 ‘애굽’과 같은 말로 이집트를 가리키고 ‘금자탑’은 지금 말로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 모양이 ‘금(金)’자와 비슷하기 때문에 옛날에 그렇게 불린 것이다. ‘헤홉왕’은 쿠푸왕을 가리킨다. 이극로는 지금 이집트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인 지금도 이집트 여행의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 대(大) 피라미드, 즉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찬란했던 이집트 문화의 상징인 피라미드는 지금은 외로이 관광객들만 맞이하고 있지만 이극로는 그 문화의 넋은 자연이 변치 않고 있는 것처럼 아직 살아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넋은 살아 있지만 헤홉왕은 ‘카이로를 바라보고 운다’라고 함으로써 이 시는 반전(反轉)을 만들었고 역사의 페이소스를 자극 시킨다. 모든 게 다 지난날의 추억일 뿐이다. 이 시는 인간사의 ‘덧없음’ 이라는 우수(憂愁)에 찬 심상으로 끝난다. 아마 이극로의 우리나라에 대한 심정은 저 헤홉왕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화려했던 오천년의 역사가 일제에 의해 단절되었으니 헤홉왕 처럼 그는 지금 조선을 바라보고 울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는 애급의 넋이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조선의 넋도 아직도 죽지 않았음을 확신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이후 로마에 가서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찬란했던 로마 문화의 위용과 지금은 카톨릭 교회의 중심으로 세계를 이끄는 로마 교황청을 본 감회를 다음과 같이 시로 표현한다. 동양인으로서의 서양 역사에 대한 비판과 편견 보다는 역사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열린 마음으로 관조하고 있다.
로마 문명이 일어난 이 땅은
찾는 곳마다 절로 절하고 싶다
이태리 사람은 전통적으로 예술의 생활
나날이 하는 노래와 춤은 옛날 전례를 쫓누나
- 「로마를 읊음」
온 세상을 다스리고자 함은 영웅의 꿈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일을 성취함을 보지 못했다
오직 로마 교황의 권세만은
그 천하를 거느리고 이 성에 있다.
- 「로마 교황청을 읊음」
서양 기독교 문화를 접해본 이극로를 감동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갖는 보편성과 나라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의 이런 종교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이해는 옳은 것이다. 어느 한 나라가 종교가 없을 때 쉽게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과거의 세계 역사를 통해 수도 없이 보았다. 이극로는 우리나라의 종교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것이 있는데 굳이 서양의 기독교를 따를 필요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훗날 귀국해서 그가 민족 종교인 대종교에 관심을 두고 당시 대종교 교주인 윤세복과 밀접한 교류를 가지고 활동하게 된 것도 다 이런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