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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실용성과 장식미 겸비한 예술품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0년 09월 29일











▲ 雲甫 金基昶 `梅花連結圖'


병풍(屛風)의 역사(歷史)


 


병풍하면 흔히 제사, 결혼, 장례 등 일상생활의 특별한 의례 때만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예가 많았다. 그러나 병풍은 실용성과 장식미를 겸비한 훌륭한 예술품으로서, 오랜 세월동안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꾸준히 사랑받아 왔으며 용도와 숫자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다.


 


일상 생활예술품의 꽃인 병풍의 역사와 유래를 살펴보자.


 


기원전 중국 한(漢)나라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당(唐)나라 시절에 널리 사용되었다. 당시는 오늘날의 병풍형식과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었다고 알려진다. 손쉽고 간편하게 접어서 보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고, 넓게 펼쳐진 칸막이 벽이나 판을 그대로 이용한 ‘통 병풍’이었을 것이다. 고대 초기 병풍은 동판(銅版) 또는 목판(木板) 등 단순한 구조로 꾸며졌기 때문에 경병풍(硬屛風)이라 부른다.


 


경병풍에서 발전한 방식은 연병풍(軟屛風)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현재와 같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여기에 종이 또는 비단을 씌워 만든 것이다. 연병풍은 어느 시기에 만들어졌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초기 연병풍의 양식은 기둥살 상단 하단에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뚫고 가죽이나 노끈으로 양쪽을 함께 묶어 연결시켜 주었다.


 


시대흐름과 역사에 따라 여러 발전 과정을 거쳐 종이 날개식 병풍으로 완성되었다. 우리나라는 ‘종이 날개식 병풍’을 창안함으로써 병풍문화 발전과정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날개식 병풍은 전후를 마음대로 꺾어 접을 수 있으며 보관이 쉽고 연결부위가 견고하여 방풍(防風)효과를 높일 수 있고 장식용 등의 여러 가지 기능과 특징이 있다. 지금도 중국 북경 대형식당에 가면 손님과 손님 사이에 칸막이(판넬)식을 볼 수 있다. 장식은 나비와 꽃 등 여러 형태로 다양하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주생활 필수품으로 사용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고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 갈 수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686년(신라 신문왕6년)에 일본에 금, 은, 비단과 함께 병풍을 수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서기 357년 고구려 고분 중 안악고분3호의 벽화 그림 속 주인공이 앉아있는 좌상주위에 아주 나지막한 병풍그림이 둘러 쳐져있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평안남도 강서군 덕용리 소재 고분에 영락(AD407년)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 고분 주인공 역시 좌상주위에 병풍을 둘러치고 있는 장면이 벽화에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 17세기 문신실학자 유암(流岩)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 책속에 병풍을 생활 필수품의 하나로 분류한 사실을 보더라도 병풍이 전통적으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병풍(屛風)은 장풍(障風) 또는 병장(屛障) 청방(淸防) 이라고도 부른다. 병풍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을 차단하며 그림 감상용, 실내장식용 등으로 여러 가지 효과가 있어 하나의 실용가구로도 환영받는다. 특히 조선후기에 꽃피운 작가그림과 민화계통 병풍의 종류가 너무나 다양하고 숫자도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시(詩), 서화(書畵) 병풍과 민화, 기록, 자수 등 다양한 병풍의 종류 중 먼저 궁중에서 사용한 병풍의 종류를 알아보자.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4폭 병풍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는 조선시대 대궐의 임금님이 앉아계신 의자 뒤편에 펼쳐놓은 병풍그림으로 병풍을 꽉 메울 정도로 크게 그려진 다섯 봉우리의 산과 좌우에 해와 달을 그려 놓고 앞에는 물결과 소나무 등을 그려놓았다.


산봉우리를 굳이 다섯 개로 그린 것은 음[月] 양[日] 오행(五行)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일월오악도’를 다른 말로 ‘일월곤륜도’라고도 하는데, 원래 고대 중국에서도 곤륜산을 그려서 왕권을 상징하는 그림이 황실에 있었다.


곤륜산은 서왕모라는 신이 사는 곳이며, 마시면 죽지 않는 물이 흐르고, 너무나 높고 험준하여 전설의 산으로서 현존하지는 않는다. 이는 천명을 받아 삼라만상을 통치하는 임금의 존엄성을 뜻하며, 하늘의 보살핌으로 자손만대로 왕실과 나라의 무궁함을 기원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결국 일월오악도 병풍은 중국에서 유래되었지만 그 발생이나 기원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것으로는 창덕궁 인정전(仁政殿),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덕수궁 중화전(中和殿) 등의 그림들이 대표적이다.


 


◈궁중 모란 병풍


봄의 대표적인 꽃인 모란(牡丹)은 동양에서는 꽃 중의 꽃, 꽃의 왕[花王], 부귀화(富貴花) 등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관상용이나 그림의 소재로 사랑을 받았다. 모란 병풍은 일반 사가(私家)의 행사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왕실에서의 종묘제례, 가례(嘉禮), 제례(祭禮) 등의 주요 궁중 의례 때 사용된 바 있다. 이렇듯 궁중에서는 모란을 ‘부귀영화(富貴榮華)’의 대상뿐 아니라,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왕비의 거처에 놓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십장생도(十長生圖) 병풍


십장생을 줄여서 장생도라 부르기도 한다. 본래는 ‘회갑(回甲)’을 맞는 기념 또는 장수하는 분의 송수(頌壽) 기념으로 그려졌던 것이며, 불로장수를 뜻하는 도교적(道敎的) 취향의 그림이다.


십장생이라 함은 열 가지 자연물과 동식물을 말하는데, 산(山), 수(水), 지(芝), 일(日), 록(鹿), 학(鶴), 죽(竹), 구(龜), 송(松), 석(石) 등을 의미한다.


지초(芝草)는 불로초(不老草)를 뜻하며, 십장생의 열 가지가 다 들어가지만 작가의 취향과 의도에 따라서 몇 가지만을 선별하여 그리는 경우도 많다. 가령 조선조 후기에 제작된 군록도(群鹿圖) 팔곡병은 70여필의 사슴이 숲속에서 뛰노는 모습만을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호암미술관 소장의 십장생도 십곡병은 18세기 후반의 도화서 제작품으로 가장 뛰어난 병풍으로 알려져 있다.


 


◈의궤도(儀軌圖) 병풍


의궤(儀軌)란 조선왕조에서 왕실 및 국가의 각종 의례적 행사를 수행한 뒤 그 전말을 정리하여 후일 궤범으로 삼기 위해 남긴 문헌을 말하며, 의궤도(儀軌圖)는 의궤의 본문과 함께 수록된 그림을 말한다. 의궤를 작성하였던 행사는 왕, 세자의 가례(嘉禮), 왕, 세자, 왕비 등의 책봉, 책례(冊禮), 국장(國葬) 및 빈전(殯殿), 혼전(魂殿), 부묘 등의 의절(儀節), 산릉(山陵), 묘소의 축조, 궁전이나 능원의 축조, 개수, 실록, 법전의 찬수, 공신의 녹훈, 어진, 영정의 도사(圖寫), 친경, 진연의 의식 등 다양하였다. 이러한 행사가 있을 때는 임시로 도감(都監), 실록청(實錄廳), 찬수청(纂修廳) 등의 관청을 두어 일을 거행하도록 하고 기록하여 그림병풍으로 남겼다.


 


◈연회도(宴會圖) 병풍


연회(宴會)와 시연회(詩宴會) 및 계회(契會)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꾸며준 일종의 기념적인 병풍이다. 궁중행사 중 회갑, 수연 등의 기념식을 지금의 사진처럼 그림으로 그려 연결 병풍을 만들었다.


 


◈행렬도(行列圖) 병풍


보통 행렬은 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 가는 모습을 말하는데, 여기서 행렬도(行列圖)라 함은 단순한 행렬의 의미를 뛰어 넘어 임금님이 거둥(擧動)할 때 많은 신하들과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기록한 그림으로 국가적 차원의 위계와 위엄이 따르는 이른바 ‘임금의 공식적인 화려한 행사 장면’을 뜻하며,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림으로 그려서 병풍으로 꾸며준 것이 행렬도 병풍이다.


 


◈능행도(陵行圖) 병풍


능행도는 정조(正祖, 재위 1777~1800)가 그의 어머니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 1734~1815)의 회갑이 되는 해인 1794년 봄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모시고 동갑이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화성(華城)으로 행차한 모습을 담은 것이다. 이 능행도는 정조 일행이 도성(都城)을 출발하여 능행을 한 후 돌아오기까지의 모습이 중요한 사건에 따라 여덟 개의 장면으로 나뉘어 8폭 병풍으로 꾸며져 있다.


이 능행도는 조선시대 기록화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그림이다. 정조는 왕실 직속화원인 자비대령화원을 두어 장려하였으며, 당시는 왕조 문화를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한국판 르네상스’가 꽃피고 있었다. 수원 능행도는 김득신, 김홍도를 비롯한 여러 도화원의 화가들이 사실에 기반을 두어 제작하였다고 전해지며, 정확하고 치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장대한 그림이다.


 


◈반차도(班次圖) 병풍


반차도(班次圖)는 궁중의 각종 행사 및 임금의 행렬을 그린 것이다. 의궤도(儀軌圖), 반열도(班列圖) 또는 노부도(鹵簿圖)라고도 한다. 반차도는 행사의 내용에 따라 구체적인 명칭이 붙여진다. 본래 반차(班次)는 의식에서 문무백관이 늘어서는 차례를 말한다. 반차도를 보면 궁중 행사의 의식과 늘어선 관원들의 배치 상황이 정확히 묘사되며 풍속적인 성격을 띤 기록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림의 앞과 끝에 행사 내역과 참가 인원 및 관직 등을 자세히 적어놓아 정확한 시대 고증이 가능하다. 그림의 주제는 사연도(賜宴圖)와 진연도(進宴圖)를 비롯하여 관례(冠禮) 또는 가례반차(嘉禮班次)가 많다.


 


◈궁궐도 병풍


궁궐과 성곽의 모습 등을 계화(界畵)의 수법으로 정확 치밀하게 묘사한 궁궐이 주가 된 그림이 궁궐도이다. 좌우측면과 하늘에서 보는 느낌을 합쳐 웅장하게 그린 병풍이 부산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으로 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왕실에서 사용한 병풍에 대해 알아보았다. 조선시대 선비(사대부)는 어떤 병풍을 사용하였는지 알아보자.


 


◈사군자(四君子) 병풍


사군자는 매화(梅花), 난초(蘭草), 국화(菊花), 대나무(竹)를 말한다. 줄여서 매난국죽(梅蘭菊竹)이라 한다. 중국 명나라 진계유(陳繼儒, 1558~1639)가 ‘매난죽국보(梅蘭竹菊譜)’에서 사군자라 부른데서 시작된 말이다.


유교 문화권에서 군자에 비유되어 왔으며, 동양화의 소재가 되어 왔다. 각각 봄[매화], 여름[난초], 가을[국화], 겨울[대나무]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성행, 조선에 계승되어 사대부의 유교 교양의 일부로 널리 퍼졌고, 남종화파(南宗畵派) 중 문인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어몽룡(魚夢龍, 1564~?)은 묵매도로, 이정(李霆, 1541~1622)은 묵죽도(墨竹圖)로 이름을 떨쳤다.

편집부 기자 / 입력 : 2010년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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