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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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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 한글날은 제575돌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눈만 뜨면 우리말·글과 맞닥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과 글을 가꾸고 지켜낸 사람의 고마움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우리말·글의 표준은 단연 국어사전이다. 따라서 국어사전을 누가 최초로 만들어 오늘까지 잇게 되었는지 국민이라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봄직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은 ‘조선말 큰사전’이다. 무엇이든 최초가 붙은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국어사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내선일체를 앞세워 우리말·글을 지우려는 문화말살정책을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엔 우리의 국어사전은 아예 존재조차 없었다. 그러다보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선 팔도의 말이 통일되지 않아 한 민족임에도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이를 해결해 낸 중심인물이 바로 경남 사람들이었다.
당시 ‘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주도한 단체는 조선어학회였다. 조선어학회는 1931년에 설립되었으나 일제의 압제에 33인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최초의 국어사전인 ‘조선말 큰사전’ 편찬 사업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열악한 재정은 물론 난립된 언어를 어떤 방식으로 통일시키고 단어를 해석할 것인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난관을 뚫고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 1936년 ‘조선어표준말모음’ 1941년 ‘외래어표기법통일안’을 완성하여 우여곡절 끝에 탄생시킨 것이 바로 ‘조선말 큰사전’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편안하게 쓰고 소통할 수 있게 된 한글의 역사는 조선어학회의 공로가 있었기에 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그 중심에 당시 경남인이 8명이었으니 그분들이 이우식, 이극로, 안호상(이상 의령), 이윤재(김해), 윤병호(남해), 이은상(마산), 최현배(경남 울산), 김법린(경남 동래)이었다. 무엇보다 눈여겨 볼 점은 33인중 경남인이 조선어학회의 말모이와 재정 지원 등의 사전편찬 사업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울산에는 최현배 선생을 기리는 외솔기념관이 있고 김해에는 이윤재 선생을 기리는 김해한글박물관이 건립되어 개관을 앞두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경상남도와 의령군에서는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한 활발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경상남도는 국립국어사전박물관 유치건립을 위해 신성장 사업으로 선정하여 유치에 뛰어 들었고 이에 발맞추어 한글학회를 비롯한 한글 유관 기관들이 구두협력 의사를 밝힘으로서 사업에 탄력을 받게 되었다.
특히 의령군에서는 이번 한글날에 즈음하여 10월 5일부터 10월 11일까지 ‘의령한글주간’을 선포하고 의령읍 주요 거리에 조선어학회 33인의 배너기 설치와 더불어 한글학회장 등을 초청하여 ‘조선어학회, 큰사전 그리고 의령’이란 기조강연과 학술세미나를 11월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매년 이어온 한글사랑 학생백일장을 개최함으로서 우리 경남이 명실공히 한글을 지키고 가꾸어온 고장임을 전 국민에게 알림은 물론 한글사랑에 대한 국민적 동참을 유도하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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