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찬 향우 국가산업포장 수상
축하연 고향 낙서면 이근리에서 개최
“이원찬은 나와는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총 9년을 함께한 집안 아저씨이면서 친구인 관계이다. 학창시절 9년 동안 그의 주업은 가사돕기였고, 부업이 학생이라 우등생과는 일찍부터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안온하게 부모의 피땀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는 동안 가난했던 원찬은 산업역군으로 울산현대정공 등 산업현장에서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여 야간고등학교와 야간대학교를 졸업하고 야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 취득을 한 후 현재 경영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계명문화대학에 출강을 하고 있다. 1986년 울산에서 대구로 와 동원금속에서 6년을 근무하다, 1992년 아진산업 공채 1기로 들어가 초창기 년매출 일천오백억대의 작은 회사를 오너와 23년 동안 동고동락하여 오늘날 일조원대의 그룹으로 성장시킨 회사의 공신이기도하다. 사람들을 항상 따뜻하게 배려하고 상대의 요구를 그만큼 빨리 읽어내는 사람냄새가 나는 향기로운 친구이다. 특별한 재능이 있기보다 오로지 부지런히 될 때까지 애쓰고 노력하고 검약한데도 흥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했는데 이는 이원찬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난의 분루를 삼키며 십칠 세에 고향을 떠난 소년이, 38년만인 55세가 되어 한손에는 대통령표창(이명박 대통령 2009)과 또한 손에는 국가산업포장(박근혜 대통령 2015.12)을 안고 고향으로 달려왔지만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고 빈집만 덜렁남아 이 상을 고향 어른신들께 바친다는 원찬이가 자랑스럽지 않는가.”
지난 3일 오전 낙서면 아근리에서 주민들과 일가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이원찬 향우의 국가산업포장 수상 기념 축하연에서 주인공의 죽마고우인 이종찬씨의 축사 일부분이다.
이날의 주인공인 이원찬(아진산업 총무이사) 향우는 인사말에서 “어린시절 저의 꿈은 어서 커서 돈을 벌어 가난해 남들처럼 먹기 힘든 계란과 김밥을 사 먹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객지로 나갈 때 저는 계란과 김밥을 위해 고향을 떠나 타향의 산업현장에서 주경야독으로 부모님께서 주신 건강한 육체와 성실성, 그리고 강한 승부욕의 DNA를 자산으로 삼고 오로지 일과 공부에만 전념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남편과 아버지의 도리를 제대로 못한 미안함도 없지 않지만 지난 2009년 대통령 표창에 이어 이번에는 일자리창출 유공자에게 주는 국가산업포장이란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이 영광을 뒤에서 신뢰하고 적극 밀어주신 아진산업 서중호 사장님과 임직원, 저 앞산에 편히 잠들고 계신 부모님 영전, 그리고 오늘날 저가 있도록 성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고향 마을 아근리와 벽진이씨문중의 어르신께 돌려드리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이용두 한국국학진흥원장(전 대구대 총장)은 국가산업포장의 공로가 국가시책인 일자리창출이란 것과 수상자가 기업의 오너가 아닌 임원이란 흔하지 않은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어 이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고 격려사를 했다.
이우봉 경북대 교수, 권영진 한국산업인력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장,이규백 경산시소방서장, 이선두 전 사천부시장, 이종섭 도의원 등은 축사를 통해 하나같이 주인공의 ‘자강불식’(自强不息)의 투지에 찬사를 보냈다.
이원찬 향우는 1961년 부친 벽진이씨 시조공 31세손 이만후 공과 모친 창녕 왕산 출신인 해주오씨와의 4남1녀중 4남으로 태어났다. 이날 행사를 주도한 이원호(전 재대구 자굴산모임 회장) 향우는 이원찬 씨의 맏형이다. |